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Tumbling down

월드 트리거. 실력파 엘리트 진 유이치의 우울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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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는 의외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앞날을 볼 줄 안다고 해서 뜻대로 최고의 미래를 쟁취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애써서 겨우 최고에서 버금, 또는 세 번째쯤 되는 미래를 손에 넣는 게 보통이려나. 최악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으로 감지덕지하라는 것처럼 눈꺼풀 안쪽에 무수히 떠오른 채널이 수시로 그 영상을 갈아치울 때, 그런 와중에 그 정도면 비교적 선방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의식하여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보지 않을 수도 있긴 하지만, 상시 켜져 있는 채널이란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 시야 가장자리에 닿는 빛과 소리까지 소거하기란 불가능하다. 진정 아무것도 보길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은둔하며 살아야 하는 부작용을 그는 그럭저럭,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받아들였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런 건 너무 외로우니까. 그렇게는 살 수 없으니까.

다행인지 이 SE라는 것은 발현한 자에게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쇠심줄 같은 이성의 끈도 함께 부여하는 듯했다. 무슨 뜻이냐면 돌아버릴 것 같은 능력으로도 돌아버리지 않고 사는 것이 이들이란 뜻이다. 적어도 진 유이치는 그러했고, 아마 다른 사이드 이펙트 소유자도 상황은 비슷하리다. 그들의 삶이 어떤지 정녕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얹는 것은 무례하다는 상식에, 힘들겠다, 고생이 많겠다, 같은 말은 그렇게까지 많이 듣진 않는 편이었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꺼내기 힘든 말들이라, 그러니 가까운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것도 방법이겠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진다면.

그리고 어리광을 부릴 수 없는 날도 결국 온다.

시야에 담은 순간 ‘보인’, 아직 발화되지 못한 질문에서 차마 도망치지 못하고, 저를 향해 다가오는 이가 마침내 제 앞에 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날이 온다. 그러면 보인 대로, 그대로 제 앞에 선 자가 입을 열고, 저는 사실상 그 질문을 두 번 이상 받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가 붙잡을 수 없던 자를 입에 담는 자에게서 진은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치지 못한다. 도망치지 않는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조금이나마 어리광을 부리자면 듣고 싶지는 않은 질문이라 토로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그를 붙잡은 자도 그밖에 붙잡을 자가 없는 탓에 후회할 질문을 입에 담는 것을 알고 있다. 조금 후의 미래에서, 결국 울고 마는 자를 보고 말았기 때문에, 진은. 그가 아직 울기도 전인 지금에서도 그를 외면하지 못한다.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을 두 번 듣길 택한다. 진 씨. 정말로.

“보지 못했나요?”

“…….”

더는 화면을 바꾸지 않는 채널들이 있다. 백색 소음만을 뱉어내게 되는 이가 있다.

그 소리는 그의 귓가에서 귓속까지 남는 공간 하나 없이 메워 덮는다. 더는 재생되지 않을 기억 속 소리를 먹어 치우며 때때로 그의 책임을 종용하는 것처럼 들리기 부지기수다. 그러나 너무나 빠르게 변화한 미래에서, 충동적이나 그 수밖에 없다며 결정되는 결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뛰어들고 마는, 그렇게 백색으로 덮이는 그들에게서. 아, 경사진 트랙도 정도껏이어야지. 받치지도 못하게, 잡아 세우지도 못하게, 굴러떨어지면 정말 어떡하라는 건지. 나 참 정말 곤란한 이들이란 말이지, 라고는.

말할 수 없어서.

“그래요. 그렇군요.”

그럼에도 그럭저럭 대답이 되었던 듯하다. 몸을 돌려 비척비척 걸어 나가는 이를 붙잡기엔 그가 바라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말해줄 수 없을 바에야 입을 다무는 게 나아서. 그마저 사이드 이펙트가 일러주는 바라서. 입을 다물고, 굴러떨어진다. 아래로, 아래로.

Tumbling down…

Tumbling down…

Tumbling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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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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