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이코마 부대, 벌점 10점

월드 트리거. 팬아트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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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아트입니다.

돌발 임무를 마쳤을 때였다. 그날따라 그들이 소탕한 네이버 병기는 단단하기도 하거니와 유독 기동성이 높은 병기였고, 한참을 술래잡기하듯 요리조리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병기들과 씨름하고 나자 모두 녹초가 되어 땅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가뜩이나 야간 방위라 달밤에 펼친 달리기 경주의 끝이었다. 남은 것은 본부로 돌아가 보고를 마치는 일뿐. 물론 그들의 유능하고도 귀여운 오퍼레이터가 그들이 전투에 임하는 내내 상황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써놓은 실시간 보고서가 있기는 하였다. 이는 오퍼레이터의 임무이기도 한지라, 일각에서는 전투원들은 전투에만 집중하고 보고서는 오퍼레이터에게 전부 맡기면 안 되냐는 불손한 자들도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고 등급이 오를수록 그런 헛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들만 남는 것이 보통이기도 하였다. 오퍼레이터에게 모든 보고 임무를 맡겨서도 안 되거니와, 한 팀이면서 얼굴도 비치지 않고 해산하는 것은 사람 간 예의에도 어긋나는 법이었다. 물론 여기, 이코마 부대는 그런 오만불손한 자들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귀엽고 귀여운 오퍼레이터를 모두 좋아했으므로 그런 얍삽한 짓 따위 단 한 번도 저지를 생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만약 그들이 ‘얍삽한 짓’을 한다면 그것은 다른 짓일 것이 분명했다. 예를 들어…….

“베일 아웃 하면 안 되려나?”

이런 꼼수.

“진심이에요?”

트리온 전투체는 한 번 생성하고 해제한 후 다시 생성하기까지 소모하는 트리온 양이 많았다. 따라서 한 번 베일 아웃을 하고 나면 연달아 트리온체를 생성할 수 없었고, 임무 역시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베일 아웃은 가능한 한 위급 상황에서만, 또는 퇴각해야 하는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보더의 엄격한 규율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이 규칙은 가끔, 대체로 연령대가 높으며 연차도 제법 쌓여서 한두 가지 꼼수 정도야 들키지 않는다면 상관없지 않겠냐고 혓바닥이 길어질 정도의 경험을 쌓은 대원들 사이에서 한 번씩, 꽤 여러 번씩 어겨지기도 하였다. 지금처럼 야간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일만이 남았을 때. 그리고 보더로 돌아가는 길이 까마득하게 먼 가운데 베일 아웃을 하기에는 모호하고 그렇다고 걸어가기에는 트리온이 계속 누출되는 부상을 입었을 때. 이때 베일 아웃은…… 신속한 퇴근 수단이 아닌가 같은 발상을 떠올린 이가…… 상층부가 알았으면 뒷목 잡고 기절할 것 같은 발상을 떠올린 이가 분명 누군가 있었다. 아마도 그는 대학생이었을 것이다. 상층부는 이 발칙한 자식을 아직 잡아내지 못한 채였다.

아무튼. 베일 아웃을 사용한다 해도 본부로 돌아간 뒤 본부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진짜 퇴근이었으니 베일 아웃 자체로 신속 퇴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베일 아웃은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퇴근’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적어도 전투에 나설 일은 이제 없다! 적어도 오늘은 더는 없다! 임무? 다른 대원을 찾으세요! ……뭐, 그런 것. 본부에서는 베일 아웃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베일 아웃을 하는 것을 단속했지만, 당연히도 걸리지만 않으면 장땡이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 같은 상황이 지금 이곳의 그들에게도 찾아왔다.

“본부, 너무 멀잖아.”

“시간도 늦었고요.”

“저 오늘은 조금도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지쳤어요.”

“트리온체잖아.”

“트리온체여도요.”

「헛소리 말고, 이럴 시간에 뛰어왔으면 벌써 도착했겠다!」

“아니, 아니, 그치만 애초부터 초과 근무였잖아? 퇴근하려다 붙잡혀서 온 거였잖아?”

평소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도 한 번씩 너무나 규칙을 어기고 싶은 만큼 피곤한 날이 있기 마련이었다. 야간 임무이기도 했고, 초과 근무이기도 했고, 어차피 오늘은 임무든 뭐든 더 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서로의 눈치를 보던 이들이 결국 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베일 아웃!”

작전실로 무사 귀환한 이들을 가장 먼저 반긴 건 당연히도 호소이의 타박이었다. 베일 아웃으로 퇴근하는 거 걸리면 벌점 쌓인다니까! 다음번엔 안 그러겠다고 넉살 좋게 대꾸한 뒤 고개를 돌려 서로를 확인했을 때였다. 이코 씨? 여전히 트리온체일 적 전투복을 입고 있는 그에 의아해하며 입을 연 건 오키였다. 그러나 그 이상 말을 잇기 전이었다. 쩡, 소리와 함께 이코마가 쓰고 있던 고글에 금이 갔다. 그리고.

빠각!

“이코 씨!”

유리조각이 튀어 올랐다. 피가 튀었다.

*

수건으로 상처를 덧댄 뒤 의무실로 가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코 씨, 다쳤어?’ ‘헉, 피!’ 그다음은 역시, ‘왜 피가 나!?’일 것이다. 고글이 막 깨졌을 때였다. 이코 씨, 괜찮아요? 그보다 웬 피예요!? 그 말에 이코마는 한쪽 눈을 감은 상태로 속은 어떨지 몰라도 담담히 대답했다. 본체니까? 그러고 보니 그 옆의 미즈카미도 여전히 전투복 상태였고 사정은 그 자리에서 금방 들을 수 있었다. 트리온 전투체 조정 겸 전투복 수정 사항 반영을 위해 실착 중이었는데, 돌발 임무가 떨어져 그대로 곧장 달려온 것이라 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소매가 달라졌네요. 재질도 조금 달라졌어.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다 엔지니어실 방향에서 오셨지~. 새삼 밝혀진 의문에 다들 헤~ 하고 있다가 호소이의 태클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지금 그러고 있을 때야? 의무실로 가야 하잖아, 당장!

다행히 파편이 눈을 찌르진 않았고 겉에 살만 베여 피가 난 것이라고 했다. 그마저 깊진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그래도 한쪽 눈에 네모나게 자른 거즈를 대고 테이프로 사방을 딱딱 붙여 고정하니, 한동안은 상처가 덧나지 않게 조심하라는 의사의 진단을 들을 수 있었다. 작전실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게 깨지기도 하네. 한쪽 유리가 터져나간 고글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미즈카미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그 고글이 깨지는 거는 처음 보네요.”

불길해. 그 말에 이코마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그리고는, 헉!

“설마 꼼수 썼다고 벌받은 건가!?”

“그럴 리 있겠어요?”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정말로 무사 귀환하였으니 다행이기는 하였다. 이코 씨, 한쪽 눈 감은 상태로 선공 쓰면 어떻게 돼요? 작전실로 돌아오니 미나미사와가 평소와 다름없는 가벼운 말투로 손을 번쩍 들며 묻고, 괜찮대? 아까 보니 눈은 안 다친 것 같긴 했는데. 그런 미나미사와에게 눈을 흘긴 뒤 걱정스레 물어 오는 호소이가 있고, 한번 해 볼까. 선공. 하는 이코마에 방금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소리 듣지 않았어요? 하는 미즈카미, 그래도 크게 안 다친 건 맞나 보네요. 웃는 오키가 있었다. 불길한 전조 따위 끼어들 틈 전혀 없는 이 조합이야말로 이들이 함께함으로써 발휘되는 사이드 이펙트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어떤 전조도 끼어들기 어려울 듯싶었다. 사그라든다. 조용히, 흔적도 없이.

*

‘이코마 부대, 보더 규칙 위반으로 아래와 같은 벌점이 부과되니…….’

“아, 맞다.”

“들켰네.”

“에이, 안 들킬 줄 알았는데.”

“들킨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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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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