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레이터는 블랙 트리거의 꿈을 꾸는가?
월드 트리거. 타치카와와 츠키미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지는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가 됐든 이기는 것이 지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으니까.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건 제법 많을 것이다. 다치는 것도, 남을 다치게 하는 것도,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엄청 기분 나빠할 테니까. 싫어할 사람은 정말 정말 싫어하겠지. 설령 다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행위 자체에 거부감과 불쾌감을 느낄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고, 반대로 다치지 않는다고 하면, 거부감과 불쾌감 대신 그 자리를 채운 쾌감에 중독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다치는 것 정도야 상관없다고 생각한 사람에겐 이보다 더한 즐거움, 이를 누릴 기회가 없을 것이고.
저 같은 사람이 드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에선 많지 않아도, 체육계, 그중에서도 무도 계열로 가면―어디까지나 편견에 기반한 짐작이지만―없진 않으리란 생각도 했다. 그럼 그쪽으로 가 보는 건 어때? 그래서인가 권유받은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번번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왜? 글쎄……. 싫은 건 아닌데, 다른 미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미래가. 그게 어떤 미래인데?
글쎄. 대답할 순 없었다. 그에겐 미래를 보는 재주가 없었으므로 어떤 미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말이다, 미래가 보인다면 보인다고 순순히 그에 순응하여 그대로 따를 사람이던가, 제가? 전혀 아니었다. 전혀 아니지. 아마 그런 건 뒤엎어버리는 게 더 재밌을 거라고 난동을 부리겠지. 그런 사람이지. 저는.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로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 문득, 정말 문득 생각난 것처럼 왼편에 놓인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각 진 창문 너머로는 눈이 아플 만큼 새파랗게 부시는 하늘과 진한 녹음과 매미 울음소리가 넘어오고 있었다. 이중 매미 울음소리는 시각적인 자극이 아닌 청각적인 자극에 해당하겠지만, 뭐라고 하더라, 공감각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문학 시간에 배운 단어를 떠올리면 좋았다. 하늘은 새파랗고 이파리는 선녹색이고 귀에 새기는 듯한 울음소리는 무슨 색일까? 무슨 색으로 표현하면 좋을까?
“검은색.”
대답한 자는 그를 지나쳐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진 않았으므로 그는 그의 어깨를, 긴 머리칼이 흘러내려 어깨 위로 쏟아지는 그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톡톡 두들겨 저를 보도록 할 수 있었다. 소리 없이도 그를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진 아니했다. 허리춤에 자라도 끼워 넣은 양 똑바로 허리를 세우고 등을 펴 바르게 앉은 그 아이는 미동도 없고 어떻게 제가 말로 뱉지 않고 생각만 한 질문의 답을 한 것이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왜 자신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 왜 자신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 수 없었다.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
대신 몰려오는 졸음은 있었다. 5교시니까 그럴 수 있지…….
눈을 감기 전, 어째서인지 마지막으로 한 번은 더 돌아봐야 한다는 예감인지 직감인지 강박에 가까운 어떤 의지에 다시 한번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려 교정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자신은 꼭 그 아이를 확인해야 했다는 것처럼 한 아이가, 교정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 저를 올려다보고 있음을 그는 발견하고, 확인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구지? 누구야? 모르지만, 어쩐지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은 익숙함을 주는, 딱 지금의 하늘을 잘라 꿰매어 만든 것 같은 하늘색 재킷을 입은 소년. 그리고 그치지 않는 매미 울음소리. 거기에 묻혀 들리지 않는 목소리. 보이는 건 입 모양만……. 하지만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제가 있는 층은. 그럼에도.
하늘은 새파란 색. 이파리는 선녹색. 귀에 새기는 듯한 울음소리는…….
“하늘색 아닐까?”
대답해 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대답이 들려왔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케이. 그래? 그래. 여전히 돌아보지는 않은 채로 돌아오는 대답에 눈을 깜박이다 웃었다. 그렇구나. 그래. 왜냐하면…….
“여기는 네 세상이니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꿈이 다 그렇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는 제법 되었다.
“방해하기도 쉽지 않고.”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은 게 언제인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면…….
지는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가 됐든 이기는 것이 지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으니까. 죽는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제법 적을 것이다.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엄청 기분 나쁜 일일 것이 분명하니까. 개의치 않아 하는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싫어할 사람은 정말 정말 싫어하겠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치를 떠는 사람도 적잖을 테고. 하지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새파란 하늘 아래, 선녹색 이파리 아래, 귀에 새기는 울음을 저는 들은 적 없다. 듣기 전에 떠나왔기에 결국 앞으로 숙이는 등도, 웅크리는 바람에 작아 보이는 몸도, 조금씩 흔들리는 어깨도, 함께 보낸 어릴 적 이후론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달리기만 하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 달리다 그만 넘어졌을 때야 한 번 봤을까. 뭐를? 그야.
“제대로 사과해.”
“미안.”
“제대로.”
“미안하다, 렌.”
그러나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진 않았으므로 그는 그의 어깨를, 긴 머리칼이 흘러내려 어깨 위로 쏟아지는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그럼에도 돌아보진 않았으므로 이내 그는 포기하고 허리를 뒤로 젖혔다. 창 너머에는 접근조차 불허 당한 소년이 있고, 책상 앞 의자에는 그럼에도 제 손에 쥘 생각은 없이 다른 이에게 내어줄 생각을 하는 소꿉친구가 있다. 기준을 모르겠어. 잠시 후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는 사실상 불평을 담고 있었지만 그는 웃으며 다시 책상 위로 팔을 얹고 엎드릴 뿐이었다. 아, 실로 편한 자세였다. 이대로 한숨 자면 영원히 깨지 않을 것 같아 좋았던 시절의 오후가 이곳에선 영원히 지속되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 시절의 소녀가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찰나의 백일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백일몽을 꾸는 이조차 이 시절의 소년이 아니다. 그냥 그랬으면 좋았겠다 생각하는. 꿈을 꾸는. 생각하는 꿈을 꾸는. 그런. 그런…….
“안녕.”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끝. 그 직전에
너
저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떴다. 트리거 온, 하고 트리거를 기동시킨 다음이었다.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기존의 노말 트리거와 다른 기분도 들지 않았다. 트리온체를 해제한 후 테라시마에게 트리거를 건넸다. 갑자기 부린 고집을 들어줘서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고 인사하면 이 정도는 고집 축에도 들지 않는다고 제법 무심해 보이는 얼굴로 사양하는 치프 엔지니어였다. 잠시 후 그가 나가고, 교차하듯 그와 인사하고 들어온 이가 있어 그가 테라시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별일 아니에요. 그냥 한번 확인하고 싶다고 해서요. 그 말에 그림자조차 못 쫓을 걸 알면서도 괜히 고개를 돌려 사라진 뒤를 쫓으며 돼? 하고 짧게 물으면 네, 하고 이 역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오퍼레이터들도 테스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네요. 만일을 대비해서.”
그에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쁠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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