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가족, 오래된 영화, 블랙커피

월드 트리거. 키도 이야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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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사진첩 속으로 오래된 영화는 서랍 속으로 블랙커피는 찻잔에서 빙글빙글

넘칠 만큼의 파랑은 바라지 않으므로 넘치지 않을 만큼만 휘저은 뒤 스푼을 빼낸다

예전엔 모두가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재생하기 전에

먼저 처음으로 되감겨 있는지 확인해야 했던 테이프를 기억한다 대여점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문 닫기 전 저렴하게 값을 치러 가져 온 중고 비디오테이프들을 탁자 위에

늘어놓아 자랑하자면 또 옛날 영화예요 지루해요 하고 볼멘소리 늘어놓는 아이들과

고전을 알아야 현재를 즐길 수 있다고 자랑하던 이제는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젊은

자신 이제는 알지도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하고 모았던 영화는 모두 떠나온 집 책상

서랍 속에 두고 나왔으며 당대에 애써 모았던 수집품들 모두 전부 그곳에 넣어두고

왔으니 그곳은 한때 살았으나 이젠 죽어버린 자신이 살았던 곳이요 이미 죽은 자신의

물건들이 버려진 곳이라 그곳을 떠날 적에는 버리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으나

실은 전부 상자 속에 집어넣어 창고 한구석 어딘가에 놓아 보관할 것 역시 모르지는

않은 채로 떠났더랬다 먼 후일에 쓰일 순장품들 전일에 벌써 묻힌 가족의 관 안에는

무엇을 넣어주었던가 우리는 사진첩 속에 숨은 가족과 영화와 오래된 기억은 이제

넘칠 일 없는 파도가 출렁이는 찻잔 속에서 맴을 돌고 또 돈다 하염없이 계속 돌고

한때는 모두가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대여점에서는 언제나

두 개의 테이프를 빌렸다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최신 액션 영화 다른 하나는 모두가

잠든 새벽에 설탕 하나 넣지 않고 내린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며 저 혼자 밤새 볼 작정

하는 오래된 영화다 그렇게 그를 반기는 오래된 기억 속에는 그가 있었던 오래된 날

그날이 있고 오래된 나 오래된 가족 이 함께 있었던 지난날을 추억하지 않기로 한 것

역시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니 나는 이제 돌아오지 않겠노라 등을 돌리고 거기 두었던

짐은 버리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 말한 뒤 입을 다물고 그렇게 거기서 끝났던 거기서

마무리되었던 거기서의 그곳에서의 그 시간에서의 시간은 모두 사진첩 속으로 서랍

속으로 상자 속으로 들여보내 문을 닫는다 가만히 영원히 다시 조용히 언제까지라도

잠들 수 있도록 그리하여 잠들지 못하는 어른은 여기 남도록 여기 계속 깨어 있도록

가족은 사진첩 속으로 오래된 영화는 서랍 속으로 블랙커피는 찻잔에서 빙글빙글

깨어있음에 넘침은 없으니 그는 앞으로도 깨어있으리라 하염없이 깨어있으리라 영영

깨어있으리라 깨져 있으리라 베어내면 뿜어내는 검은 연기 꼭 닮은 물을 마시며 새어

나가는 날을 지새우며 잠 못 이루는 날을 붙잡으리라 언제까지? 가만히 다시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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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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