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3
월드 트리거. 스와카자 SF 안드로이드
* 이어지지 않는, 배드 엔딩 루트
“걔는 성격도 나쁘고 짜증 나는 녀석이었지만.”
“너처럼 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거든.”
“나를 죽이려고 하진 않았어.”
스피커를 망가뜨리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발성을 의도하고 음원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목울대가 있을 부근에 설치되었던 듯한 스피커는 망가진 것인지 더는 아무 소리도 출력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 그것은 이제 입만을 소리 없이 뻐끔대며 나에게 무어라 무언가를 전하려 하고 있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이 순간 나에겐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을 권력이 있었고, 권력을 내 마음껏 휘두르는 나는 폭군이었으며, 그것을 내게 세습한 너의 모습을 똑딴 그것에 나는 속지 않을 만큼 영민했다(실은 어리석었다). 양위를 했으면 죽으소서, 선왕이여. 아니면 죽음으로써 선위하십시오, 폭군이여. 아니면 입을 다무소서. 영원히. 죽고 싶지 않으면. 내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너에게 그것이 중요하다면.
나에겐 너무도 중요했어……. 알아?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날 만큼, 살아온 기반을 무참히 버릴 만큼.
“야…… 우리는 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별거 없는 도시가 무어 그리 좋다고 이렇게 쓸데없이 발에 챌 만큼 많은 추억을 쌓아온 거냐?”
견딜 수 없을 만큼.
문장이 너무 길어, 스와. 그렇게 말해주면 좋았겠다. 그러나 이내 몸을 축 늘어뜨린 그것에선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봐……? 어떻게든 다리가 꼬이지 않도록 쓰러지는 그것을 받쳐 난간에 등을 기대도록 앉혀두었다. 뭐야. 뭔데. 스피커 뒤에는 전원 스위치라도 연결되어 있었던 걸까.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이 그것은 눈 뜬 채 그대로 숨 없이, 허리는 조금 앞으로 기울어진 채로 맥 없이, 앉아 있어서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그날의 너도 어쩌면. 오늘의 이 순간처럼 어쩌면.
아.
‘확 실패하라지.’ 저주한 것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저주했다는 사실을. 저주란 상대 무덤과 내 무덤을 같이 파는 짓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스와 코타로는 함께 팠던 거야. 자신의 무덤도.
너의 무덤 옆에.
“……그래. 곧 갈게. 기다리고 있어.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무슨 일이야.”
테라시마가 전화를 끊고 주섬주섬 자리를 일어나며 말했다. 스와가 로봇을 망가뜨린 것 같다고. 스와가? 아무래도 그럴 사람은 아니었던지라 되물으면 생각보다 망가지기 쉽긴 하다고 변명 아닌 변호를 늘어주는 친구였다. 감정이 좀 격해졌나 보지. 아무래도. 그럴 수 있으니까. 그래도 된다는 말뜻은 아니지만, 아무튼.
‘내가 카자마를 죽였어.’
‘……그건 카자마가 아니야. 아니라고 말한 건 너였…….’
‘지금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때를 말하는 거야. 2년 전에, 내가.’
그것이 그날을 알고 있는 이유야 별거 없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고백할 거다.’ 그 말에 테라시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던 기억이 있다. ‘트리온체로 고백할 생각은 아니지?’ 그 말에 의상 따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헛, 하고 굳어지던 얼굴에 에휴, 한숨쉬었던 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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