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의 검정
월드 트리거. IF 블랙 트리거가 된 타치카와 + 이즈미 이야기
* 사망 소재
해산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대장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A급을 유지할 순 없으리라고 했다. 사실, 해산의 의미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장은 없었고, 저 외엔 오퍼레이터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유이가는 보더를 그만두었다. 유이가가 그만두지 않는다고 해서 떨어지지 않을 순위나 급이 아니었고, 유이가의 결정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결정은 아니었으니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 애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리다. 저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대장을 맡아야 한다고 했지만 제가 대장을 맡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공란으로 남겨두고 싶은, 공석으로 두고 싶은 대장위였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상부의 결정에 이의는 제기해도 설득할 순 없었다. 엠블럼은 이전에 징계 등의 처사로 B급으로 떨어진 니노미야 부대와 카게우라 부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전히 그들 것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부대명만은 반납해야 했다. 잃어버린 이름은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계속 가지고 싶었으면 잃어버리지 말 것이지. 그럴 의도를 가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으나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 가지고 싶었으면, 계속 곁에 두고 싶었으면.
곁에 두고 가만히 앉았다.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물어도 대답은 없었다.
대장을 맡으니 부대 이름이 바뀌었다. 오퍼레이터와 단둘로 이루어진 부대가 처음은 아니라서 기존의 관념을 깨야 한다든가 하는 번거로울 일은 하나 덜었다. 그렇지만 부대 이름도, 순위도 지키지 못하고 남은 것은 엠블럼뿐이란다. 손에 쥘 수 있는 트리거도 하나 남긴 했지만, 이건 당신인지, 이걸 당신이라고 해도 좋은지. 곁에 두고 앉아 말은 걸어도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노다도, 테라시마도 뭐라 하는 말은 없어서 그때까지는 저도 그냥 있기로 했다.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 한번 질문받은 적은 있었다. 그에 뭐라 대답했더라. 당신을 옆에 두고 당신도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말했다.
“저는 슈터잖아요.”
당신이 나를 슈터로 영입하지 않았나. 그들을 이길 슈터로, 최강을 노릴 슈터로.
그런데도 나 역시 쓸 수 있게끔 했으니 당신은 역시 바보 같다. 여전히 바보 같다.
부대 이름이 바뀌면, 아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혼자서 슈터로, 전투원으로 활동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또 다른 포지션을 영입한다면 문제가 되었다. 나는 다른 어태커를 영입할 수 있을까. 다른 모두를 이길 어태커로, 최강을 노릴 어태커로 나는 누구를 고르고 정하여 영입할 수 있을까.
사용하지 않기로 했기에 소지할 수는 없었다. 개발팀에 당신을 돌려둔 뒤 수정된 전투체를 확인했다. A도 없고 1도 없는 전투체를. 오직 엠블럼만 있고, 엠블럼엔 있지 않은 부러진 칼, 부러진 날을. 녹슬지 않도록 지켜야 할 날이 제법 무겁다. 제법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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