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최종전 곧 시작합니다

월드 트리거. 맹점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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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테 말하는 거예요?”

어딜 보는 거예요?

……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제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이란 미즈카미에게 더없이 익숙했기에 새삼 낯설게 여기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를 읽는다는 건, 수싸움이 기본인 스포츠를 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경기가 시작한 이래 판에서 단 한 번도 꿈쩍하지도 하지 않은 말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것. 장기는 겉으로는 정적으로 보여도 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스포츠였고, 바로 그 장기가 한때의 미즈카미가 자랑할 수 있었던 장기였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과열된 머릿속에서는 분홍색 뇌가 회색 뇌로 변할 때까지 가열하는 걸 멈추지 않는. 그 고열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게임. 누가 더 멀리 걸어가는지 내기하는 승부.

그 길에는 끝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는 보이지 않는 벽에 머리를 찧고는 끝이 없어야 할 길의 끝에 닿았다. 아, 여기가 드디어 끝인가 하고 손을 뻗어 벽을 만지는데, 바로 앞에, 맞은편에 앉은,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지나쳐 오는 상대가 있어 미즈카미는 제 손에 닿은 그것이 길의 끝이 아니라 자신의 끝인 것을 그제야 알았다. 저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그에게는 보인다. 아직 자신이지도 않은 자신이 그에게는 관측된다. 미즈카미에겐 앞을 가로막는 벽을 바닥에 툭 튀어나온 돌부리를 피해 가듯 가볍게 다리를 올려 뛰어넘는다. 이내, 지고 만다.

물론 미즈카미 자신도 지금껏 그가 이겨온 상대들에게 있어선 그런 자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에게 진 모든 이가 장기를 단념하진 않았던 것처럼, 미즈카미 역시 좀 더 배우고, 갈고, 닦다 보면 보이지 않는 길이 눈에 보일 수도, 그 길을 걸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멈춰 서지만 않는다면야. 멈춰 선다면 더는 따라잡을 수 없게 되니, 그러지만 않는다면야. 그리고 미즈카미는 그때 어떻게 했냐면…….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할 때가 많은 사람인 건 알고 있었다. 로그 영상을 보면 득점을 내는 순간마다 시선은 정면 고정. 거기에 카메라가 있는 줄 그 찰나에 어찌 알았냐고 물어봐도 이해가 되는 대답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어이없어하는 그에게 미래의 오퍼레이터 호소이 마오리는 이렇게 말했다. 내버려둬. 그런 사람이잖아.

내버려둬. 그런 사람이니까.

웃기게도 건성처럼 들릴 수 있는, 그러나 호소이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건성으로 답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잘 아는 대답을 듣는 순간 미즈카미의 머릿속은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그 자신이 취해야 할 태도 역시 멀끔하게 정리되었더랬다. 내버려둬. 그런 사람. 장기를 그만두기 전, 스스로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며 참가한 공식 대회에서의 대국에서 패배로 끝난 판을 복기하고 일어섰을 때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훌쩍이며 우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제 허리쯤 올까 싶을 정도로 작은 아이가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옆에선 그 애의 보호자인지 선생인지 하는 사람이 아이를 달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들린 말이었다. 그 말은. 여기까지 올 정도면 예선은 통과한 영재일 텐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격이 고약한 이에게 잘못 걸려 말들이 차례차례 농락당하는, 그러한 호된 꼴을 당했다는 모양이었다. 안타깝게도.

만약 제가 정의감 넘치고 의욕이 넘치며 실력까지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아이를 울린 상대를 찾아내 대가를 받아라⸺하며 똑같이 골릴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미즈카미의 대국은 이미 미즈카미의 패배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그는 내버려두기로 했다.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이번에도…….

이번에도……?

미즈카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 그 세상을 보는 이 앞에서 미즈카미가 할 수 있는 것은 만담처럼 바보 소리(처럼 들리는 소리)를 하는 이 옆에서 핀잔을 놓는 것이었는데, 사실 미즈카미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해야 할 일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기에 그만하면 충분히 제 몫을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만담의 상대역을 하는 것이. 상대역이라, 제가 이기지 못하는 상대는 항상 저를 두고 앞서 나아가며 제 맞은편에 앉아 제 입에서 ‘졌습니다’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존재였을진대. 그래도 지금은 이전과 다른 점이 있기는 하였다. 너무나도 중요한 차이점이 있기는 있었다.

“그럼 갈까.”

“네!”

“또 멋대로 튀어 나가지 말고!”

“이번에는 빗맞추지 마.”

“하하, 노력해 볼게요.”

그들은 모두 같은 쪽에 서 있었다. 미즈카미 쪽에, 미즈카미 편에. 가자. 네. 가요. 미즈카미가 경계할 자도 이 중에는 없었다. 저는 보지 못한다고 해도, 제 눈엔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만담의 상대역뿐인 것도 아니므로 상관없다. 그는 지금의 자신을 지나치게 깔보지도 아니하며, 더는 패배한 판을 두고 앉아 보이지 않는 길 앞에 망연하지도 않다. 다만 집중할 때는 왔다. 집중할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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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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