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미즈카미 부대는 없다

월드 트리거. O Captain! my Captain!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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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부대 마츠노 부대의 대장 마츠노는 랭크전 다음 라운드를 앞두고 들떠 있었다. 이번 랭크전은 그의 부대가 처음으로 참여하는 랭크전이었고, 랭크전이 처음인 건 모든 부대원도 마찬가지였다. 즉, C급 훈련생 동기들이 모여 B급으로 나란히 승급한 뒤, 개인으로서도 부대로서도 처음으로 랭크전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첫 라운드에선 믿기기 힘들 정도로 큰 점수를 올리며 대승. 두 번째, 세 번째 라운드에서도 승승장구한 그들은 B급 하위에서 중위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보더 대원들의 눈길까지 제법 끌면서 말이다. 이만큼 빠른 진입 속도는 드문지라 오래전 전설로 남은 타마코마 제2부대의, 첫 랭크전에서 B급 2위까지 올라갔다 이듬해엔 A급 부대가 되는 데도 성공했다는 바로 그 전설을 연상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당시의 타마코마 제2부대는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듣기로는 부대를 결성한 목표가 있었고 목표를 이룬 뒤엔 각자의 뜻에 따라 해산했다고도 한다. 사실인지는 모른다―전설적인 선배들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 자신들이 자랑스럽지 않다면 감정이 상당히 무디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이제 막 중위에 진입한 이들이 그들의 후계를 자처하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물론! 다음 라운드에서도 지금처럼 점수를 얻는다면 B급 상위를 노릴 수도 있겠지만!? 들뜬 기분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마츠노는 그와 별다르지 않을 만큼 들뜬 부대원들을 힘겹게 진정시켰다. 자자, 다들 진정하고 다음 상대를 분석하도록 하자. 그래야 노릴 수 있을 테니까. 어디를? 상위를!

B급 하위야 실력이 다들 고만고만하지만, 중위부터는 만만치 않은 보더가 포진되어 있다고 들었다. 저번 랭크전에선 상위에 속했던 부대도 있으며, 간혹 부대 순위는 낮으나 개인 랭크는 높은 전투원도 포함되어 있을 때가 많다고도 했다. 그치만 미리 겁을 지레 먹고 물러설 수야 없었다. 자! 그래서 우리의 다음 상대는……. B급 중위 중에선 최상단에 랭크되어 있는 부대를 발견한 마츠노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상위에 진입했으나 대진운이 영 좋지 못한 탓에 임시로 순위가 하강한 부대라고들 했다. 중위에 머무르는 것이 ‘임시’로 칭해질 정도의 실력을 갖춘 부대. 가장 곤혹스러운 적이 될 것이 분명하니 가장 먼저 살펴도 무방하리란 결론이 나왔다. 물론, 그들은 상대가 누구든 모조리 꺾고 상위로 진급할 결의로 불타고 있었다. 그런 결심을 품은 채 모여 앉은 부대원들에게 손짓했다. 첫 번째.

“이코마 부대.”

그리고 대패했다.

대패하기 전 작전 회의 시간, 당연하지만 각 부대에 관한 정보 조사가 이뤄졌다. 실질적인 부대장은 슈터인 미즈카미 사토시. 어태커가 파고들면 슈터가 이를 지원하고, 기동성 좋은 스나이퍼가 적들을 경계하며 보조하는 3인 구성. 대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있다는 점은 의외였으나 연차가 꽤 쌓인 선배들로부터 어렵지 않게 사연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코마 부대? 지금도 강하긴 하지만 이코마 씨가 계실 땐 대단했지, 아주.’

제3차 대규모 침공 당시 부상으로 사실상 은퇴했지만 그러지만 않았어도 4인이란 인원수를 살린 다각도 공격에 뼈도 추리지 못한 부대가 한 보따리는 더 늘었을 거라고, 다소 과장 섞인 표현이긴 하지만 부러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복귀에 대한 말은 없어 갑자기 대장이 돌아와 인원이 추가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그 점에선 안도했다(이 역시 타마코마 제2부대에선 있었던 일이라고도 했다. 랭크전 중 부대원 영입은 규칙 위반이 아니다). 모든 부대가 다 그렇겠지만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했던 부대였기에 대장이 은퇴 의사를 명확히 밝히기 전까지는 부대의 이름도, 구성도 변경 없이 유지하기로 했다는 뒷이야기엔 조금 궁금증이 일었다. 명확한 은퇴 의사? 그 말에 머리를 갸우뚱했으나 답을 듣기엔 훈련 시간이 다 됐다며 작별하는 선배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패했다.

강조해서 두 번씩이나 말하는 이유는 달리 없었다. B급 상위의 벽을 넘겠다 어쩌겠다 하기 전에 중위의 선배 부대들부터 꺾지 않으면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제3차 대규모 침공 당시 자신을 구해 준 보더에 감명받아 입대한 마츠노는, 알고는 있었지만 그다고 쓰리지 않을 수 없는 패배에 한참을 우울해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아직 랭크전은 끝나지 않았다. 승점을 올리고 재도전에 성공한다면 아직 상위로 진입할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그래. 그만 우울해하자. 그럴 시간에 로그라도 하나 더 보도록 하자. 그런 마음으로 작전실로 향하던 그는 때마침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트리온체가 아닌 본체로 복도를 지나가는 미즈카미를 발견했다. 트리온 전투체를 해제한 것을 보면 방위 임무는 아닌 듯한데 아직 낮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려는 걸까? 궁금했지만 어쩐지, 말을 걸 수 없었다. 랭크전에서 져서 분한 감정은 랭크전에서 되갚아주면 그뿐인지라 그가 껄끄럽다거나 싫다거나 해서 드는 망설임은 아니었다. 그저 저를 발견하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그에게서 어쩐지 저와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츠노에겐 사이드 이펙트가 없었고, 어디까지나 추측만 가능할 뿐이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잽싸게 알아채는 능력이 있었다. 음. 말 걸지 말자. 어차피 보더에 속한 이상 마주칠 일은 계속 있을 터. 게다가 전부 제 착각일 수도 있었다. 랭크전을 막 승리로 끝낸 그에게 우울할 일이 무어 있겠는가. 로그나 보러 가야지. 마츠노는 망설임 없이 발길을 돌렸다.

“이겼어요. 다시 상위예요.”

가습기에서 이따금 삑삑 소리가 나는데 정상인지는 몰랐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소리가 거슬리지는 아니하여 그냥 두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권유를 받았어요. 부대 이름을 미즈카미 부대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막 입단한 C급 보더 중엔 이코마 지부가 따로 있는 줄 아는 애들도 있대요. 스즈나리나 타마코마처럼, 이름을 쓰지 않으니까. 웃기죠. 당신의 이름을 딴 지부라니…….

그런 건 싫다.

그런 건 싫네요.

“기리는 것 같잖아요, 당신을.”

아직 여기 있는데.

“아직 여기 있는데…….”

미즈카미 사토시는 고전을 암기하는 것이 취미인 청년이었다(그래, 이제 그는 완연히 청년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가 읽은 고전 중에는 우울을 깊은 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글들도 제법 많았다. 아무래도 사람 생각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지. 사람을 웅덩이에 빗대자면, 미즈카미란 못의 수면은 그리 투명하지 않을 성싶었다. 이름과 다르게 그는 수면보다 수심 깊은 물 속에 가라앉은 기분으로 지난 몇 주를 보내고 있었다. 실은 몇 달을. 몇 년을, 같은 표현은 쓰고 싶지 않아요. 이코 씨. 이불 바깥으로 삐져나온 손을 다시 흰 이불 속으로 넣어주며 미즈카미는 중얼거렸다. 중얼거리다 시트 위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지금 일어나도 지각이에요. 얼른 일어나요. 랭크전이 다 끝나게 생겼다고요. 가습기에서는 다시 삑삑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습기 소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당신이 들려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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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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