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9

월드 트리거. Sniper Who?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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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 타마코마 지부 소속 A급 전투원이자 사이드 이펙트 보유자, 자칭 실력파 엘리트 진이 볼 수 있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미래였다. 따라서 살아있지 않은 자의 미래 또는 사물의 미래는 볼 수 없었고, 진의 눈앞에 있는 그것은 둘 모두에 해당하였으므로 진은 그것의 미래를 볼 수 없었고 거기까지는 예상 범주에 속한 일이기도 하였다. 음, 역시. 안 보이네. 그런 건가 봐, 아즈마 씨.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거기에 작은 문제가 생기고 만 것이 문제였으니, 미래를 보는 진의 사이드 이펙트에 그것의 미래는 걸리지 않는다는 점, 바로 거기서부터 문제는 비롯되었다. 무슨 소리냐면 진의 사이드 이펙트, 또 다른 시야에 그것의 미래가 걸린 순간, 팟!

“검게 폐색돼버려.”

따라서 진은 어떤 식으로든 그것의 미래를 볼 수 없었다. 그것의 미래와 연관된 이들의 미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두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진은 소수의, ‘의태’ 또는 무언가일 트리온 병사, 또는 트리거 사용자를 처리하기 위해 소집되었던 이들, 그리고 그에 속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이들에게만 그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즈마 씨’를 아는 이들. 정작 ‘아즈마’에게는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니 당신의 존재가 나의 미래 예지를 방해합니다, 라고, 말했을 때 그가 취할 행동에는 그가 원하지 않는 행동 역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아즈마 씨는 몰라.’ 그 말에 ‘아즈마 씨라고 부르는 거냐, 그거.’ 라고, 말한 스와에게 카코가 말했다. 입가엔 여전히 미소를 띤 채였다. 또한 그를 타박하거나 빈정거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스와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너무하시네, 스와 씨.”

모르진 않지만, 여간해선 곱게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슬프게도.

“너무한 건 너희지.”

“카코.”

“스와, 너도 그만해.”

알고 있었다. ‘그게 중요한가?’ 그 문장으로 모든 문제가 정리되었다. 그것을 ‘아즈마 하루아키’로 부르는 것이, ‘그것’으로 부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언제나 눈앞의 문제였고 그 외는 방해 요소가 될 뿐이었다. 수신을 원치 않은 모든 신호는 잡음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가? 하면 그것의 정체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트리온으로 구성된, 트리온으로 이뤄진 신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밝혀낼 수 있었지만, 그 이상 그 이하에 남은 것이 있기에 기실 그들은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와 대면해야만 했다. 정체. 정의. 생전의 ‘진짜’ 아즈마 하루아키는 무얼 만들려고 한 것인가? 자신을 무엇으로 정의하려 했는가? 무슨 생각으로, 무슨 작정으로 마지막 순간 트리온을 쏟아부었나? 그래서 만들어진 것은, 그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진 결과물인가?

그것은 언제까지 유효한 결과물인가?

그를, 아니, 그것을, 아니 그를, 그것, 그. 아니. 그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젠장.”

스와는 그것이 본부 내 구금실로 옮겨진 이후 단 한 번도 그것을 찾지 않았고,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에게 사후의 ‘그’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후의 그가 아니었다. 사전에 떨어져 나온, 생전 그의 조각 같은 일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도 하나 실은 그조차도 아닌. 복제된 무언가. 원본이 소실된 시뮐라크르였다. 따라서 스와는 그것을 원본과 동일한 이름으로는 부를 수 없었다. ‘아즈마 하루아키’는 그가 마지막으로 무전을 한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날 거기서 발견된 것이 ‘아즈마 하루아키’였다.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눈을 감지 못했던, 코와 입에선 흘린 피가 채 굳지 않아 뚝뚝 떨어지던, 그게 진짜 아즈마였고 장기 손상 및 과다 출혈, 쇼크로 15시 27분에 확인된 사망이 그의 죽음이었다. 착각해선 안 됐다. 착각했다간…….

거짓도, 이변도 없이, 다만 비밀이 있을 뿐인 이야기에도 끝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에도 끝이 있을진대 그 외 다른 것 따위가 감히 영속성을 가질 수 있겠나. 감히, 감히.

사담은 거기까지였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때였다.

작전은 대외비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전보다 습격의 규모는 작을 것으로 보이므로 갈로플라 전과 비슷하게 대비되리다. 회의는 거기서 끝났다.

‘슈지.’

오래전 비밀리에 구금되었던 에네도라의 생체 잔해를 아는 이라면 보더 내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구금실에 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교대로 잠시 감시관의 자리가 비워졌을 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진입하는 이를 먼저 발견한 눈이 있었으니 눈은 언제나, 트리온 병사의 두드러지는 특징점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냥 단순한 사실을 언급해도 좋았다. 는 눈이 좋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것도 눈이 좋았다. 저격수라면 으레 그렇듯이. 그를 닮았으니 당연하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라. 유리창 너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는 그가 있고―.

툭. 모니터 화면이 셧다운된다.

폐쇄회로 카메라로 상황을 보고 달려온 라이조가 문을 벌컥 열었을 때는 책상에 올려져 있던 서류가 모두 천장으로 떠올랐다 가라앉은 것 같은 모양새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우당탕, 쿵, 탕탕탕. 아마 그런 소리를 내며 쓰러졌을 온갖 집기가 밀쳐져 바닥으로 쏟아져 있었고, 그 사이를 가로지른 라이조는 구금실의 문을 힘주어 열어젖혔다.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뭐였지?

기억나지 않는데, 마지막 기억 속 ‘아즈마’는 언제나처럼 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그였다. 이제는 그 자리에 살아있는 것이 없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살아있다는 건 뭔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구금실 한 귀퉁이에서 들려오는,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느긋하지도 않은 인기척에 벽에 라이조는 등을 바싹 붙인 채 몸을 숨겼다. 몸을 숨기지만.

“――――――――――!”

노이즈까지 한데 섞인 모든 소리, 그렇기에 다시 정적으로 환원된 거대한 소리가 귀를 울린다. 귀를 막는 라이조의 뒤로 그림자가, 그 위로는 그늘이 내려 그를 덮는다.

*

눈은 아직 감지 않았다. 다만 자꾸만 내려가려 하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면 그를 내려다보는 이의 눈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이의 고개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시선은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 있었다. 그렇게 그를 내려다보는 이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보인 것은 분명―.

*

스와는 그것이 본부 내 구금실로 옮겨진 이후 단 한 번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에게 사후의 ‘그’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후의 그가 아니었다. 복제된 무언가. 원본이 소실된 시뮐라크르. 따라서 스와는 그것을 ‘아즈마’라고는 부를 수 없었다. ‘아즈마 하루아키’는 그가 마지막으로 무전을 한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눈을 감지 못했던, 코와 입에선 흘린 피가 채 굳지 않아 뚝뚝 떨어지던, 그날 거기서 발견된 것이 그게 진짜 아즈마였기 때문이다. 장기 손상 및 과다 출혈, 쇼크로 15시 27분에 확인된 사망이 그의 죽음이었다. 착각해선 안 됐다. 착각했다간…….

언젠가 아즈마와 저희의 대국을 그가 언급한 순간, 그때에 방아쇠를 당길 걸 그랬다.

‘의태’ 또는 무언가일 트리온 병사, 또는 트리거 사용자를 처리하기 위해 소집된 이들에 포함된 니노미야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걸 그랬다. 여차하면 돌발 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그를 제지하라는 명령 따위 무시할 걸 그랬다. 양손으로 라이플을 잡은 탓에 자유롭지 않은 손 대신 발을 써서 그를 건드리지 말 걸 그랬다.

압니다. 저도.

그래?

그 말에 웃을 걸 그랬다. 웃을 걸.

‘저건 아즈마 씨가 아니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알잖아.

그럼 웃을 수라도 있었을 텐데.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아즈마는 보더 전투원 중 가장 마지막에 사망한 전투원이었다. 길었던 전투가 끝나 모두가 안심하던 때. 그때 들려온 부고 소식이었다. 발송된 전사 통지서였다. 비유로 끝나지 않은 죽음 탓에 물벼락을 맞을 줄 알았는데 맞을 틈도 없었다. 시노다의 입에서 아즈마란 이름이 나온 순간 스와는 그간의 모든 것이 의미를 잃은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으나 결국 잠깐이었다. 본부 내 구금실로 옮겨진 그에게 추가적인 구속은 없었다. 다시 말해 그 순간 그를 지키는 자도 없었다.

그라고 했나, 그것을. 그라고 불렀나, 지금.

그가 도착했을 때 상황은 얼추 정리되어 있었다. 남은 건 사후 처리뿐이었을 때였다.

한때 전투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라이조였지만 엔지니어로 전향한 지금 그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트리거엔 트리온체 생성 외 전투 기능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여분 목숨이 하나 생겨난 것에 불과한 상황, 도망치거나 숨어서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정답인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었고 철저히 안전 지침서에 따라 행동한 그였다.

15시 20분.

갑작스럽게 보더, 본부, 구금실 내부에 생성된 게이트와 그곳에서 출몰한 네이버 앞에서 그의 대응은 지극히 옳았다.

그것의 대응도.

그것의 대응도

그의 대응도.

15시 25분.

기밀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기에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은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대외비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을 것이고 대침공 이후 금연 결심은 게이트 너머로 갖다 버린 사람처럼 줄담배를 뻑뻑 피웠던 스와는 오늘로 금연을 결심했다.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한동안은 피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성싶었다.

“아즈마 씨.”

처음으로 그를 불렀다. 그리곤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그에게 돗대를 건넸다.

“피울래?”

생전의 그가 흡연가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그 자신을 ‘아즈마 하루아키’로 여기는 한 무엇도 그에게 제약을 걸 수 없었고 설령 그 자신, 과거의 자신이 걸고자 한 제약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가 내린 결정은 그 스스로 판단한 결과였고, 또한 생전의 그가 이 순간에 놓였더라면 내렸을 판단이기도 했다. 그러니.

받아 드는 손은 왼손이었다. 잘려 나간 오른팔에선 검은 트리온 연기가 끝없을 것처럼 흘러나와 흩어지고 있었다.

끝없지는 않을 것이다. 가슴을 헤집은 균열은 이미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손상된 트리온체에 트리온을 주입하여 복구하는 기술은 아직 미완성된 상태였다. 쩍, 소리와 함께 갈라진 오른 눈이 빛을 잃었을 때였다. 불을 빌려주기 위해 라이터를 받치고 쭈그려 앉았던 스와는 아즈마가 담배에 불을 붙기 전 고개를 들고 손을 내려놓자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 하긴. 그렇지. 어쩔 수 없겠다며 쓴웃음을 지은 그에게 똑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설주 사이에 미와가 서 있었다.

트리온체가 아니었다면 숨을 헐떡였을지도 모르겠다. 달려와도 이미 늦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은 탓에. 그러지 못한 탓에.

“슈지.”

대답하지 않은 것은 반항이 아니었다. 심술도 아니었다. 짜증을 부릴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언제나와 같은 표정으로 웃는 당신은 알 것이다. 그런 당신은 분명 알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당신은 언제나…….

“잘 있으렴.”

“아,”

파각.

“…….”

……한때는, 모든 것이 여기 있었다. 그러니 떠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여전히 여기 있기에. 영원히 여기 있을 것이기에. 당신이 여기 있겠다고 하니까. 그게 당신의 뜻이라고 하니까.

그랬었는데.

흩어지는 검은 모래의 절반은 안개에 녹아들고 절반은 바닥에 부서져 흩어져 내렸다.

당신이 되기엔 턱없이 적은 알갱이가 바닥을 구른다. 당신이 되기엔 턱없이 모자란.

턱없이 부족한.

당신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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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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