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1) 4
월드 트리거. 타치카와, 시노다 편
죽음과, 그리고 그 죽음이 트리거에 얽혀 있을수록 깨닫는 것이 빨랐다. 트리거와 관련이 없는 죽음이라면 처음은 무리여도 도중에는 반드시 이 백일몽에서 깨어났으며,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시엔 모든 반복을 기억하며 백일몽과 함께했다. 간혹 그런 것 없이도 반복을 기억하는 예외 개체들이 존재하긴 했으나 수는 많지 않았고, 타치카와 케이는 위의 일례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마더 트리거 앞에서 마주하게 된 시노다 마사후미 역시 예외에 해당하진 않는 사람이었다. 생각하면 당연하다. 구 보더, 그리고 현 보더의 시작을 함께한 그이니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죽음을 지켜보았겠나. 그러나 케이, 하고 부르는 이름에는 체념이 담겨 있지 않다. 예상한 자의 각오가 담겨 있을 따름이다.
생각하면 당연하다. 아라시야마 부대는 시노다 파를 대표하는 부대 중 하나이다. 아라시야마에게서 쉽게 믿기지 않는 전모를 소상히 들은 시노다는 그 스스로 단서를 찾아 움직였고, 이해하고, 눈치챘으며, 마지막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라시야마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본부장님 외에는 막을 자가 없습니다. 진은 제가 붙잡고 있을게요. 과연 아라시야마가 진을 붙잡는 데 성공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타치카와가 진의 부탁을 받아 마더 트리거 앞에서 이를 부수려는 자들을 경계하며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시노다가 해야 하는 일은 분명하다. 앞서 케이, 하고 이름을 부른 그가 트리거를 움켜쥐니 육신이 트리온체로 전환된다. 늘 언제나 깔끔하게 입고 다니던 양복 정장에서 코트 자락이 길게 내려앉는 전투체로, 다시 말해 전투를 예상하고 준비한다. 제자를 보면서.
“비켜라.”
“시노다 씨.”
그의 목소리에도 체념은 담겨있지 않다. 그들 목소리엔 담겨 있지 않은 모든 감정은 어디에 있나. 마치 공기 중을 먼지처럼 떠다니는 것 같다. 그러다 허파에 달라붙을 것만 같은 감정들이다. 먼지 같은 감정들. 목적과 비교한다면 어디까지나 그럴 감정으로.
“난 그동안 즐거웠어.”
사람을 무너뜨릴 계책을 짠다. 호월을 쥔 시노다의 손이 순간 움찔한다.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떨림이다. 사람인 이상, 살아있는 사람인 이상. 지켜본 사람인 이상…….
“처음엔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정말이야. 즐거웠어. 내가 언제 또 카자마 형님이랑 랭크전을 해보겠어? 근데 시노다 씨는 한 번을 안 해주더라고, 대련을. 이유가 있어?”
있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거부감이 크게 들어서 그랬다. 표현할 순 없었지만 울컥 솟구치는 거부감에 요청을 거부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어서 들어줄 수 없었다. 이유를 묻는 질문은 아니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떨렸던 만큼 더 힘을 주어 호월을 잡는다.
“케이.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모든 일이 벌어질 당시 시노다 루카가 타마코마 지부를 방문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럴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인질이라도 잡았다면 시노다가 타치카와를 제압하는 일의 난이도가 크게 상승할 뻔도 했다. 각오했으면 더는 흔들릴 이유가 없지. 시노다는 이내 자세를 잡는다. 타치카와를 응시하며.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말끝을 흐린다. 말하고 싶지 않은 끝을 문대어 흐려지도록 한다. 호월을 뽑아 든 타치카와가 호월 끝을 까딱이는데 안 되지, 그럼 안 되지, 라고 시노다를 타박하는 듯하다. 이토록 버릇없는 제자이지만, 이렇듯 버릇을 들인 것도 결국 자신이었다. 시노다 씨. 타치카와가 입을 연다. 말은 끝까지 해야지.
“아마 미와 그 녀석이었으면 이렇게 말했을걸?”
지금이라면 살아 있는 누나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라 입에 담을 일 없는 말일 것이다. 시노다를 따라 자세를 잡으며 타치카와가 유쾌하게 말을 잇는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그리곤 힘차게, 바닥을 내디디며 도약한다. 피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직격당했을 위치에 호월을 내리꽂는다.
“실력 행사하겠다.”
쇄도하는 이검의 칼날들. 시노다가 가르친 검, 그리고 날들이다.
얼마나 진심인지는 상관없는 것이지.
승부를 결정하는 건 전력, 전술, 그리고 운.
기합으로 어떻게든 되는 건 실력이 상당히 엇비슷할 때뿐.
그들의 실력이 비슷한가? 말할 수 없다.
다만 운을 꺾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는 있었다. 틈을 벌리기 위해. 빈틈을 발견하기 위해. 시노다 씨. 알려 줘.
“나 보고 죽으라고 말할 수 있어?”
너는 어떻게 내게 그런 질문을 하냐고 혼내야 했다. 그러므로 검을 멈출 순 없었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바람 속에서 바람이 번지고 번지다 번져서 나온 무언가일 뿐이다. 진정 생이라면 열의를 가지고 불태웠겠지만, 이건 결국 쳇바퀴를 타고 빙빙 도는 신세로 전락시켰을 뿐이니 가히 모독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이다. 버려둘 수 없는 것이다. 주워 끌어모아야만 하는 것이다.
즐거웠니, 하고 답이 질문보다 앞섰던 질문을 뒤늦게 던진다. 그래도 친절하게 응, 이라고 다시 한번 대답하면 공기 중을 부유했던 감정이, 거대한 감정을 갈아낸 끝에 먼지처럼 떠다닐지라도 본질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감정이, 슬픔이 어느 날의 거부감처럼 솟구쳐 범람한다. 얼굴을 가린 자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이다.
“다행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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