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out
월드 트리거. 나스쿠마. SF 안드로이드
레이를 본뜬 안드로이드를 만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코는 이 일이 언젠가 일어날 줄 알았던 사람인 양 담담히 제 앞의 화자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입을 열지도 않았다. 그를 비난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유코에게는 그를 비난하거나 화를 낼 자격이 없었고, 그 역시 유코에게서 비난받거나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이 일을 결정한 이들의 부탁으로 그들의 부탁을 유코에게도 전하러 왔을 뿐이었고, 그들도 그에게 ‘거절하더라도 설득하지 말라’고 말하며 그를 걱정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괜히 상대의 화를 사 화를 당할까 염려한 것일 테지만, 그럴 거면 처음부터 남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말 것이지, 라고 하기엔 그들의 사정을 알고 있는 그, 그리고 유코였다. 딸을 본뜬 외양의 기억 장치를 갖고 싶다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무심하지 못한 유코, 그리고 그런 그들을 타박할 만큼의 자격은 갖지 못한 유코. 그리하여 나라사카의 부탁은, 나스 부부 내외의 부탁은 다음과 같았으니 데이터 수집에 협조하여 기억을 공유해줄 수 있겠냐, 그렇게 요약하여 전달될 수 있었다. 유코는 나라사카가 그의 기억 역시 내어주기로 했는지 묻지 않았는데, 아마 그도 대답하지 않으리라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동의했다고 해서 유코까지 동의하란 법은 없었으므로, 그는 자신의 의견이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걸 알기에 유코도 나라사카에게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코는 짧지 않은 시간 고민한 끝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딸에 관한 기억이 잊히지 않도록 한데 모아 데이터화 하겠다는 부모의 애수를 이해하여 내린 결정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나라사카를 통해 유코의 기억을 내어주십사 부탁한 까닭을 알기에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유코가 기억하는 레이가 빠진 레이는 온전한 레이가 되지 못할 것이다. 유코의 레이가 아닌 레이는 완전한 레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유코는, 레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많은 부분을. 그리고 그것은 유코의 기쁨이었으며 자랑이었으며 사랑이었으며…….
사랑…….
아니, 오만…… 이려나…….
이런 걸로 자만하려 하느냐고 하면 그것이 나의 전부였으니 자만할 만하다 대답하리다. 그는 나의 전부였으니 오만해도 좋다고 반박하리다. 그는 유코의 기쁨이었고 자랑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리하여 레이는 유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아니하였으니 왜냐하면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부분이 아니라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전부…….
나라사카는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고, 그가 떠난 뒤 카페에 혼자 남은 유코는 딱 5분이 지난 후에 섧게 울었다. 이제 와 자만해 봤자 무얼 얻는다고. 이제 와 자신하고 자랑해 봤자 무얼 사랑할 수 있다고. 그렇지만 이제 와 울어 봤자였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이제 와. 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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