단편

미덴의 신

월드 트리거. 키도파 득세 이전과 이후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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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덴에는 신이 없다면서요.

부럽네요. 우리는 신이 있어야 살 수 있는데. 그러며 툴툴거리는 후배에게, 그러는 너는 툴툴거리는 것 말고 한 게 무엇이냐고 면박을 주려다 생각을 고쳐먹고 그만두었다. 자신은 지금 괜한 데 성질을 부리며 화를, 정확히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고 있고, 후배 놈 또한 가벼운 입과는 다르게 손은 착실히 움직이는 편이기도 했다. 몇백 년마다 한 번씩 신을 찾아야만 하는 불안정한 대지에 발을 딛고 사는 와중에, 하필 새로운 신을 옹립해야 하는 시대에 태어나고 말았으니 불안에 불만투성이가 되어도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이 사라지길 바라는 건 신을 위한 바람이기도 하니 신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땅을 부러워하는 건 저 역시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신이 없는 땅. 신이 죽어도 괜찮은 땅. 신이 죽어도 인간이 죽지 않는 땅. 아, 마지막 말은 조금 잘못되었다. 인간은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신이 있든 말든 죽어 나갔으므로.

이 땅을 보아도 그렇다. 신도 없고 인간도 없는. 정확히는 신도 없고 인간도 죽는 땅.

미덴.

그리고 그들 눈앞엔 50m 정도 떨어진 전방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미덴의 병사가 있다. 무릎을 꿇고, 그 무릎 위에 죽은 다른 병사의 머리를 누인 병사.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지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죽일까요? 저자도 그러길 바랄 텐데. 가벼운 입에 걸맞은 가벼운 생각, 정신머리지만 지금만큼은 후배 놈 역시 가벼이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미덴의 병사의 눈은 이미 죽어 있기 때문이다. 비유가 아니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는 이미 눈앞에 보이는 바가 없을 것이다.

제 무릎에 누인 동료가 이미 명을 달리 했음을 그는 아는가?

알 것이다. 죽음을 감각할 수 있는 건 시각뿐만이 아니므로.

됐어. 내버려둬. 꿈자리 사나워지는 짓거리는 오늘 충분히 했으니까.

내버려두면 죽을 거야.

부상에 의해서든, 다른 무엇에 의해서든. 그 말에 후배 놈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죠. 뭐.

체내에 많은 트리온을 가진 이계 또는 이국의 인간은 납치 후 전투원으로 쓰이곤 하지만, 훈련받은 병사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복수할 기회를 손에 쥐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뇌한다고 해도 100% 안심할 수는 없기에 껄끄럽다. 충성심이 남다르기에 군인까지 된 게 아닌가. 그래서 전장에서는 트리거 사용자와 맞닥뜨리게 되면 그들의 명령 체계까지 손에 넣어 완벽히 굴복시키는 게 아닌 이상 그들을 완전한 전투 불능으로 만들도록 되어 있었다. 트리거를 갈취하거나 더는 트리온체로 변신할 수 없도록 하는 행위가 이에 포함되었다. 목숨을 잃게 하는 행위는 후자에 포함되었다.

지금껏 미덴은 그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 베일 아웃을 통해 그들 전투원의 인명을 보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것을 파훼하는 것은 미덴을 침공하기 전 선행되어 개발되어야 할 기술 중 하나였다. 지금처럼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키기로 마음먹는다면.

미덴에는 신이 없으니까…….

아직도 그 소리냐.

기도할 대상도 없겠네요. 불쌍해라.

그 말에 너는 우리의 신에게 기도하는 인간이었냐고 하려다 의외로 그렇다고 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은 마더 트리거에 바쳐져 평생을 마더 트리거와 별을 돌보는 데 바치는 산 제물에 붙는 이름이었지만 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숭배하는 종교는 그의 행성에도 있었다. 제 후배 놈이 의외로 종교인일 수 있으니 말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싹퉁바가지 없는 놈이기는 해도. 대신 이렇게 말할 수는 있었다. 눈앞의 눈먼 병사를 바라보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꼭 신에게 기도해야 하나?

그럼 누구에게 기도해요?

기도야 누구에게든 할 수 있지. 저 병사처럼.

아까부터 입을 멈추지 않고 있는 저 병사처럼, 중얼중얼, 시체에 제 바람을 불어넣는 저이처럼, 그럴 수 있지. ―― 씨, 일어나 봐요. 제 말 듣고 있어요? ―― 씨. ―― 씨…….

그럴 수 있지…….

가자.

예.

내버려두면 죽을 것이다. 어떤 것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리 말하며 발을 옮긴 것을 그는 기억한다. 몸을 돌린 것을. 고개를 돌린 것을. 눈을 돌린 것을.

그러니 이제는 마주할 때였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폐를 찔린 것일까. 입 밖으론 피가 주룩 흘러나왔다.

그때는 검 대신 트리온 탄환을 쏘아댔던 자로 기억하는데, 제 가슴에서 검을 비틀어 빼내는 자의 눈은 형형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죽은 눈이다.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이 죽은 눈. 쿨럭이다 간신히 입을 달싹여 중얼거렸다. 널 기억한다. 너도 날 기억하나?

그에 그자가 대답한다. 기억해.

하지만 이제 잊을 거야. 왜냐하면 이젠 기억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참으로 현명한 판단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끄덕이고 싶었지만 다시 들지는 못했다.

포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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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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