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한 오누이가 살았는데

옛날 옛적에 한 오누이가 살았는데 5

월드 트리거. 누이와 왕의 이야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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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구번에 제도의 관리가 홀로 찾아온 적 있었다. 자신을 궐에서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온 서관이라 소개한 그는 구번의 아이들을 거둔 그들의 스승에게 데려갈 아이를 추천해달라 말했다. 그 아이는 천거되어 조정의 관직을 맡아볼 것이고 나아가 대신이 되리니 스승은 오래 고려하지 않고 한 아이의 이름을 말했다. 유카를 데려가시오.

그러자 서관이 묻기를, 그 아이가 여기 아이 중 으뜸이오? 구번 아이들의 학재야 익히 들은 바 있다오. 그러자 스승이 이에 답하기를, 국정을 살필 대신이 필요하다지 않았소. 정세를 파악하고 흐름을 견지하며 하나와 둘을 동시에 사려하며 길을 찾는다면 유카가 제일이지. 필요한 곳에 마땅한 인재를 쓰시게. 이에 서관이 감탄하며 되묻기를 그럼 다른 아이들은 어떻소? 글쎄.

장군이 될 아이가 하나 있고 왕좌가 될 아이는 둘이 있지. 왕이 될 아이는 하나라오. 그 애는 스스로 제 왕좌를 찾을 아이지. 왕좌지재가 둘이나 있건만 그 애들은 어찌 추천하지 않았소? 그에 스승이 웃기를, 그 애들은 제 왕을 스스로 찾을 아이라오. 제 딴에 받아들일 수 없으면 따르지도 않을 아이들이지.

이에 덧붙이는 말이 있으니 서관은 그 이상 묻지 않고 구번을 떠나 제도로 돌아갔다고 한다. 후일 그와 한 무리의 수행원들이 황제의 칙명이 담긴 서한을 가지고 온다. 콘 유카로 하여금 중위의 관직에 봉하여 궐로 들게 하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맏오라비 아래 둘째 되는 오라비 또한 스승에게 하산을 허락해달라 청했다. 스승이 서관에게 한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하나 역시 왕이 될 수는 있겠구려. 사기에 재임 기간이 가장 짧은 왕으로 기록되겠지만.’ 이 시대의 왕은 종신이 기본이었다. 그러니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으렷다. ‘왕이 되면 단명할 팔자라니 말씀대로 제 왕이 될 자나 찾아보렵니다.’ 처음부터 왕 같은 것에 눈곱만큼도 관심 두지 않은 아이를 스승은 막지 않았다. 맏형도, 동생들도. 그게 팔자려니, 하면서.

그는 과연 제 왕을 찾았을까? 오누이 중 오라비가 먼저 구번을 떠나고 누이는 그보다 두 해를 더 지낸 후 스승에게 절을 올리고 제가 오길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족에게로 돌아갔다(그는 오라비가 고관대작의 저택에서 고른 아이였다). 이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오래간만에 만난 저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하는 집안의 하인을 편히 쉬라며 돌려보낸 뒤 방에 혼자 남은 테루야는 침상에 풀썩 누우며 생각에 잠겼다. 구번에서 지내는 동안 학관에서 서너 해 걸쳐 배울 서책은 모조리 떼고 왔다. 물론 학관에서 배우는 것이 지식뿐만이 아니니 돌아가도 나쁘지는 않으리라만. 그보다는 좀 더. 조금 더. 더.

당장 학관으로 돌아가지는 않아도 되기에 한동안 테루야에게는 휴일만이 계속되었다. 과거를 준비하여 관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도 오자마자 다시 급제를 위한 공부에 매진할 정도로 여유 없이 굴 필요는 없을 때였다.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다 산 파란 사과 한 알을 아삭, 깨물자 한순간 덜 익은 사과의 신맛이 몰려와 잠깐이나마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도성 대로에서 가마를 타고 돌아다녀도 되는 신분이었지만 스스로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했던 구번에서의 생활은 테루야에게 ‘테루야 가문의 아가씨’ 이상의 자신과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수행원으로는 제 또래의 하인 아이만 데리고 거리로 나온 테루야의 귀에 사람들의 소란이 닿은 건 그가 외유를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 계속된 고민이 그치기 전이었기에 즐기고 있지는 못하였지만, 북적이는 인파의 활기로 제 주변 환경을 환기한 테루야의 시선이 돌아가 거리 한중간에 목조로 가볍게 세워진 단상에 닿았다. 제 오라비들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청년 두 사람이 단상 앞에 서 있었다. 무어라 외치고 있었지만 거리가 있어 내용까지 귀에 들어오진 못했고, 대신 테루야 주변에 선 이들의 대화에서 그들이 무엇을 위해 거리로 나왔는지 들을 수 있었다. 뭐래? 근계민 토벌대를 모집한다데. 저렇게 어린 친구들이? 허풍이겠지. 아니어도 한창 치기 어린 행동을 할 나이가 아닌가.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테루야의 발은 저절로 단상으로 향하고 있었고 뒤에선 같이 가자며 아가씨를 다급히 쫓는 아이의 목소리가 뒤따라왔다. 중앙의 황제가 오방의 왕과 제후, 장군에게 재보를 내려 근계민을 토벌토록 해 나라를 진정시키고는 있지만 근계민은 끊임없이 나라와 백성의 터전을 위협했고 지금처럼 토벌이 필요한 지역도 산재해 있었다. 따라서 이 젊은 청년들은 그들과 함께 피해가 극심하다 알려진 지방에 도움의 손길을 펼치길 권유하고 있었다. 테루야의 시선이 꽂힌 이는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외양으로 말하자면 좀 더 머리가 짧은 이였다. 그들에게 악의적인 야유를 보내는 이들에 조금 당황한 듯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물러서거나 내려가지는 않는 사람. 그는 그들의 말 속에 담긴 함정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거기서 요령껏 회피하는 방법까지 원숙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테루야는 전날 밤 제가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지금 찾아냈음을 알았다. 테루야에겐 좀 더, 조금 더, 더 그를 ‘불태우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는 그것이―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왕. 그리고 눈앞의 남자. 그 뒤로 펼쳐지는 군사가 테루야의 눈에는 보였고,

“보좌할 보람이 있겠어.”

그게 무슨 뜻이냐 물으며 어리둥절해하는 하인을 뒤로하고 한 발 앞으로 내밀었다. 제 왕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후일 시국 재상이 되는 테루야 후미카가 시왕이 되는 카키자키 쿠니하루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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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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