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음

묵음 4

월드 트리거. 유언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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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트리거에서 소리가 난다는 괴담이 쿠가 유마에게 닿았을 때 마침 쿠가는 진 유이치가 준 쌀과자를 입에 우물거리고 있었다. 또한, 설마 싶지만 설마 그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입속의 과자를 꿀꺽 삼켜 목구멍 뒤로 넘긴 뒤 대답하는 그에게서도 ‘지금 감히 블랙 트리거를 우롱하는 것이냐’ 같은 태도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블랙 트리거 소유자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그들은 으레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럴 리가. 이런 소문이 도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걸? 그 사람이라면.’ 어쩌면 블랙 트리거 소유자는 블랙 트리거를 만들어낸 이와 전보다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되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런 사람만이 블랙 트리거의 적합자가 될 수 있는 거던가.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만, 진실은 또 알 수 없었다. 블랙 트리거에 대해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은 탓이었다. 그건 곧 트리온이란 비가시물질의 한계, 이상, 신비에 관해 묻는 셈이 되기도 했다.

일찍이 또 다른 블랙 트리거의 소유자 진 유이치는 자신이 가졌던 모가미 소이치의 블랙 트리거 소유권―독점권을 포기하면서 ‘그라면 자신의 결정을 이해할 것’이라 말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상대를 향한 깊은 이해는 사후 그가 블랙 트리거를 깊이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에서 가능해진 것일까?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그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으며 그렇게 만든 블랙 트리거가 제 손에서 시동 되도록 하였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블랙 트리거의 최초 적합자는 보통 블랙 트리거가 제작되는 그 순간에 있기 마련이었다. 트리거란 사용되기 위한 도구이므로 사용자가 없으면 의미도 없었다. 그러니 ‘너’는 ‘나’를 사용해서 살아남아라. ‘나’를 사용하는 방법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방법밖에 없으니 ‘나’를 향한 이해는 불가피하다. 좋든, 싫든. 달갑든, 달갑지 않든. 그리하여 진 유이치가 모가미 소이치를 이해하고 쿠가 유마가 쿠가 유고를 이해하였느냐고 묻는다면, 이해의 한계는 또 어디에 있는지를 질문해야 할지도 몰랐다. 어디까지 이해하면 당신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언제까지.

블랙 트리거에서 소문이 난다는 괴담이 돌았을 때 그들은 생각했다. 블랙 트리거 안에 소리를 담을 수 있었다면, 내게 하고 싶은 말은 없었나요? 그 안에 남기고 싶은 당신의 말은 없었나요? 이해엔 끝이 없고 가능성을 떠올리는 순간 실감하게 되는 것은 오래전 당신을 잃은 이후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실의다. 블랙 트리거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쉽게도, 안타깝게도. 당신을 온전히, 완전히 이해하는 것 역시 이젠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어디 산 사람이라고 그게 이해되는 것이던가. 살아있는 사람이 대상이라면 그게 쉽던가. 그러니 이것이 이렇게나 자책할 일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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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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