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한 오누이가 살았는데

옛날 옛적에 한 오누이가 살았는데 3

월드 트리거. 오누이의 이야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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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이름 경은 境 자를 썼지만, 警이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세상의 京이기도 하였다. 근계에서 넘어오는 해괴한 존재 곧 근계민이라고 부르는 괴이들이 온 사방에서 민중들을 잡아먹고 납치하여 저들 세계로 끌고 갈 때 지금의 천자가 그의 수족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괴이들을 처단하고 경계 밖으로 내쫓아 평화를 이룩하니, 이윽고 그가 세운 나라가 곧 경이 되었고 그는 황제가 되었으며, 그것이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리고 경은 여전히 시황제의 통치 아래 평화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동안 황제는 조금도 노쇠하지 않았으니 이는 근계민을 내쫓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재보 덕이었고, 황제는 각지의 왕과 제후에게 이를 나누어 하사함으로써 그들에게 근계민에 맞서 백성들을 지켜야 하는 의무 역시 함께 부여하였다. 재보의 강력한 힘에 역심을 품을 자도 있을 법하건만, 황제의 눈은 틀리지 아니한 모양이다. 재보를 받은 이들은 모두 성심성의껏 제 의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수십 년. 세월은 계속 흘렀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이들이 다시 아이들을 낳아 기를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한 산골에 작은 학당이 있었으니 작았지만 낡은 구석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틈만 나면 돈을 써서 보수한 덕에 그랬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이에겐 나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그곳은 구번(講藩)이라고 불렸다. 궐의 학자가 황제의 명을 받아 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다 영특한 아이를 찾으며 이리로 데려와 먹이고 재우며 가르치니, 처음엔 딱 두 아이가 있었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라, 학자는 아이들이 서로를 오누이로 여기도록 가르치며 마저 다른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세 아이를 더 데려오니 그들을 데려온 곳은 고관대작의 저택이기도 했고, 민가이기도 했고, 절이기도 하였다. 어디에 머물던 아이들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가장 먼저 들인 아이에게 그 의향을 물어 결정하도록 하였다. 데려갈 테냐, 말 테냐. 또는, 어느 아이를 데려갈 테냐. 너라면.

그러니 이들은 아이가 선택한 가족이었다. 구번에 머물 적 아이는 단 한 순간도 그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제가 선택했으니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 문제는 아이의 방식이 썩, 타인의 호감을 사기 괜찮은 방식은 아니었다는 점에 있었고.

“그렇대도 한 번 말해볼 순 있는 거잖아. 안 그래?”

가족 중 딱 한 명의 누이만은 이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와는 도저히 맞지 않은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기실, 누이 한 명만이 이의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소년에겐 굉장히 운이 좋은, 어쩌면 잘 짜놓은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될 날을 예상했는지는 둘째치고서라도. 그러나 그들이 성장하는 날에 이와 같은 날은 무수히 많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족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지냈다, 이 시절에는. 이후 세월이 흘러 각기 다른 때에 하산한 이들의 미래는 서로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만 두지 않았으니, 그럼에도 그날을 논하기엔 아직 먼 때였다. 아직은 제법 뻔뻔한 얼굴로 이리 말할 수 있을 때. 아, 이건 성장한 뒤에도 같았던가. 아무튼.

“말하면 내 뜻대로 굴러갔을까?”

그 말에 그건 아니었을 거라고, 그쯤은 누이도 알아 대꾸할 수 없었다. 과연 아이는, 소년은, 이제는 누이의 오라비가 된 녀석은 딱 제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영특한 아이들을 골라 이곳으로 데려왔다. 물론 그가 선택하지 않은 이 중에서도 있었다.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

“아야야.”

“더 당겨요, 언니. 더.”

“아야야야.”

윗누이가 오라비의 귀를 당기는 모습에 환호하는 누이는 그에 간신히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하였다. 여전히 불퉁한 기분은 남아있는 듯했지만 그 곁으로 다가와 누님, 하고 말을 붙이는 남동생이 있어 그런 그를 위로해 줄 듯하니 걱정은 또 한시름 덜었다.

“쟤들이 착해서 봐준 거야.”

“알고 있어.”

“아니까 이래서 더 문제지.”

“그건 할 말이 없네.”

“무슨 일 있어?”

마침 사립문을 넘어오는 맏형이 있으니 윗누이는 그에 사정을 설명했다. 그동안 다행히 잡고 있던 귀는 놓았지만, 너, 적당히 안 하면 스승님께 말해서 용돈 뺏어버릴 거야. 하고 엄포를 놓는 것은 잊지 않았다. 윗누이에게서 사정을 다 듣고 난 후 맏형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때 되면 맨발로 쫓아내면 되니까, 뭐.”

“아무렇지 않게 제일 심한 말을 해.”

“뭐…… 그러면 되긴 하지만.”

“그런 거구나.”

그런 나날이 있었다. 그곳엔, 그 시절에는. 이는 오누이가 화평을 논하는 회장에서 서로를 맞닥뜨리기 한참 전의 이야기. 이로부터 몇 년 후 윗누이는 수도로부터 부름을 받아 관직에 오르니 후일 제국의 상공이 되고, 큰형은 스스로 군사를 모아 제후가 되어 근계민 토벌에 임한다. 막내는 장군이 되니, 툭하면 다투던 오누이는 무엇이 되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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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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