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한 오누이가 살았는데

옛날 옛적에 한 오누이가 살았는데 4

월드 트리거. 오라비와 왕의 이야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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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려거든 목을 베어 단번에 확실하게 죽였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아, 또는 그렇게 하지 못하여 기회를 흘려보냈으니 그에 따른 후환을 감당해야 할 때였다. 시국의 재상 테루야 후미카가 예견한 대로 구국 조정에는 무사 귀환한 재상과 함께 피바람이 불었으니 숙청된 대신과 그 가신과 일가의 수를 합하면 어언 ―라, 유배되는 이들의 행렬이 끝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져 종내 구경하던 민중조차 지쳐 각자의 집과 논과 밭과 가게로 돌아가고, 형장에서는 망나니의 춤이 그칠 날이 없어 마지막 날엔 결국 몸살에 걸렸다고들 하며, 몰수한 재산과 관직을 셈하던 서기관은 손에 골병이 들어 병가를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 모든 일을 벌이고 최후까지 관리 감독한 재상만이 모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단 하루도 쉼 없이 일에 몰두하였는데, 저러다 암해에서 살아남은 것이 무의하게 과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파다했더랬다. 그렇게 매진한 일을 마쳤을 때쯤엔 마침내, 원정을 떠났던 그의 왕이 귀환하였다. 재상은 성문을 열어 왕의 귀환을 반겼고…… 역당의 피로 물들어 아무리 닦아도 얼룩이 지워지지 않은 문에는 칠을 새로 하라 명한 이후였다. 왕께 보여 좋을 건 없으니까. 이유는 그게 다였다.

왕이 나라를 비운 사이 섭정을 맡아 섭행하는 재상을 습격하여 제거하고 왕좌를 찬탈하려 한 역당들의 죄는 구족을 멸하고도 남을 역모의 죄이긴 했으나, 재상이 이 기회에 조정과 공신을 한차례 솎아내려 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은 사실과 다른 점이 전혀 없었다. 더불어 재상이 귀환하며 불러 모은 군세와 그 기세는 하늘을 덮을 정도라 재상이야말로 왕좌를 꿰차고자 하면 지금이지 않냐고 속달대던 이도 적지 않았음이다. 일찍이 그를 왕좌지재로 칭하는 것은 그가 가진 재능에 실례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돈 적도 없진 않았다. 물론 그렇게 속삭인 이들 모두 형장으로 끌려가 다신 태양을 보지 못하게 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재상은 일찍이 왕의 원정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이에 동행하지도 않았지만, 그 대신 그가 떠나고 남은 자리를 지키도록 명 받았으니 우여곡절이 있긴 했어도 받잡은 명 성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그 충의를 보였다. 활짝 열린 성문으로 그 충의의 대상이 귀환하였다.

“미즈카미.”

그러니 그는 과연 충신이겠으나 모든 충신이 선인이란 보장은 없었다. 아, 물론 그는 그 성정이 선한 편이긴 하였으나 무릇 사람이 다들 그렇듯 선행만을 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었기에 행했지만 과하지 않았냐고 책망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역모의 수괴들을 잡아 왕을 기다리지도 않고 모조리 처형하여 입을 다물게 한 점 역시 도리어 의심을 산다 하여도 심증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왕은 다만 그를 책하지도, 의심하지도 않고 다만 이렇게 말했다.

“수고했다.”

그제야, 그때까지 단 한 순간도 표정 흩트리는 일 없이 무표정만을 고수했던 재상이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로 그랬다.

“네.”

그리고는 깨끗이 닦아놓은 왕좌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앉는 왕에 고개를 숙이며 가볍게 예를 표했다.

구국의 왕 이코마 타츠히토는 진중한 인상과 달리 농을 좋아하며 국정은 조정의 대신들, 특히 그를 왕으로 옹립한 공신인 재상에게 전반을 맡기고 본인은 그들이 올린 안을 최종 검토하고 허락하는 것으로 그치는 왕으로 일견 알려져 있었지만, 또한 알려지기로는 근계에 대한 증오가 깊어 근계민을 일절 용서하지 않는 황제와 그 견해가 일치하는 왕과 제후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는 오랫동안 그 곁을 지킨 대신들에 대한 신뢰가 깊었고, 이번에도 재상이 그리 행동했다면 그리되어야 할 이유가 있었겠거니 생각하는 것처럼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정작 재상은 그의 왕이 보이기만 그리 보일 뿐 저를 주시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게 딱 좋았다. 그를 믿는 왕이야 물론 좋지만, 허수아비처럼 제 손에 놀아나는 왕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것이 그에게 지금보다 더 큰 권력을 가져다준다고 하여도, 그런 왕이었으면 재상은 그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왕으로 옹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살아있지도 않은 것은 재상의 흥미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진정 살아있는 것이야말로 사는 것임을, 즐거운 것임을 구국의 재상 미즈카미 사토시는 알고 있었고, 좋아하고 있었고,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왕에 그 재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숙청 따위 실은 좋아하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그것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할 뿐이라, 제가 책임져야 할 일에는 확실히 책임을 져야 하느라. 그렇다면 그는 제가 좋아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능히 해낼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지극히 만족스러운, 지극히 안정된 현재의 상태. 그들이 세웠고 그들이 다시 안정시킨 이 나라. 다시금 즐거워진 나라. 제가 세운 왕이 세운 이 나라. 이것이 재상의 마음에 쏙 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재상은 그제야 쉴 생각을 했다고 한다. 눈을 붙이고 잠시 단잠에 들었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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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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