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Fishing

월드 트리거. 아즈마 낚시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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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 부대가 일주일간 휴가를 받았다.

보더의 휴가는 사용 시기에 제약이 거의 없음에도 주로 중고등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는 시기에 맞춰 사용되고는 했다. 가용 인원이 늘어나는 시기이기에 일정을 통보하거나 대타를 구하기도 편하고, 하루를 종일로 푹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도 안 가고! 그야 방학이니까! 집에서만 뒹굴거려도 만족스러울 한여름 가운데 일주일, 여름휴가를 앞두고 작전실을 비우기 전날 코아라이는 아즈마에게 휴가 동안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다. 뭐 하실 거예요? 그에 아즈마가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나야 늘 똑같지.

“낚시.”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된 아즈마의 취미는 나이에 비하면 조금 원숙하다고 느낄 수 있는 캠핑과 낚시였다. 캠핑이야 젊은 층에도 인기가 많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낚시는 보통 떠들썩하고 재빠르게 변화하는 것에 눈길을 주기 쉬운 20대 청년에게 그리 인기 있는 취미라곤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취미를 정하고 이를 즐길 때 인기 여부 같은 게 무어 중요하랴. 본인이 행복하다면 그만이기에 아즈마 역시 행복했다. 연구실에도 같은 기간 휴가를 신청했기에 그 또한 온종일 제 뜻대로 하루를 누리며 여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가온 퇴근 시간. 일주일 후에 보자며 손을 흔든 그들은 보더 본부 입구에서 헤어졌다. 코아라이와 오쿠데라는 당장 내일 축구 경기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기에 이튿날 다시 만날 예정이었지만, 히토미나 아즈마와는 별다른 약속이 없어 별일이 없으면 일주일 후에야 볼 얼굴들이 되었다. 그래도, 연락드릴게요! 저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단체 메신저 방은 휴가 동안 그들이 찍어 올린 사진으로 분주할 예정이다. 얼굴만 보지 않을 뿐 연락은 수시로 주고받을 만큼 친밀한 사이인 덕이었다.

그리하여 이번 휴가도 별일 없다면 그럴 터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휴가 닷새째 되는 날까지 아즈마가 잠수를 타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그들이 전날 폭우로 저수지 물이 불어 발생한 잇단 익사 사고 소식을 듣기 전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 텐데. 괜찮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탓에.

“……여기 맞아?”

“……여기 맞다니까. 분명 여기라고 들었어.”

“…….”

엿새째 되는 날, 수풀을 헤치며 꾸역꾸역 산길을 오르는 코아라이, 오쿠데라, 히토미의 옷은 이마를 타고 줄줄 흐르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자전거가 들어가지 못하는 길이라 앞서 지나간 자동차 바퀴 자국만 보고 비포장 된 흙길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고, 태양은 뜨거웠으며, 폭우가 지나가기 무섭게 시작된 폭염이 숨통을 꽉 옥죄는 듯하였다. 가지고 온 물통은 텅 빈 지 오래였다. 아껴 마신다고 마셨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거기다 저수지에 도착하고 난 뒤에도 큰일은 끝나지 않을 예정이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대한 저수지 저변 어디에 차를 주차해 뒀을 줄 알고 아즈마가 끌고 왔을 차를 찾아 헤맨단 말인가(아즈마는 면허가 있었으므로 그들과 달리 차를 타고 이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날, 몇 번씩 전화를 걸었음에도 휴대전화가 꺼져 있다는 메시지밖에 들을 수 없었을 때, 그들의 불안은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날이 밝기 무섭게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정류장에서 내린 뒤 걸어서 30분. 그리고 시작된 산행이 지금까지……. 도리어 이쪽의 탈진이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경찰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다. 성인이지 않은가. 며칠 연락 안 되는 것 정도로는 실종 신고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너희, 가족이니?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해도 경찰은 그리 주의 깊게 듣지 않는 듯했다. 어차피 순찰은 도니까 그때 확인해 보겠다는 말에, 아이들은 아즈마를 찾아 직접 움직일 결심을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능히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간과한 사실 하나만 제하면.

“왜 휴가 기간엔 트리거를 반납해야 하는 거야……?”

“분명 어떤 멍청이가 놀러 나갔다가 분실한 적이 있는 게 틀림없어.”

“…….”

맨몸을 단련해야 하는 필요성을 이렇게 알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트리온체라면 이 정도 산행쯤이야 식은 죽 먹기인 걸 아는데, 실제 몸으론 어림도 없는 산행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래도 간신히, 겨우, 가까스로 저수지 가까이에 도착했을 때였다. 까마득하게 깊은 물이 지척에 고여 있었고, 그리고…….

“저기!”

내내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은 채 묵묵히 산을 오르고 또 오르던 히토미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치자 오쿠데라와 코아라이의 시선도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곧장 쏠렸다. 과연, 나뭇잎 몇 장이 지붕과 유리창에 떨어져 있는 차가 길에서 조금 벗어난 터에 혼자 주차되어 있었다. 차가 근처에 있다면 아마도 여기에……. 고지가 멀지 않았기에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달려가자 마침내 짙은 남색의 텐트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침내.

“얘들아?”

“으앙, 아즈마 씨이이이이!”

“아즈마 씨…….”

“찾았다…….”

지난날같이 달려 나간 코아라이가 아즈마의 다리에 곧장 매달렸다. 오쿠데라와 히토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시원한 그늘에 얼굴에 눌러쓰고 있던 챙 모자를 벗어든 아즈마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채로 그들을 맞이했다. 뭐, 무슨 일 있었니?

아무 일도 없었다.

“휴대전화는 대체 왜 꺼두신 거예요?”

사정을 듣고 난 이후였다. 아이고, 맙소사. 못 말리겠다며 웃고 만 아즈마에게 오쿠데라가 평소답지 않게 조금 불퉁한 목소리로 흘기듯이 물었다. 훌쩍이다 이내 겨우 진정한 코아라이, 오쿠데라, 히토미에게 각각 아이스박스에 넣어두었던 캔 커피를 꺼내다 준 아즈마는 그가 내어준 방석에 나란히 앉은 그들 앞에 마주 앉아 멋쩍게 대답했다.

“실수로 물에 빠뜨렸는데 그때 고장 나서…….”

“아니……! 휴대전화가 고장 났으면 곧장 내려와 고칠 생각을 해야죠……!”

“그치만 어차피 캠핑 간다고 말도 해놓은 상태라…….”

“걱정했잖아요! 엄청 걱정했다고요!”

“이번만큼은 아즈마 씨가 잘못했어요. 엄청.”

그들이 언제 또 아즈마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을까. 황당하다는 듯,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 이들 앞에 죄인이 된 아즈마는 죄인답게 얌전히 앉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래. 알겠다, 얘들아. 같이 내려가자. 내려가서 휴대전화도 고치고. 그럼 되겠지? 결국 아즈마의 입에서 돌아가자는 말이 나왔다. 그때까지 아즈마를 열심히 몰아붙인 아이들의 노력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근데 너희 여기까지 걸어서 올라온 거야? 네……. 그래도 돌아갈 때는 아즈마의 차를 타고 편히 내려갈 수 있을 테니 다행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한참을 앉아서 기력을 회복했을 때쯤, 텐트 걷는 것 좀 도와달라는 말에 냉큼 일어나 돕는 아이들을 향해 미소 지은 아즈마는 남몰래 속으로 한숨을 흘렸더랬다. 낚싯대 건지러 갔다가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휴대전화가 물에 빠졌을 때, 그리고 그대로 임종을 맞이한 휴대전화가 켜지지 않았을 때 실은 살짝 안도했던 그였다. 전화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받지 않을 수 있었던 학교, 보더, 세상의 연락이었는데. 하루 일찍 끝을 고한 휴가에 솔직히 눈물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별수 없지만. 정말로 별수 없지만.

눈물은 저수지에 모두 두고 가리다. 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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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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