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양치기 소년

월드 트리거. 토리코나. 연성 교환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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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성 교환했던 글입니다.

코나미 키리에의 리타이어는 이르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보더 어태커 순위 3위라는 최상위 순위에 걸맞게 최전방에서 네이버들과 맞섰고, 노멀 트리거 사용자나 트리온 병사가 상대였다면 손톱만큼도 다치지 않을 실력자였으나, 아무리 그라도 블랙 트리거가 상대라면 흔히 표현되듯 그 ‘기믹’을 알기 전까진 고전을 면치 못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엔 누적된 피해를 버티지 못하고 붕괴한 트리온체였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생각 따위 코나미에겐 추호도 없었다. 블랙 트리거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의 트리거는 타마코마 지부 특제 개조 트리거였다. 또한 코나미에겐 단순히 무기가 강하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는 강함, 즉 전투 센스가 있었다. 애당초 타마코마제 트리거가 강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노멀 트리거를 사용할 적에 쌓아 올린 점수만으로 부동의 3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였다. 그리하여 그가 가진 자원, 센스, 그 모든 걸 쏟아부은 일기토에서 코나미는 블랙 트리거 사용자를 박살 내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그 역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지만 코나미에겐 그런 그를 뒷받침해 주는 동료들이 있었음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후퇴하자. 그래.

블랙 트리거를 격파함으로써 적들의 사기는 크게 꺾였지만 애초에 블랙 트리거가 참전한 전투였고 그와의 일기토는 부득이하게 벌어진 전투였을 뿐 권장할 만한 게 못 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쪽수로 밀어붙이기라도 해야 그나마 승산이 보이는 게 블랙 트리거와의 전투인데, 그런 점에서 코나미가 보여준 전공은 어마어마했으나 다시 말하면 처음 함께 전투에 임했던 다수 중 마지막까지 남은 건 코나미뿐이었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동료 대다수의 트리온체가 파괴되었고, 그럼에도 이 자리에 본체로 남아 있다는 것은 적의 공작인지 뭔지로 베일 아웃 기능이 정지되었다는 뜻. 그 와중에 블랙 트리거로 인한 출혈도 상당하여 제대로 전투에 임할 수 있는 건 몇 사람 되지 않았다. 후퇴는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아군의, 그것도 블랙 트리거의 리타이어에 한순간 우왕좌왕했던 적들 역시 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여전히 아득할 만큼 남아 있는 그 수를 비교하면 저들이 한없이 유리해 보이는데, 카라스마 쿄스케가 손을 들었다. 그는 아직 트리온체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전투원 중 한 명이었다.

“먼저 가세요. 제가 발을 묶을게요.”

카라스마는 한때 A급 1위 부대 타치카와 부대에 속했으며 지금은 타마코마 특제 트리거를 사용함으로써 한층 전투력이 강화된 강자 중 한 명이었으므로 평소라면 ‘괜찮겠어?’ 같은 말이 그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는 키자키의 입에서 나올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한쪽 팔과 다리가 없는 상태였고, 트리온체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절단된 부위에서는 계속해서 트리온이 유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재 상황에서 후방을 지키기 적합한 자는 카라스마밖에 없었다. 둘 수 있는 수는 악수밖에 없는, 그중에서도 이게 최선의 수인 최악의 상황이라니. ‘할 수 있겠어?’ 그 말에 그는 평소와 같이 대답할 따름이었지만, ‘해봐야죠.’ 본체로 돌아간 코나미의 표정은 평소보다도 더욱 불퉁한 감정으로 일그러져서, 아무리 그라도 한마디 더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사히 돌아가면 데이트해 주세요, 코나미 선배.”

그 말에 코나미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

순식간에 풀린 분위기에 다들 한 마디씩 얹으며 미소 지었다.

“그보다 그거 사망 플래그 아냐?”

“잘도 여기서 사망 플래그를 꽂네, 카라스마. 얼굴 믿고 던지는 거야?”

덕분에 긴장이 다소 풀린 분위기 속에서 그는 예의 마무리 멘트를 던졌다. 늘 그랬던 것처럼.

“죄송해요. 농담이에요.”

“너 진짜!”

“그래도 무사히 합류할 거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걱정한다고 그래!”

이들의 대화가 더 이어졌으면 좋으련만 여유는 거기서 바닥나고 말았다. 남은 대화는 서둘러 진행되었다. ‘그럼 카라스마. 합류 지점에서 보도록 하자.’ ‘네.’ ‘빨리 안 오면 혼날 줄 알아!’ ‘혼나기 싫어서라도 서둘러야겠네, 토리마루.’

“그러게 말예요.”

작별은 짧았고 배웅은 등을 돌려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냈다. 자세를 잡고, 한 뼘 될까 말까 하는 길이의 트리거를 움켜쥐었다. 그가 가진 트리거의 특수 기능은 가이스트. 한정된 시간 동안 화력을 쏟아붓는 이 기능은 본디 후방 방어에 적합하지 않은 기능이라 최대한 긴 시간을 끌어야 하는 지금은 기동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만이 그의 강함 전부는 아닌지라 그가 전투태세를 가다듬는 것을 본 이들도 서둘러 퇴로를 확보하여 빠져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따 봐!”

마지막으로, 코나미가 목소리를 높여 그를 불렀다.

“네.”

카라스마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려서, 그 뒤에야 뒤를 돌아보아 아무도 남지 않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행이었다. 돌아보았다면 습관적으로 고백하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무엇을?

거짓말을.

“죄송해요. 거짓말이에요.”

전황을 파악하고 이길 수 있는 승부와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것 역시 실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든 순수하게 강함을 척도로 내세워 판단해서든, 카라스마는 실력자였다. 이 점에 이견을 내세울 자는 없었다. 다만……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건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블랙 트리거를 가진 자만이 강자는 아니었다. 그를 백업하기 위해 합류한 자들과 트리온 병사들의 군세만 보아도…….

“…….”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그들을 보며 카라스마는 지나간 대화를 회상한다.

‘무사히 돌아가면 데이트해 주세요, 코나미 선배.’

‘죄송해요. 농담이에요.’

그에 마지막 말을 덧붙인다.

“죄송해요. 거짓말은 아니에요.”

들을 리 없는 말을 읊조리며 트리거를 기동시킨다. 가이스트, 온. 블레이드 시프트.

베일 아웃, 아니, 전투 불능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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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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