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1) 3
월드 트리거. 나스쿠마
어쩌면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좀 더 알기 쉬웠던 건지도 모르겠어.
마지막 순간 생이 부유하는 느낌 말야.
그대로 끝인 줄만 알았기에 이질감을 크게 느끼는지도.
신기해, 조금.
레이. 미안. 나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러나 그 말에 나스는 고개를 저을 뿐 쿠마가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한다는 듯이 입가에 좀 더 짙은 미소를 지어 올렸다. 괜찮아. 이해해. 오히려 안심이야. 쿠마는 몰랐으면 하는 감각이니까. 가능한 한 영원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오래오래. 모르길 바랐다고 말하는 나스를 쿠마가이는 바라본다. 가느다란 난간에 걸터앉은 그가 떨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트리온체로 있기 때문일까? 트리거 안에는 그런 그의 진짜 육신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진짜, 육신. 발음하는 것은 혀가 아닌 생각인데 떫은 감이라도 혀에 닿은 양 오그라드는 혀가, 말려드는 혀가 이다음에 이어질 소리를 막았다.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는 소리를, 말을. 그사이 말을 잇는, 말을 마치는 나스였다. 끌었던 말을 내려놓는다. 쿠마. 나는.
네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그 순간 말려든 혀가 풀리며 기도로, 폐로 공기가 빨려 들어간다. 말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때가 바로 이때임을 알고 쿠마가이는 소리친다. 레이, 난! 나도! 네가.
오래오래 살길 바랐어.
말하는 순간 깨닫는다. 이상을 느끼고 얼굴에서 표정을 지운다. 이상? 아니, 이질감.
이질감을 안기는 부분을 잘라내기 위해 잘라낸 말의 나머지를 반복했다. 살길 바랐어. 앞이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뒤인가? 뒤도 마저 잘라내고 붙여 말한다.
살기를.
그 말은 참 이상하게 들린다. 마치 지금은 살아있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린다. 바람은 결국 바람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불려 왔을 때와 같이 불어 사라졌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머리를 엉망으로 흐트러뜨리는, 옥상이라 더욱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야 나스의 눈과 눈을 마주친 쿠마가이가 중얼거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 쿠마.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야, 이게?
내가 바라지는 않은 일이었어. 이런 건.
왜 바라지 않았어?
레이. 쿠마. 울지 마. 어느새 난간에서 내려온 나스가 쿠마가이의 눈가를 손으로 쓸어내린다. 닦아내려 해도 더욱 번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너는 알리라. 이 순간에야 저희가 진정으로 재회했다는 걸 안 쿠마가이가 나스의 양팔을 붙잡고 그대로 몸을 무너뜨린다. 무릎을 꿇으면 나스의 몸도 함께 끌려 내려갈 수밖에 없다. 레이. 쿠마.
부탁이 있어.
레이 너의 부탁이어도 들어주고 싶지 않아.
들어줘, 쿠마.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모독 되길 원하지 않아. 그 말에 쿠마가이는 고개를 들어 나스를 올려다보았다. 나스는 다시 한번 쿠마가이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도와줘, 쿠마. 내 생을. 내 말을. 내 끝을.
돌려놓아 줘.
그것이 ‘레이’의 부탁이라면 ‘쿠마’는 거절할 수 없었다. 들어주고 싶지 않아도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 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쿠마는.
그러나 얼마나 진심인지는 상관없는 것이지.
승부를 결정하는 건 전력, 전술, 그리고 운.
기합으로 어떻게든 되는 건 실력이 상당히 엇비슷할 때뿐.
그와 쿠마가이의 실력은 비슷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분명하게도.
마더 트리거를 지키고 선 자가 있을 줄은 예상하였다. 높은 확률로 진 유이치. 아니라면 그 다음으로 그와 이해가 일치할 사람들. ‘이코마 부대’의 미즈카미 사토시라던가……. 하지만 그는 쿠마가이의 예상에서 벗어난 인선이었다. 생각하면 경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도 없진 않았다. 레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며 접근했던 이코마도 나스와 의견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방심하고 말았지만, 생각하면 방심해선 안 될 사람이었다, 절대로.
일격은 피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쩌적 소리와 함께 금이 가는 팔로 다른 팔을 붙잡으며 입술을 꽉 깨문다. 참으로 감쪽같았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숨긴 적은 없어. 다들 나한테는 묻지 않았을 뿐이지.
그 말에 대답하는 남자다. 어쩌면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알기 쉬웠던 건지도 모른다.
여기선 그만 돌아가 줘야겠어, 쿠마.
……저번에도 여기까지였나요? 내가?
응.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말하며 여유롭게 웃는 타치카와를 노려보지만 더는 별수가 없었다. 버티지 못한 트리온체의 팔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무너지고 만다. 베일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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