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4
월드 트리거. 스와카자 SF 안드로이드
* 이어지지 않는, 과거편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던 건 너잖아, 스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스와 씨, 그게…….”
“그게 뭐?”
“그게…….”
왜 다들 나한테 사실을 알려주길 망설였을까?
“카자마 씨가…….”
“카자마? 걔가 왜?”
“그만…….”
그만…….
왜 마지막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못했는지. 그만. 그만해. 그만 말해. 말하지 마. 왜 나는 머릿속에서 수없이, 연거푸 그리 외치면서도 정작 현실에선 멍하니, 멍청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는지. 책에는, 특히나 추리 소설에는, 복선이란 게 있고 단서란 게 있고 독자는 그것들을 모아 작가가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밝혀놓을 진상을 추리한다. 그러니―내 말은, 그것은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풀려야 할 진상이란 것이다. 물론 저처럼 추리 소설을 진탕 읽은 독자라면 중간쯤 읽었을 때 작중 인물들보다 먼저 진상을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그건 책 이야기고 현실에서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떠들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래서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것일까? 그만. 그만해. 그만 말해. 하지만 나는 그들이 무어라 말할지 알고 있고,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 사실을 알아버리고 말았고, 그렇지만 이건 책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 마지막에 도달할 때까지, 마침내 그 순간이 도래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왜?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좋아하는 사람 있냐?’
이 전쟁이 끝나면 고백할 거다.
‘있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수 있으면, 그럴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혼자 꿍쳐놓을 마음은 아니었으니까. 그랬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질문을 했던가? 혹시나 하면서도 확인용으로. 그랬던가? 기억나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이제는 다시는 펼쳐보지 못할 페이지가 되어버렸으니 그러면 안 되는데 난.
노을 진 하늘을 마주하며 난간을 잡고 선 네가 눈에 선하다. 아직은.
언젠간 잊어버릴, 그리하여 잃어버릴, 그러기 쉽도록 책에서 찢긴 페이지지만.
내 손에 쥐어진.
내 손에만.
“스와 왔네. 알아볼 수 있지?”
그래서 사람들은 앨범을 만들었나 보다. 그들 모두 손에 찢긴 페이지만 들리게 되어서, 스와만이 잃은 게 아닌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더는 그들 머릿속에서 흐려져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고 저장하고 잊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재생하는 장치를. 그것을 본 순간 스와도 그 사실을 이해하고 말아서 생각처럼 모나게 굴 수 없었다. 마주한 순간엔 저 역시 날 선 모를 깎아버려야 했다. 테라시마는 스와를 ‘기억하지’라고는 묻지 않았다. ‘알아볼 수 있지?’ 염색을 관둔 지 꽤 되어 까맣게 돌아간 머리카락을 빤히 보던 그것은 일상적인 투로 스와에게 말했다. ‘염색은 이제 관둔 거냐?’라고.
그 말에 저는 웃었던가……. 소리가 있었나, 얼굴만 일그러뜨렸나.
대답했던가.
맞아. 관뒀어.
전부 관뒀어.
친구만이 아니었던 관계로 만들던 감정도.
그밖에 다른 것들도.
나고 자란 고향에 머무르는 것도. 살아온 기반을 유지하는 것도.
아, 우리는 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별거 없는 도시에 쓸데없이 발에 챌 만큼 많은 추억을 쌓아와서…….
‘좋아하는 사람 있냐?’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
무슨 대답을 기대해서?
스와에게는 다 읽지 않고 엎어놓은 책들이 꽤 많았다. 읽다 보면 결말을 읽고 싶지 않은 책들도 제법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말부를 아예 뜯어놓는 식으로 훼손한 책은 지금껏 단 한 권도 없었다. 당연히, 당연히도. 그렇지만 그가 뜯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뜯긴 책이, 찢긴 페이지가 흩날린다. 허공에. 다시 말해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공간에. 아.
우리가 함께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었다면 좋았겠다.
우리가 함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
우리가 함께…….
“그날에도 말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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