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증오의 사사

월드 트리거. Be Happy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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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슈지는 보더 내에선 제법 흔한, 네이버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그것이 그가 가진 복수심이 다른 이들과 같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눈앞에서 가족이 살해당하고 그 모습을 목도한 아이의 심정은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는 짐작조차 버거운 법이기 때문이었다(슬프게도, 이것 역시 보더에선 제법 흔히 공유되는 사례 중 하나였다). 다행인지 아닌지 제법 나쁘지 않은 트리온 보유량 덕에 전투원으로 입대할 수 있었던 미와는 곧 빠른 속도로 B급 정규 요원으로 승급했고, 이에 상부는 그를 아즈마 하루아키가 이끄는 아즈마 부대에 배속시켰다. 요주의 대상인 그의 관리를 상대적 연장자에 속하는 아즈마에게 맡긴 것이다. 설령 그가 돌발 행동을 저지를지라도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당시 아즈마의 나이는 20대 초반에 불과했지만 보더의 지시에 순응한 그는 미와를 자신의 부대원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렇듯 초기 아즈마 부대는 사실상 상부에 의해 조직되어 보더 내 요주의 인물, 주로 길들지 않은 신입들을 한곳에 모아 길들이는 역할을 맡았다. 아즈마로 하여금 그들을 관리하게 한 상부의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고만 하면 겸손할까, 효과도 좋았다. 미와 슈지, 니노미야 마사타카, 카코 노조미, 츠키미 렌으로 구성된 아즈마 부대는 후일 A급 정예 부대들 사이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쥐는 부대가 되니, 이후로 상부가 아즈마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즈마 역시 별다른 이유가 있지 않은 한 그들의 지시를 거절하지 않았으므로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부대원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미와는 어린 데 반해 상처는 컸기에 아즈마뿐만이 아니라 니노미야와 카코, 츠키미까지 아즈마가 굳이 말 얹을 필요도 없이 먼저 미와를 위해 많이 신경 써주고는 했다. 처음엔 표정 변화도 없고 말수도 적던 아이가 그들을 먼저 부르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등이 되기까지 하니 상부의 지시로 조직된 부대라는 딱딱한 전사야 아무 상관 없을 만큼 아즈마 부대의 분위기는 꽤 괜찮기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 중 꽤 많은 이가 알게 모르게 주목한 건 역시 미와였더랬다. 그 왜, 처음엔 네이버라면 모두 때려죽일 기세로 이 악물고 덤벼들기만 했잖아. 요전번에 보니 웃고 있었다니까?

흘려들을 순 없는 이야기였다.

사격에도 제법 나쁘지 않은 적성을 가진 아이와 함께 사격 훈련을 함께하러 갔을 때였다. 훈련장에는 그들밖에 없었고 이는 아즈마가 미리 요청한 사항이기도 했다. 미와는 알지 못했지만 운 좋게 훈련장이 붐비지 않고 빈 시간을 골라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다행이란 말을 꺼내며 아즈마가 가르쳐준 대로 자세를 잡았다. 미와 옆에 서서 자신의 과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던 아즈마가 마침내 과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미와는 그때까지 그가 과녁에 집중하느라 말을 하지 않는 줄로만 알고 있었고, 슈지.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불렸을 때도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평상시와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네이버를 구제하는 게 즐겁니?”

그러나 그 말에는 아무렇지 않게 예, 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미와는 똑똑한 아이였다. 아즈마의 말에 그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말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을 정도로. 아이의 손이 달달 떨렸다. 검지는 여전히 방아쇠에 걸려 있는 상태였기에 말을 마침과 동시에 미와에게로 눈을 돌린 아즈마는 미와에게 지시했다. 슈지. 총을 내려놔라. 오발 사고를 막기 위한 지시에 미와는 곧 손에서 총을 내려놨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진정될 리는 없었다. 그걸 알기에 아즈마 역시 그에게 ‘진정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하에게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지시하는 대장이 아니었다.

“슈지. 널 탓하려는 게 아니야. 사실을 확인한 거지.”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거잖아요.”

“왜 그래선 안 되지?”

네이버는 모두 적이었다. 살아있는 네이버는 모두 죽여 더는 살아있지 못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미와는 그러한 키도 마사무네의 관점에 한 점 흔들림이나 의심 하나 없이 동의했고, 따라서 그런 그가 네이버를 죽이는 데 즐거움을 느꼈다는 이유로 ‘죄의식’ 같은 감정을 가질 리는 만무했다. 그가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달리 있었다. 다른 곳에 있었다.

“제가 즐거워하고 있었다고요.”

과거에, 누이가 피 흘리며 죽은 그 땅에. 대체 그들이 무엇을 앗아가기 위하여 가슴을 꿰뚫은 것인지 알지 못했던 그 때에. 죽어가는 누이를 끌어안은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에.

“화를 내지는 못할망정 즐거워하고 있었다고요.”

“슈지. 매사를 증오로만 채워선 오래 버틸 수 없어.”

“즐거움으로 채울 수도 없어요.”

누나는…….

죽은 자는 더는 즐거워할 수 없잖은가. 그 사실을 떠올리면 즐거워할 수 없게 되잖은가. 그게 맞는데, 그래야 하는 게 맞는데. 아즈마는 그 역시 그때까지 쥐고 있던 총을 내려놓은 뒤 팔짱을 끼며 말했다. 슈지. 나는.

“네가 즐거움을 찾길 바랐다. 취미든, 다른 일상에서든.”

“그럴 수 없었던 것도 아셨겠네요.”

“알아. 그래서 네이버를 구축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은 거겠지. 다른 것에선 즐거움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찾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견딜 수가 없어요.”

품 안에서 식어가던 손위 누이는 눈조차 감지 못해 제가 감겨주어야 했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날이 있고, 밤 깊으면 술렁이는 기억 있으며, 들숨과 날숨이 어느 순간 날아들지 않고 들이치지도 않아 그저 그렇게 멎었던 숨소리의 마지막 소리가 그의 귀를 오랫동안 메우며 맴을 돌았다. 이에 따라 잠들지 못하고 버려진 잠이 쓰레기 봉지 안에 가득 담겨 집 밖으로 버려지길 반복하니, 불면하는 자는 지극히 불행하리다. 최근 들어 자신이 잠들 수 있게 된 연유가 여기 있었고 오늘 이 순간 발각되었으니 미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비명 같은 숨을 토했다. 견딜 수 없어요. 견뎌지지 않아요.

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아즈마가 말했다.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며 처방을 내린다.

“계속 즐거워해라. 슈지.”

“아즈마 씨.”

“증오하는 네이버를 구제하며 계속 즐거워하도록 해라. 그래야 네 삶이 견딜 수 있으니.”

너는 즐거움을 견딜 수 없다고 했지만 매사를 증오로만 채운다면 네 삶이 그걸 견디지 못할 거다. 그러니 계속 증오하고, 계속 즐거워해라. 너와 네 삶 모두 서로를 견뎌낼 수 있도록.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아이는 결국 끄덕이듯 고개를 떨어뜨린다. 떨어뜨린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어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설령 그것이 아이에게 기쁨의 면죄부를 내어주는 것일지라도. 증오의 즐거움을 허가하는 것일지라도. 그러므로 그런 아이를 내려다보는 아즈마의 눈에 즐거움이 깃들 일은 없다. 안수 아래 가르침을 받은 아이가, 미와가 이에 대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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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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