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대국

월드 트리거. 미즈이코. 꿈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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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는 나보다 연상일 것이다.

마주 앉아 수를 주고받으며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우리는 수를 주고받았나? 말을 주고받지는 않고? 이야기를 주고받은 기억은 났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좋아했으므로 서로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기에 더욱 그랬다. 서로가 누구냐면, 나였다. 나는 나와 기억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마 그는 다른 세상의 나일 것이다.

우리 인생에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의 인생은 그 사건을 기점으로 갈리고 말았으니 그 뒤로 우리의 시간선은 조금도 같지 않으며 앞으로도 같지 않을 예정이 되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반복되지도 못할 종류의 일이었다. 그에게는 일어났던 어떤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일, 감정, 사건, 세상이.

아마 그는 나를 질투할 것이다.

나는 그가 잃어버린 것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보다 무언가를 탁월하게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나에게 운이 좋은 세상을 살고 있었고, 달리 말하면 다른 이에게는 좋지 못했던 세상이다. 그리고 그는 운이 좋지 못했던 세상을 살았다. 운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잘못은 없었으므로.

그가 내게 질문한다.

이코 씨는 잘 지내?

나는 그에 생각한다.

거기선 이코 씨가 잘 지내지 못했구나. 그래서 이런 질문을 내게 하는구나.

잘 지내요.

아마 그는 그 대답에 만족할 것이다.

꿈이라도 그러면 되었다고 생각하겠지.

수를 주고받는 데 마주 앉을 필요는 없어서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며 나란히 앉기로 했다. 자신의 차례가 올 때마다 손을 반상 위로 뻗어 말을 움직였고 그때 외에는 반상 위에 말이 어떻게 놓였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머릿속으로 충분히 그릴 수 있으니까. 판을 외우는 것쯤이야 전혀 어렵지 않으니까. 진정 어려운 것은 따로 있으니까.

아마 그가 꿈에서 바란 이는 제가 아니었을 거외다.

나는 그렇게까지 바라지 않은 이를 가진 건 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기억을, 수를 주고받았다. 그는 아니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주고받는 데 필사적이었다. 왜냐하면 이 대국이 끝났을 때 내가 아닌 그가 승리한다면 그가 무엇을 가져갈지 알았으므로. 패자는 결과에 승복해야 하고, 나는 죽고 싶지 않았으므로. 죽고 싶지 않으므로 이야기를 계속해야 했다. 꿈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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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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