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흘린 것

월드 트리거. IF 타치카와가 블랙 트리거가 된 이야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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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소재

모순되진 않은 결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싸움이 끝나고 내린 결론이었다. 은퇴하자고. 예비역처럼 남아있던 지난날은 여기서 끝내자고. 인수인계는 사와무라가 모두 맡아주어서 다행이었다. 시노다 대는 여기서 끝. 이다음부터는 사와무라 대가 될 것이다. 오래전 구 보더 시절에 잃고 만 재원들로 인해 이 빠진 징검다리처럼 놓인 세대도 이젠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 사와무라의 승진으로 빈자리가 된 보좌는 누가 맡을지 그건 조금 고민이 되었다. 듣기로 아즈마는 이번에도 새 본부장의 제안을 고사했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전투원 자리에 계속 남아있어야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같았다. 나름의 생각이 있을 터였다. 강요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순간 그 이검을 든 건 시노다였다.

그전까진 누가 그들을 들고 있었을까.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지막이 오기 직전 시노다에게 그들을 건넨 건 제법 엉뚱하게도 이코마 부대의 대장인 이코마였다. 물론 그는 그들의 적합자였으니 뜬금없는 인선은 아니었다. 일찍이 그들의 적합자는 과거 풍인의 적합자가 그러했듯 수없이 많았으나, 다른 의미에서 골머리를 썩인 그들이었다. 요컨대 사용할 수는 있으나 제대로 사용하지는 못한다는 게 그들 스스로 그들을 고사하게끔 하는 문제였다. 장검 형태의 호월을 사용하는 자야 제법 많았으나, 이검을 사용하는 자는 없었다. 스콜피온이라면 제법 수가 되었으나 익숙하지 않은 호월을 두 개씩 들고 실전에 임하기엔 이에 숙련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한 탓인지 앞서 언급한 무수한 적합자 중 카자마는 이를 거절했고, 카코와 유바는 각각 슈터와 건너라는 포지션을 바꾸길 원하지 않아 마찬가지로 거절했으며, 아라시야마와 키토라 또한 차분히 숙련도를 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점을 들어 그들을 거절했다. 그렇다고 블랙 트리거를 놀릴 수는 없는 와중에 한 번 해보겠다며 받아 든 이코마는 이를 어떻게 사용했나 했더니, 할 수 있는 사람이 한다는 부대의 모토대로 제 부대의 또 다른 어태커 미나미사와(그 또한 적합자 중 한 명이었다)와 하나씩 나누어 사용해 보았다는 듯했다. 그러나 그 역시 알게 되었던 듯하다. 그런 방식으로는 이 이검의 능력을, 블랙 트리거로서 가진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들 못지않게 그가 가진 능력―이코마 선공―또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 그는 노말 트리거와의 병용을 그만두고 시노다를 찾아가 그들―그를 내밀었다. 시노다 씨 말고는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시노다는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 역시 그것을 위해 그렇게까지 말한 것이리라. 가시죠. 엄호하겠습니다. 당시 시노다는 이미 현장 전투원으로 전장에 임하고 있었다. 검댕 묻은 얼굴로 그는 그것을, 그를 받아 들었다. 그럴 리 없지만 잘 부탁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환청을 들으며.

잘 부탁한다. 환청에 대답을 하자면 그러했다. 시노다 최후의 전투였다. 직후, 은퇴하자는 결심을 세웠으므로. 그러했으므로.

즐거웠니? 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즐거웠으면 좋겠구나. 너에겐. 대답을 듣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 애가 바라는 것이야 뻔했으므로.

본부장 직위에서 내려온 시노다였지만 보더에 얽힌 많은 이가 그러듯 결국 보더를 떠나지는 아니했다. 애초에 그럴 작정으로 내려온 것처럼 이제 막 입대한 훈련생들에게 호월 사용법을 가르치는 교관직을 스스로 도맡은 그였다. 그렇게 많은 아이를 가르치게 된 그였지만 다시 말해 특별히 여기는 한 아이 같은 것은 더는 두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 밑에서 배우는 훈련생의 수는 날로 늘어도, 아무도 자신을 그의 제자라고 지칭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렇게 되었다.

그는 다정하지만 한번 안 된다고 한 것은 봐주지 않는 교관이 되었다고도 한다. 예를 들어 간식을 먹으며 부스러기를 흘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그 앞에서 아이들은 제 손에 든 것을 입 속으로 허겁지겁 집어넣기에 바빴는데, 그러면 또 별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폭 내쉬곤 아이들에게 물을 챙겨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천천히 먹으렴. 목 멜라. 그럼 아이들은 정말로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과하고, 죄송해요, 교관님. 바닥에 가루까지 흘리고……. 그럼 그는 또 쓰게 웃었다고 한다. 이미 흘린 걸 어쩌겠어, 하면서.

이미 흘린 걸 어쩌겠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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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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