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격자 눈에 비치는 것은

월드 트리거. 타치카와 이야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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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를 결정하는 건 전력, 전술, 그리고 운. 그에 들지 못한 진심은 꺾이지 않는 심지가 되어줄지언정 나머지 셋을 거스를 만한 힘은 갖지 못했다. 물론 기합을 넣는 것이 안 넣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기합으로 어떻게든 되는 건 실력이 상당히 엇비슷할 때뿐이기에 기합으로 승리했다고 승부를 해석하기보다는, 이미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쪽이 좀 더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측한 결과이기도 하겠다. 주관적인 진심에 매달려서야 상대에 앞서 자신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다. 진심에 관해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게 이전보다 강해지는 데 좀 더 도움이 되리다.

거의 비슷한 실력자가 박빙으로 부딪치는 승부가 아닌 이상 진심이 승부에 일조하는 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는 생각했다. 솔직히 얼마나 진심인지에 따라 승부가 좌우된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냉혹한 소리가 되겠는가. 패배한 자는 진심이 부족했다는 소리가 되는데, 그는 자신에게 진 모든 이에게서 본 진심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이 부족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때로 그저 ‘즐겁게’ 호월을 휘두르는 저보다 더 투지로 끓어오르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만으로 세우는 줄은 실력만으로 세운 지금의 줄과는 그 모양이 크게 다르리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진심인지에 따라 승부가 좌우된다면 내가 1위가 될 리가 없지.’ 그 말을 하는 당사자가 당사자다 보니 재수 없는 발언으로 들리리란 것은 십분 인정하나 그 안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을 향한 존중이었다. 그들의 진심을 향한 존중. 결과만 보고 전술에 대해 말해봤자 의미가 없듯이, 승패를 거론하는 데 진심을 건드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그는 생각한다. 얼마나 진심인지는 상관없다. 진심과 승패는 같이 말할 수 있는, 같은 선에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 패배도 제 진심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력과 전술, 운에서 밀렸기 때문이지, 진심이 부족해서 졌다고는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는 충분히 진심으로 승부에 임했고 동시에 자신을 이긴 이의 진심도 부정할 생각이 없지만 애초에 진심과 승패는 상관관계도 없고 솔직히…… 진심이 어떻든 그 이전에 승패를 말할 수 있는 대결을 벌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만족하고, 또 아주 조금은 감사하고 있기도 했다. 진심과 상관없이 도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기분은 진심으로 승패가 좌우되는 것보다 더 별로였기에. 그러므로 그는 조금 전 패배한 것 따위 조금도 개의치 않아 하며 외칠 뿐이었다. 격자 눈에 비치는 것이 오로지 상대뿐이듯이.

“한 번 더 하자,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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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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