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비가시광선

월드 트리거. 팬아트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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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아트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장 옆에 존재하는 트리온 기관은 이를 명백하게 증명하는 신체 장기 중 하나로, 이 비가시기관에서 생성되는 트리온은 때때로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여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기적처럼 이뤄내곤 하였다. ‘뜻대로 이루어지리다. 네 뜻이 무엇이든.’ 이같이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바람에 힘을 불어넣어 유형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트리온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물질이긴 했지만,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물질이 트리온뿐인 것은 아니기도 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이 어디 트리온뿐이랴. 지금 당장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저 일광의 열을 잡아보라 하면 그 눈에 보이는 형상도, 손에 쥐어지는 형태도 아무것도 없을 것을 우리는 안다. 열이란 본디 인간의 눈에 비치지 아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가시광 그 가장자리에 자리한 빛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적색보다 더 긴 파장. 외곽에 놓이는 그 빛을.

날이 조금씩 더워지는 시기였다. 이보다 좀 더 더워져야만 시작할 여름방학을 벌써부터 바라기엔 조금 이른 때이기도 하였다. 모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이대로 끝까지 즐거우리라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으려 했고, 강하게, 침착하게 행동하려 애썼다. 배운 대로, 가르침 받은 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무형의 가르침은 오비시마의 내면에 분명 존재하여 그 의지를 그 육신이 이루도록 그를 이끌었다. 흔들리지 않게. 강하고, 또 침착하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어긋나 점점 온기를 잃어갈 때도, 그럼에도 오비시마는 몇 번이나 그답게 행동하기 위해 되뇌고 또 되뇌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 잊지 않는다면 잃지도 않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실상 그가 알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 당연한 사실 하나면 되었다. 잊는다고 해서 잃는 것은 아니다. 잃어버린다고 해서 존재조차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리다.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불어오지도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부르는 이름도, 부르는 이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침착하게. 당신의 블랙 트리거는 당신을 닮았다.

그리고 따뜻했다. 모든 블랙 트리거가 이처럼 토대가 된 이를 닮는지는 알지 못해도 적어도 당신이 남긴 트리거는 당신을 닮아 흔들리지 않고, 강하고, 침착해지도록 나를 이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기에 도리어 더욱 선명히 느낄 수 있는 존재도 있다. 저 일광의 열처럼, 당신도. 당신의 존재처럼, 저 빛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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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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