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존경 말고 존중 말고

월드 트리거. 랭크전 8라운드 전. 토리코나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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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고 있습니다. 존경하고 있어요, 정말.

그렇다고 뾰로통한 얼굴에서 쉬이 가시는 불만이 아니었다. 식사 당번쯤이야 바꿔주지 못할 것도 아니란 걸 알면서도. 거기다 사유도 분명하고 중요하지 않았나. 마지막 랭크전을 앞두고 니노미야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니 넓은 도량으로 이해해 주지 못할 것도 없고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좋아, 식사 당번은 내가 할 테니 애들 연습이나 많이 도와줘’하고 순순히 물러서는 것은, 그것이 진정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어른스러움’이라는 건 알지만 성미에는 여간 들어맞지 않았다. 그러니 진은 손윗사람이라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나는 아니라는 것이냐 하고 괜히 심통을 더 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엎드려 절받기로 받아낸 존경이지만, 다시 말해 엎드려 절받기로 받아낸 존경이기에 코나미의 마음에 들지 않을 만도 하였다. 하지만 뭐랄까, 그것만으로 불편해진 기분은 아닌 듯싶지. 카레가 냄비에 들러붙지 않도록 휘적휘적 젓고는 있지만 코나미의 머릿속은 온통 제 기분을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일지에 대한 추측과 생각으로 번민하기 그지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분명 그 말에서 기분이 나빠졌는데. 뭐가 그리 기분이 나빴던 걸까? 아무렇지도 않은 말 아닌가. 자, 보라.

존경하고 있습니다. 존경하고 있어요. 정말.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지 않나.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말…….

잠깐. 그래서일까?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도 그렇고, 그의 장기는 뻔뻔한 얼굴, 목소리 하나마저 조금의 변화 없이 유지하는 것이었으니, 흔히 말해 ‘립서비스’에 불과한 ‘아무렇지 않은 말’에 지나간 기억이 스쳐 올라 불편해지고 말았다고 하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엎드려 절까지 받으면서 서비스에 진심까지 담아주길 바라는 것인가? 아니, 잠깐. 평소에도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말했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존경과 존중이 스며들어 있었을 테니 굳이 이렇게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었잖아. 결국 이 모든 건 카라스마 탓이라는 결론으로 불편함을 정리하려 한 코나미였지만, 아, 진짜! 왜 자신은 여전히 심통이 나 있는 것인지.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 립서비스에 불과한 말이, 그리도 불편한 것인지. 어째 그런 것인지.

존경하고 있습니다.

존경이 불만일 리는 없잖은가? 다른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사실은?

존경하고 있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존경 말고 존중 말고 다른 단어가 들어설 자리는 아닌데.

“…….”

코나미는 아직 자신의 감정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윽고 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방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어라? 오늘 당번이 코나미였던가? 이에 코나미는 아까부터 묘하게 거슬리며 짜증스러웠던 기분을 괜히 진에게 와락 풀어내 버리고 만다. 바꿔준 거야! 나는 착하니까!

착한 아이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인 듯하다. 아직 먼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한 발짝만 뒤돌면 되는 감정이어도. 실은 반 발짝만 귀 기울이면 되는 자신의 마음이어도.

또 어쩌면 실은…….

‘이야기는 끝났어. OK다.’

전화를 끊으며 뒤돌기 전 작게 미소 지은 소년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감정과 마음이라면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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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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