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를 죽여도
월드 트리거. 그들은 오지 않아
* ‘우리 모두를 죽여도’는 마비노기 영웅전 에피소드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우리 모두를 죽여도 그들은 오지 않아.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렇다고 장담하는 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제 앞에 선 자를 올려다보았다.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이래 암약은 그의 장기였고 그 눈에 보이는 미래에도 그들이 오는 모습은 아직 비치지 않았으니 실로 이번에도 그의 계획은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자에게, 또는 확신하지 못하는 자에게, 내 사이드 이펙트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그리 말하면 그예 꿈틀거리는 미간을 보고 입가의 미소를 더욱 굳힐 수 있었다. 그 채로,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진은 말을 이었다. 아리스테라의 마더 트리거도 여기 없어. 몰래 함께 실어 보냈거든. 그러니까…… 너희가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어. 원한이라면 모를까.
그러니 적당히 하고 물러나는 게 좋을 거야. 원한만 사고 돌아갈 순 없잖아.
물론―그들이 괜한 원한만 산 채로 물러나진 않을 것이다. 이 땅으로 돌아온 이들은 파괴된 도시를 목도함과 동시에 많은 이의 실종 소식을 함께 접하게 될 것이다. 실종 소식뿐이랴…… 어쩌면 그보다 더한 것도. 그렇지만 그것이 진이 선택한 미래였다. 선택한 길. 일찍이 진은 키도의 목적이 저의 목적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란 이야기를 했었고, 이것이 키도의 목적을 이루는 길, 그리고 진의 목적을 이루는 길이었다, 이것이. 가장 출중한 실력을 갖춘 원정 멤버들이 원정을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었다면 이보단 덜한 피해를 낳았겠지만, 진은 그들을 떠나보내는 미래를 택했다. 미래를 위하여.
눈앞의 네이버는 혀를 찼지만 물러서는 대신 그의 트리거를 더 높이 들어 올리길 택했다. 어차피 살 원한이라면, 이미 산 원한이라면 후환이 될 자는 지금 제거하는 게 옳았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트리온체가 이미 파괴당하고 다리를 베여 일어나지 못하는 자라면, 지금 그 미래를 보는 사이드 이펙트와 함께 제거하는 것이, 합당하건만.
뜻대로 이뤄지진 못할지어다. 시야 밖에서 날아오는 검격을 눈치채고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트리거를 쥔 팔이 날아간 뒤였다.
“……!”
그 기술의 시동어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들렸다. 주변이 소란스럽고 시동어를 발화한 자가 40m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단 더 가까운 곳에서, 그래, 절반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터지는 폭발과 함께 외침이 있었다. 그래, 22m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진!”
연사, 그보다는, 속사일까. 진에게는 원정 멤버들을 떠나보내는 미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모두를 죽여도 그들은 오지 않는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오기 전까지 우리 모두를 죽일 수 있을까? 제 앞을 지키듯 가로막고 선 친구들, 그리고, 엄호해! 따라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진은 계속해서 제 미소를 지킬 수 있었다.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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