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4

월드 트리거. Sniper Who?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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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퍼는 발견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그가 오래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스나이퍼의 기본으로, 기본에 충실히 행동한 아즈마 하루아키는 뛰어난 스나이퍼였으나 아쉽게도 가장 뛰어난 스나이퍼까지는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노련한 스나이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트리온체가 파괴되어 본체로 돌아온 직후 사선을 피해 몸을 숨긴 그는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자신이 발견되었음을 저격을 통해 깨달은 아즈마는 이윽고 허리춤에 장비했던 무전기를 집어 들었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선은 그 너머, 저격당하기 직전 스코프에 닿았던 이들이 있는 방향에 둔 채였다.

“발각됐습니다.”

아즈마는 베일 아웃이 불가한 상황에서 적에게 발각된 스나이퍼의 말로를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래전 그의 부대에 있었던 카코 노조미라면 거기에 다음과 같은 말을 얹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겠어? 아즈마 씨가. 과연 카코는 아즈마를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랬기에 그것이 병원에서 본부로 옮겨진 후, 상부의 지시를 받아 혼자서 구금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리고 그만 웃고 말았다. 아, 아즈마 씨. 정말 당신이란 사람은.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도. 피로가 짙게 눌어붙은 카코의 눈가엔 거뭇한 그림자가 내려가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한 번도 웃지 못했으나 이 순간에야 웃을 수 있게 된 그는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인사했다. “안녕, 아즈마 씨.”

그에 그 역시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유리창에 콩, 이마를 부딪치듯 갖다 대는 아이는 오래전 아즈마 부대에 있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머리를 기르진 못했던 고등학생이었다. 그 애가 자라, 해산하는 부대에서 독립하여 자신의 부대를 꾸리고 대장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대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을 카코도 알았다.

그럼에도 딱 거기까지만 나와 배웅하던 한결같은 당신이셨으니 여전하시다는 말 외엔 드릴 말이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오랜만이구나, 카코.”

아즈마 씨. 카코 노조미는 그를 ‘아즈마’라고 부른 두 번째 사람이다.

*

그 뒤 다음과 같이 말한 뒤 아즈마는 무전을 끊었다.

“뒷일을 부탁합니다.”

*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뭐였지? 기억나지 않는데, 마지막 기억 속 아즈마가 언제나처럼 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 낼 수 있던 미와였다. 누나 때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그때와 같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기억해 낸 미와는 이내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처럼. 아. 그는 그렇게 말했더랬다. 그렇게 말하는 입을 멈출 수 없었더랬다. 위선자. 아즈마 씨는 위선자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 화도 내지 않고 웃던 당신. 그런 당신. 보더 전투원 중 가장 마지막에 사망한 전투원. 길었던 전투가 끝나 모두가 안심하던 때 들려온 부고 소식. 발송된 전사 통지서. 실제론 직접 들고 댁을 찾아갔으니 발송은 어디까지나 비유였는데, 검은 정장을 입고 본부를 나서는 스와를 급히 앞질러 가 앞을 가로막은 이는 미와였다. 이틀째 되는 날에 있었던 일이었다.

“뭐야, 미와잖아.”

눈앞에 갑자기 끼어들어 오는 인영에 움찔 떨며 발을 멈췄던 스와가 순간 딱딱히 굳었던 표정을 풀며 말했다. 미와는 이틀 전 본부 라운지에서 요네야에게 주먹질을 한 탓에 근신 처분을 받았다고 들었다. 본래대로라면 본부 출입도 금하는 게 옳으나 차라리 눈에 띄는 곳에 두고 감시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인지는 몰라도 본부에 체류하는 것까진 허락받은 그였다. 트리온체가 아닌 본체로 급히 달려야 했던 탓에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그가 말했다.

“저도 따라가게 해주세요.”

어디 가는 줄 알고 따라가겠다고 하는 거냐고 말할 필요까진 없었다. 안 돼. 딱 잘라 말하는데 뒤에서 들린 목소리가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스와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야. 니노미야. 이번에는 말할 필요가 있었다. 어디 데려가겠다고 하는 건지 알고 말하는 거냐? 모를 리가 없었으나 그보다 명확히 전달된 의도였기에 니노미야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후유시마가 거들어주었다. 괜찮잖아. 후유시마 씨. 진심이야? 그래.

“데려가자고.”

“……니노미야 뒤에서 따라와라. 앞으로 나서지 말고.”

죽음도 이처럼 혀를 차며 넘길 수 있는 비유에 불과했다면 좋았으리다. 우리가 가는 길이 나들이였으면 더욱. 나름 물벼락 정도는 각오한 이들로 꾸려진 인선이었는데 벼락이라도 떨어진 양 정신없던 날이었다. 물벼락은 맞지 않았으나 다행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쓰러진 분들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최대한 빨리 구급차를 보내달라며 주소를 읊는 난리 통 속에서 미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러지 못했다.

나흘 전 잔해에서 구조되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된 남자는 열하루 전 사망이 확인되었던 남자였는데, 그는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도 그 자신의 죽음만큼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거기까지였기 때문이겠지.”

―무전을 끊은 아즈마가 제 손에 들린 트리거를 내려다본다.

“아니, 거기서부터였던가.”

―그는 적에게 발각된 스나이퍼의 말로를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건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건 악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악의가 아니라…….

*

그럼에도 그것을 ‘아즈마 하루아키’로 불러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은 보더 내부자들 사이에서 ‘그것’으로 불릴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트리온으로 구성된, 트리온으로 이뤄진 신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밝혀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것의 정체였다. 만약 그것이 그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다면 간단하게 해결되었을 문제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해졌겠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그들은 결코 간편하게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 도구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대면해야만 했다. 기실 그들은 단 한 번도 손에 넣은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수도 있었다. 미완성된 블랙 트리거에 깃드는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지 그들에겐 알 도리가 없었고, 그렇기에 그것의 정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정체, 그것은 ‘정의’로도 정의할 수 있으리다. 아즈마 군. 자네는 뭘 만들려고 한 거지. 자신을 무엇으로 정의하려 한 거야. 무슨 생각으로, 무슨 작정으로 마지막 순간 트리온을 쏟아부은 거냐고.

“자네를 만들기 위해.”

키누타의 물음에 그것은 다만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미안합니다. 사과하면서.

“말할 수 없어요.”

모든 블랙 트리거는 제작자를 살해한 결과로 만들어진다. 또한 그 경위를 보면 그것이 가진 힘, 그것에 내재한 가능성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말할 수 없는 거야, 말해선 안 되는 거야. 그것만이라도 말해 주게.”

“키누타 씨.”

그에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도 간단한 사실 하나를 확인시켰다고 한다. 그것은 그 자신을 ‘아즈마 하루아키’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따라서 무엇도 그에게 제약을 걸 수 없었고 설령 그 자신, 과거의 자신이 걸고자 한 제약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것이 내린 결정은 그 스스로 판단한 결과였고, 또한 생전의 그가 이 순간에 놓였더라면 내렸을 판단이기도 했다. 그러니.

“말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맙소사.”

“그러니…….”

키누타 씨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에 끙, 앓는 소리를 낸 키누타는 끝내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내게 명령도, 부탁도 하지 말게. 나는 내 맘대로 할 거니까.

“자네처럼.”

그 말에는 다만 웃었다고 한다. “하하.”

이것은 그것에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의 이야기.

그날 그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눈은 아직 감지 않았다. 다만 자꾸만 내려가려 하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면 그를 내려다보는 이의 눈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이의 고개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시선은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 있었다. 그렇게 그를 내려다보는 이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소용없어.”

적은 검과 비슷한 형태를 띤 트리거를 한차례 털어낸 뒤 마저 이어 말했다. 순순히 블랙 트리거를 만들게 두진 않을 테니까. 빗물을 털어내는 장우산처럼 물자국 대신 핏자국이 옥상 바닥을 덮은 콘크리트 블록에 점점이 떨어졌을 때였다. 마지막 말 정도는 들어주지. 그것은 그가 적에게 드물게 보이는 존중과 경의의 표시였지만 아즈마는 그 말을 알아들었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슴을 꿰뚫린 여파로 코와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말하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닌 탓도 있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가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즈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고개를 떨어뜨릴 때까지, 그러자 적 역시 별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멀어졌다.

여기서부턴 그 역시 듣지 못한 이야기. 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던 이야기.

「퇴각한다.」

「더 머물렀다간 이자 같은 자가 또 나타날 수 있어. 지금까지의 수확만 해도 나쁘지 않아. 본국으로 돌아간다.」

트리온 내부 통신이었기에 들을 도리는 없었지만 물러서는 그의 등을 마지막 힘을 짜내 들어 올린 고개로 바라본 아즈마는 그제야 마침내 작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제야 마침내 눈 감을 수 있었다.

아즈마는 전략가였다. 뜻대로 이뤄진다면 그 자체가 그 자신의 보람이었다.

이날 아즈마가 이루지 못한 뜻은 없었다.

이날 아즈마는 자신이 발견되었음을 저격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그 자신을 노린 저격수의 사선이, 직전 아즈마의 스코프에 닿았던 이들이 있는 방향으로 가 닿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둥 뒤로 몸을 숨긴 뒤 무전기를 집어 든 그였다. ‘발각됐습니다. 그리고…….’

무전이 종료된 15시 20분, 전투를 마무리하는 대로 아즈마를 엄호하라는 명령이 미와 부대로 전달되었다는 뜻은 그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부대가 미와 부대였음을 시사한다. 2분 후 대치하던 트리온 병사를 쓰러뜨린 미와 부대의 시선은 그때까지 대형 트리온 병사에게 쏠려 있었고, 따라서 그들을 노리는 또 하나의 눈을 알아채지 못했다.

베일 아웃이 불가한 상황. 대형 트리온 병사 상대로 근접전에 돌입했다가 사망한 어태커의 사례가 적지 않았을 때. 카코 노조미의 말은 옳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겠어? 아즈마 씨가.’

“…….”

「아즈마 대장?」

“시선을 끌겠습니다. 그동안 미와 부대의 퇴각을 명령해 주십시오. 저격수의 사선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미와 슈지에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

“뒷일을 부탁합니다.”

무전을 끊은 아즈마가 제 손에 들린 트리거를 내려다본다. 그는 적에게 발각된 스나이퍼의 말로를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별반 다르지 않은 결말이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만히 숨죽여 숨어 있으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지 모르나, 과연 카코는 아즈마를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가만히 있을 사람이겠어. 아즈마 씨가. 그럼에도 딱 거기까지만 나와 배웅하던 한결같은 당신이셨으니 여전하시다는 말 외엔 드릴 말이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평소엔 그리도 타임 업 전술을 즐겨 쓰는 사람이었으면서. 타임 업도 타임 업 나름이라고 생각할 사람이긴 했지만. 그런 사람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블랙 트리거를 미끼로 쓸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거예요, 아즈마 씨.

“하하.”

그 말엔 다만 웃은 그것이었다. ‘그’이기에 그것은 바로 눈치챌 수 있던 이야기. 사실. 진실. ‘아즈마 하루아키를 죽인 것도 나겠지.’ 한 치의 거짓도 존재하지 않던 이야기.

효과가 좋았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아도 좋았다.

말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누구에게?

“……슈지에게는 말하지 않는 쪽이 좋겠지.”

“이제 와 그 애를 걱정하세요?”

“아무래도 미안하니까.”

“미안해할 줄 모르시는 줄 알았어요.”

“카코.”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키누타 씨.”

“어처구니가 없어. 어처구니가.”

2분 후, 대치하던 트리온 병사를 쓰러뜨린 미와 부대가 아즈마를 찾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5분이었다. 사망 확인 시각은 그로부터 5분 후인 15시 27분. 그에 거짓은 없었다. 이변도 없었다. 다만 비밀만 있었을 뿐인. 그뿐인 이야기였지만.

“…….”

그럼에도 미와에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기에 그것을 무어라 부르면 좋은지 미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이야기. 그렇기에 계속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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