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나비 꿈

월드 트리거. <Side Effect>에서 이어지는 글. 팬아트

비자림 by 비
1
0
0

* 팬아트입니다.

* 전편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팔랑팔랑 춤추다 인간으로 깨어난 장자는 자신이 과연 나비가 된 꿈을 꾸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자신이 바로 나비가 꾸는 꿈인 것인지 어느 것이 사실인지 모르겠다는 설화를 남겼다. 꿈을 꾼다면 그런 꿈을 꾸어야 후세에 남길 이야기가 생길진대 나비의 꿈을 꾸는 그는 여전히 인간이었고, 그 대신 나비가 된 꿈속의 나비들은 그의 머리 위에서 팔랑팔랑 춤추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누군가가 꾸고 있는 꿈속의 누군가인지 진은 알지 못한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꿈은 다른 이와 공유되기도 하는 것인지 진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진에게도 예외 없는 사실이다.

진은 지금까지 나비에 관해 좋고 싫음을 주변인에게 말한 적이 아직 없었다. 다만 비유적 상징으로서 나비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 나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연상하는 효과. 이를테면 바다 너머 땅의 태풍 같은 것을 연상하는 효과. 그것은 비늘에 묻어나는 인분 가루에 취해 보는 환상이 아니었다. 애당초 그들을 보지 못했다면 손가락에 인분이 묻어날 까닭도 없었으니, 선후관계를 따지면 언제나 그의 손 안에 나비가 붙잡히는 것이 연상의 다음이었다. 그리하여 깍지 낀 손가락으로 만든 그물에 나비 한 마리를 가둔 그는 수천 번째의 언젠가처럼 그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이' 나비는 '안 돼.' 그리고는, 작게 팡, 소리를 내며 어떤 가능성을 손바닥 안에 가둔 채 접어버린다. 손을 털어낼 때까지 안쪽은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스스로 정한 규칙이다. 보아서 좋을 게 하나 없으니. 보아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최선을 선택하는 버릇은 언제부터 몸에 배어들었나. 최선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만 하는 눈은 그 기준을 무엇에 두고 세상을 가늠하고 있는가. 세상은…… 지금 그가 꾸고 있는 그의 꿈으로 비유될 수 있었다. 수많은 나비가 날아다니고 때때론 제게 다가붙어 그 날개를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강제하는 그런 꿈. 그럼에도 그는 한가로이 들에 누운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꿈속이므로 그에겐 일어나지 않을 자유가 있었다. 수를 알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나비들이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들에 퍼져 있는 그 들 위에 누워 진은 한가로이 잠을 청한다. 꿈속에서.

사이드 이펙트는 가끔 소유자에게 이를 감당할 정신력도 함께 선사하는 게 아닌가 같은 의심이 들 때가 간혹 있다. 진실은 알 수 없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