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생각해 보면 멀쩡했을 리가 없는 사람이다.

월드 트리거. 오키 -> 미즈카미 -> 이코마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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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이야기

「오키!」

쏴.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꿈의 이름은 악몽이 되었다. 악몽에서 나는 명령권을 다시 당신에게 반납하고, 회수한 당신은 나를 보며 명령한다. 웃지 않고. 쏘라고. 저격은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나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긴다. 꿈에서조차도 그날처럼.

그날도 나는 명령에 따랐지만 기록에 남은 명령은 없었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자의로 당신의 의중을 판단했고, 이에 따른 문책을 피할 순 없었지만 그것은 내게도 필요한 책망이었기에 나는 나를 나무라는 이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참작 사유도 받아들여졌다. 그날 당신이 남긴 기록 중에 해당하는 명령은 없었지만, 다른 소리는 남았기 때문이다.

웃음소리.

외침 뒤에 짧게 흘리는, 그러나 분명히 녹음된 웃음소리. 아,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질지어다. 실로 그랬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사가 말을 놓는 데 방해할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런 규칙이었다. 방해하는 것은, 훼방 놓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절대로.

현실에서조차도.

웃기네요, 그것참.

현실은 게임 같지 않다고 한 것은 당신이었는데도 말이에요, 미즈카미 선배.

사실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말이다. 오키 코지는 미즈카미 사토시의 미즈카미 부대가 오래가리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미즈카미 부대는 언젠가 원정 시험에서의 임시 부대, 미즈카미 9번대처럼 임시에 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오키였다. 부대가 존재했던 기간을 보면 실로 그랬다. 오키가 이코마 부대의 스나이퍼에서 미즈카미 부대의 스나이퍼가 되고 나서, 미즈카미의 지시를 따르면서도 오키의 생각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으니 미나미사와도, 호소이도 알았을 것이다. 그들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키를 포함하여 남은 모두가 미즈카미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의견을 모았다(어쩌면 그것이 ‘패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승착’이었을지도). 덕분에 미즈카미 부대는 내분 등의 사유로 해산되는 일 없이 마지막까지 존속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미즈카미는 자신의 부대를 이끄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헷갈리지도 않았다. 그가 말 하나를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말 하나 없이 앞으로의 수를 계산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멀쩡했을 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자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이제 와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을 구해달라고 외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다만 소리쳤고, 다만 붙잡았고, 적의 공간 이동 기술이 누군가가 그를 붙잡았을 때는 동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 끝까지 적을 붙잡고 놓치지 않았다. 과녁이 되었다. 그리고 외쳤다. 트리온 통신 특성상 굳이 소리치지 않아도 들린다는 걸 알 사람인데도. 굳이 소리쳐가며. 내게.

「오키!」

‘즐겁지 않아.’

이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던진, 질문이었을 리가! 어떤 말을 해서든 미즈카미를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멀쩡할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갈수록 점점, 속된 표현으로 ‘맛이 가고’ 있다는 걸 모두가 느껴가고 있을 때였다. ‘글쎄. 복학을 할까.’ 학교로 다시 돌아갈까 한다는 그에게 그런가요, 하고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즐겁겠죠, 뭘 하든 즐거울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 아니었다. 그 또한 그리 생각하길 바라며 꺼낸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글쎄.’ 즐거울까? ‘지금보다는요.’ 그 말에 그건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그에 아주 조금 안심했던 저였고, 그는.

지금은 조금도 즐겁지 않다고, 말하기에 저 역시 그렇다고 대답했다. 맞아요. 전혀 즐겁지 않아요. 그건 당연한 거예요. 모두가 그럴 거예요. 모두가 알고 있어요. 당신만 그런 게 아니야. 그 말은 당연히 그를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놓길 바라서가 아니고. 당신도 알아주길 바라서였건만.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서.

‘야. 너.’

본부로 돌아온 날 라운지에서 멱살이 잡혔다. 하도 움직임이 민첩한 사람이라 조금 놀라기는 했어도, 세게 졸리지도 않았고 트리온체라 아프지도 않은 데다 급히 떨어뜨려 놓는 손길이 있어 오래 잡히지도 않았다. 오키의 멱살을 잡은 이는 카게우라였다. 떨어뜨려 놓은 사람은 무라카미였고, 왜 그랬냐고 화를 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결국 손을 놓는 사람은 다시, 카게우라였다. 그도 알았을 것이다. 그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상한 걸 짓씹은 사람처럼 표정을 구기다 팽개치듯 손을 놓는 그도 오키를 보는 순간 알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멀쩡했을 리가 없었다고. 그 역시.

당연하지 않아요? 멀쩡할 리가 없잖아요, 멀쩡할 리가.

하지만 오키에겐 아직 기회가 있었다. 다섯 사람이 우당탕 넘어진 꼴로 찍힌 사진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원망할 수도 있었다. 원망? 아니. 어쩌면. 부러워할 수도. 아니, 역시 원망할 수도. 당신을 탓할 수도. 당신을 시기할 수도. 시기. 질투.

미즈카미 선배.

내 손을 빌려 한 복수는 즐거웠나요?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이 꿈의 이름은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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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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