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가정의 달

월드 트리거. 미와 이야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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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꿈꾸지 않고도 잠들 수 있는 자는 행복하나니! 오늘도 불면하는 자는 지극히 불행하다. 더할 나위 없이 불행하다. 유령처럼 저를 쫓아다니는 그것의 정체를 그는 알고 있나니, 그것은 그 자신의 기억이다.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눈에는 선한 기억이다.

보이지 않으려거든 존재조차 하지 말 것이지, 그리 곱씹던 나날은 그대로 그의 머릿속 작은 해마를 거쳐 기억으로 갈무리되었으니, 그 계절이 오면, 그날이 오면, 도시 곳곳에선 추모식이 열리고 조문 읊는 목소리가 들리며 섧게 흐느끼는 자들 가운데 그날엔 가지지 못했던, 지금에 와선 너무 늦게 가지고 만 힘 그 자체를 움켜쥐고 서 있는 그가 있다. 그날 이후 제 가슴 가운데에 구멍 하나가 크게 뚫려 바람이 숭숭 지나가는 것 같다고는 비유로라도 표현하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품 안에서 식어가던 손위 누이는 눈조차 감지 못해 제가 감겨주어야 했다. 후일 부검을 하니 잃은 장기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럼 그것들은 도대체 무엇을 빼앗아 간 것이며 무엇을 위해 이 많은 이를 죽인 것이냐고 절규하는 수많은 이들 곁에, 가족들 곁에 서 있어야 했다. 그때 다가와 답을 가르쳐 준 이가 있으니, 그것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라 하더라.

이웃!

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지니!

어느 종교의 경전에 적힌 말을 소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 그로 인해 최후의 날이 온즉 구원받지 못할지라도 불신자에게 신자의 지옥 따위 있을 리 없음이로다. 가정하여 고민할 시간 따위 사치로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날이 있고, 밤 깊으면 술렁이는 기억 있고, 파도처럼 쏴아아 몰려오고 쏴아아 빠져나가는 날숨과 들숨이 어느 순간 턱 하고 막혀 더는 날아들지 않고 더는 들이켜지 않으며 숨소리 그저 제 품에서 멎었던 숨소리가 귓가에서 맴맴 맴을 돈다. 제게 싸우는 법을 가르친 어른은 그런 그를 안타까워하였던가, 안쓰러워하였던가. 기억해 내기엔 먼 일 되었는가. 벌써.

하지만 매해 돌아오는 계절만큼 돌아오지 못할 가족만큼 잊지 못하고 잊히지 못하는 이 없으니 기다리는 그날까지 복수는 그의 양식이요 생식이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5월이다. 가정의 달이다. 잠들지 못하는 봄이 온다. 잠들지 못한 밤이 맺힌다. 익을 날을 기다리는 과실의 머리가 동그랗다. 머리뿐인 과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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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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