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4월 바보는 두 명

월드 트리거. <미즈카미 부대는 없다>에서 이어지는 글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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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

1

대학에 진학하면 보더는 그만둘까 해.

그 말을 꺼낸 날은 공교롭게도 4월 1일, 만우절이었으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은 그의 진로를 밝힌 날, 아무도 그에게 ‘만우절 거짓말이지?’ 또는 ‘거짓말쟁이 브로콜리’ 따위로 그를 놀리듯 부르며 야유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속한 부대의 오퍼레이터 호소이 마오리는 그 말에 슈터를 새로 영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게 되었고,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아니하였다. 어태커, 슈터, 스나이퍼가 다각적으로 접근하여 상대가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포위망 안에 가두고, 이내 무너뜨리는 전법에서 슈터의 존재는 불가피했으니, 부대가 지금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다면 추가 영입은 필수적이었음에도 그랬다. 왜냐면 동시에, 꼭 그래야 할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선 아무 말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슈터 영입이니 뭐니 하는 건. 그러다간 어태커도 영입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올까 봐, 적어도 지금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미즈카미는 ‘생각해 둔 전공이 있느냐’는 오키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 얼마 전 진로 상담을 하였을 때 교사도 미즈카미에게 그렇게 물었다(그는 진학반이었기에 대학 진학 의사에 관해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와 같은 질문에 미즈카미는 그때와 똑같이 대답했다.

‘의예과요.’

“의사가 되어 볼까, 하고.”

오키가 입을 다물면 다음은 미나미사와였다. 멋져요, 미즈카미 선배! 그리곤 손을 번쩍 들며 이어 묻는다.

“근데 무슨 의사요?”

“그걸 벌써 정하나?”

앗, 그런가요? 그렇지만 미즈카미라면 이미 정해뒀을 것 같다며 덧붙이는 미나미사와의 질문은 그가 전공을 묻고 있다는 걸 시사했다. 그러나, 이를 ‘어떤 의사가 되고 싶으냐’로 알아들은 척 넘겨도 상관은 없을 듯도 하였다. 사람 살리는 의사라고 대답하는 건 아무래도 상투적이리다. 따라서 그는 그와는 다른 대답을 하였는데, 사실 그가 어떤 대답을 하였든 그는 그를 좋아하고 아끼는 이들에게서 응원과 격려를 받았을 것이고, 현실 역시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아니했다. 할 수 있을 거예요. 할 수 있어. 이미 진로를 말씀드린 부모님께도 같은 응원을 받은 후였다. 그들에게선 염려와 걱정의 시선도 함께 받아야 했지만, 여기 지금 모인 이들에게선 다소 자유로움을 느낀 미즈카미였다. 역시 이쪽이 좀 더 마음이 편했다. 이를 위해 이들에게 말한 것이기도 했다. 미즈카미는.

 

2

미즈카미 사토시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였지만 보더에서는 한때 미래의 간부 후보 중 하나로 고려되기도 한 인재 중 하나였다. 그런 만큼 아무런 조치 없이 기관을 빠져나가기엔 아는 것이 많았지만, 은퇴 의사를 밝힌 후 상층부와 나눈 어떤 대담으로 그는 기억을 지우는 조치를 회피하고 무사히, 온전한 기억으로 보더를 은퇴할 수 있었다. 그가 상층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밝히는 사람이 없어 불명이었으나, 수년 후엔 그를 알았던 모두가 그 내용을 다소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미즈카미는 보더로 돌아왔다. 그러나 전투원으로서는 아니었다. 흰 가운을 입고 의무실에 몇 없는 팔걸이의자를 차지한 그는 보더 본부 의무반에 소속된 의사가 되었다. 자신의 직업이 퍽 마음에 드는지 휴식 시간에도 의무실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는, 의외로 장기를 아주 잘 둔다는 소문이 도는 의사. 그럼에도 퇴근할 시간이 되면 시간에 딱 맞춰 퇴근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의사. 미즈카미는. 물론,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가졌는지라 불가피하게 퇴근 시간을 넘겨 환자를 보아야 할 때가 오면 군소리나 불평 따위 전혀 늘어놓지 않고 성실히 환자를 보는 것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자신의 직무에 언제든 진지하게 임했다. 그럴 생각, 각오도 없이 보더에 지원한 것은 아니기에.

이따금, 그가 의무실 자기 자리를 일과 중에 비울 때, 그때 그를 찾으려면 보더의 전투원 ‘진 유이치’를 찾으면 된다는 이야기도 함께 돌게 되었다. 다만 그들은 매번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기로도 유명해서, 초창기(보더 설립부터 약 5년 후까지를 의미한다)에 보더에 입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들의 관계를 짐작하기 어려워했다. 그들은 매번 다음과 같은 질문과 답변을 나누고 헤어졌다.

아직일까요.

아직이네.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고, 별다른 일이 있지 않는 이상 그들이 그날 다시 만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즈카미 선생에게 뭔가 매일, 미래를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외 다른 사람이 그처럼 진에게 미래를 묻는 것은 있을 수 없었고, 감히 그럴 수도 없었다. 어쩌다 미즈카미가 오래전 보더에 소속된 전투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느 보더 대원은 베테랑 오퍼레이터 호소이에게 ‘두 사람이 같은 부대에 속했던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런 적 없다는 대답을 들으면 의문은 다시 미궁 속 제자리로 돌아가 자리에 앉는다. 뭘까? 그럼.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기엔 너무 긴 시간이 흐른 뒤였을지도 몰랐다. 알지 못해도 상관없는 긴 시간. 그 시간을 가늠하는 것도 기억하는 자들에게나 맡겨두면 족했다. 아무래도. 호소이는 멀어지는 어린 이들의 등을 응시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 것은 공교롭게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누구도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그에게 ‘만우절 거짓말에 속았지?’ 또는 ‘속았대요, 바보 브로콜리~’ 따위로 그를 부르며 놀리지 아니했다. 어? 그러고 보니 미즈카미 선생님은요? 본부에 오기 전, 자전거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보고 달려가다 삐끗한 발목도 혹시 봐줄 수 있느냐며 온 중학생 보더가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그 말에 의무실 당직을 맡은 이가 대답한다. ‘미즈카미 선생님은 오늘 휴가 내셨어.’ 아침엔 계시지 않았어요? ‘갑자기 쓰셨으니까.’ 진과 대화를 마친 직후였다고 한다.

아직이네, 라는 말은 만우절 거짓말.

가 봐, 얼른.

그러면 올 4월의 바보는 미즈카미로 확정해도 되겠다고, 진은 급하게 멀어지는 등을 보며 미소 짓는다. 진이 본 미래에서 그는 바보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문간에 서 있었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아.

올 만우절에는 거짓말처럼 다가온 기적이 있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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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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