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What's in Your Name

월드 트리거. 生駒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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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를 그만두고 앞으로는 무얼 할까 고민하는 중에 ‘재능이 있다’는 권유에 다시 한번 넘어간 것은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 외계인을 대적하는 방위부대로 스카우트 된 그, 미즈카미 사토시는 그 덕에 다시금 생긴 ‘소속’이 한동안 허했던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었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작정을 했다. 부대를 이룰 만큼은 모인 동향 사람들 덕에 연고도 없는 타지에 혼자 머무르는 것을 염려하는 친지의 걱정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었다. 눈에 든 모든 것까진 아니더라도 많은 것이 마음에 들 수 있었으니 그래도 이번에는 대진운이 제법 좋았다. 그는 누구와 지금 수를 주고받고 있는가. 누군가의 눈에는 훤히 비칠지 몰라도 그의 눈에는 그만큼 환하게 비치지 못하는 ‘이다음의 시간’이 그의 대전 상대이고 평생 이어갈 대국의 상대겠다. 이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미즈카미의 상대는 이제 그뿐만이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겠다.

수읽기는 지난날 지겨울 정도로 해왔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몸이 아닌 ‘머리’에 밴 움직임, 행동, 싸움이었다. 직접 몸을 움직여 살아 움직이며 심지어 덤벼오기까지 하는 외계인에게 대항하여 살아남고 무찔러야 하는 ‘그다음의 대전 상대’, 네이버를 상대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녹록지 않았다. 전투를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선 그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그렇게 다시 ‘초보자’로 돌아가는 기분. 그리고 직접 전장의 말이 되어 지시(직접적인 전투 지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내리는 간부진들의 지시를 뜻한다)대로 움직이는 기분. 생소하면서도 그가 이미 ‘아는’ 움직임을 재현하는 기분. 그런 기분을 맛봤다. 그동안, 미즈카미는.

또한…….

그런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부대의 이름은 대장의 성을 따와 붙여졌기에 미즈카미가 속한 부대는 ‘살아있는 장기 말의 부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것은 미즈카미에게 기묘한 감상을 안겨주었는데, 그리하여 감히 품고 만 생각을 그동안의 미즈카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작정을 했었는데, 지금. 그는 그것을 토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떤 계기로 인해. 예를 들어, 지금 그가 누군가를 업고 있는 까닭에. 베일 아웃에 재밍을 거는 기술은 언젠가 반드시 개발되리라 강하게 예측된 기술이었다. 단지 그때가 지금이며 그 피해자가 저희가 될 줄은 몰랐을 뿐이었다. 그러니 거기에 느끼는 기분은 유감이었고, 미즈카미는 온통 유감으로 가득한 순간에 입을 열고 있었다.

미즈카미는. 미즈카미 사토시는 말한다. 나는.

당신의 이름이 싫었다.

당신의 이름이 싫었어요. 이코마 타츠히토 씨.

장기 말들은 살아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

장기는 게임이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공격하는 장기 말이 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례가 되고, 선언이 있거나 있지 않은 뒤 말을 움직이면 그것으로 공격은 이뤄졌고 그것으로 공격이 끝났다. 그것에 성공과 실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는 말 하나하나의 단위에서 일어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때론 출혈을 감수하고 뻗은 수 하나로 태세가 전환되고 판국이 바뀌기도 하였다. 출혈은 곧 말이 상대의 말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을 의미하니, 랭크전의 전술은 이와 달랐다. 이와는 달라 이처럼 명확하게 수행되지 않았다. 랭크전에서는 공격하는 장기 말이 지는 일도 종종 벌어졌고,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였다. 저희 역시 저희를 공격하는 이들을 역으로 무찌른 전적이 꽤 되었으니 일방적으로 패배하지도 아니했다. 그렇지만 응, 역시. 장기 말 같은 비유는 적절하지 못했다. 미즈카미는 자신을 포함하여 이곳에 속한 이들 전부를 장기판에 올려진 말이라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누군가는 그렇게 섬뜩하리만큼 객관적이고 타산적이고 인정 없이 사람을 계산할 수 있겠으나 미즈카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미즈카미에겐 다른 부대도 아니고 하필 딱 제가 속한 부대에 붙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아니했다. 살아있는 장기 말이라니, 인명이란 걸 알아도 좀처럼 마음에 들진 않는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이코 씨.

이코 씨?

안 되나요?

아니, 상관없어. 그보다 별명으로 불릴 만큼 친해졌다니 엄청 감동했다.

감동받을 것도 많네요. 싫은 건 아니고, 저도 좋아요.

좋아요, 저도.

저도…….

사람은 장기 말이 아니다. 이 당연한 말 뒤로 더할 말이 있다면, 장기 말은 살아있어선 안 된다. 미즈카미는 그런 말을 덧붙일 생각을 했다. 왜냐면, 살아있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되니까. 대국이 시작되면 반드시 종국이 있듯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게 되니까.

죽어선 안 되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므로, 역으로 장기 말은 살아있어선 안 됐다. 그리고 장기 말은 사람이 아니다.

*

부대의 오퍼레이터 호소이 마오리는 이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고. 그 말은 개개인이 자유롭게 개성을 뽐내는 이 부대의 모토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곧 어디에서든 유용하게 끌어 쓸 수 있는 격언과도 같은 말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 그게 무엇이든. 설령…….

설령 생존이라 할지라도…….

*

한때 프로를 목표로 했던 만큼 미즈카미는 대국을 마칠 때의 예절에 대해서도 익히 잘 알았으며 그것은 그의 몸에도 배어 있는 움직임이 되었다. 어떤 결과든 그에 승복하는 바른 자세는 어느 순간에서든, 어떤 기분에서든 상관없이 지켜야 할 기본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 기본을 따르기가 매우 싫었다. 그러나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지독히도 밴 그것이 그로 하여금 일찍이 정해진 말을 입 밖으로 내게 했다. 아, 싫은 기분이 들었다. 몹시 싫은 기분에 휩싸였지만 미즈카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이 아닌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코마 부대, 귀환했습니다.

등에 업은 당신이 너무나도 무겁다. 나는 이토록 무거운 장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말했잖은가, 장기 말들은 살아있어선 안 된다고. 살아있어선 안 된다고…….

살아있어선…….

*

생존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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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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