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선공

월드 트리거. 이코마 선공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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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은 “선공”이 되었다. 모두가 모두를 곧 서로를 경계할 때 선공은 소리 없이 날아들어 앞서 타인의 목을 베어낸 자의 발목을 잘라내었고, 그것으로 그들의 난전이 재시작되었음을 모든 이 앞에서 명징하게 선포했다. 그 선언자, 선공을 가한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를 악물었는데, 그것은 마치 조금 전 상황에―그러니까 동료의 목이 베어진 상황에 분노한 것처럼도 보이는 얼굴을 보이게 했다. 실상 그렇게까지 분노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그랬다. 그를 포함하여, 이 전투에서 실제로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여기 없었다. 목을 베인 자도, 발목이 잘린 자도. 영구히 남을 부상이나 상실은 일찌감치 절개해 낸 세상이었기에 그 때문에 분노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분노한다면 계획이 어그러지고 작전이 뒤틀린 상황에 분노하는 것이 적절하겠으나, 그렇다고 단순히 분한 감정을 넘어 ‘분노’까지? 그럼에도 여기, 노한 것처럼 보이는 자는, 물론 그가 진정으로 노했다는 가정 아래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전술한 까닭처럼 그들이 패배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노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상실이 아닌 상실에, 부상이 아닌 아군의 부상에, 그걸 입힌 자의 정당한 ‘행태’에 마치 분노한 것처럼, 분노한 것 같은 자신을 보이며 공격을 가했다. 두 사람 중 이 분노의 대가를 치를 자는 누구인가 가늠하듯 오랫동안 시선을 하늘로 고정한 그는, 시선을 내린 뒤에도 오랫동안 침묵한 그는, 실제와 허상을 착각할 정도로 분별없는 자가 아니었으나(그랬다면 그는 지금의 개인 순위에 머무르지도, 자신의 부대를 지금과 같이 이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지는 상관없이 그 자신을 그렇게 보일 수는 있는 자였다. 의도한 바이든, 아니든. 마치 어지간해선 그 앞에서 그의 동료를 이탈시키는 것이 실제든 허상이든 좋은 판단은 절대 아니라는 듯이. ‘선공’을 가한 자는 그가 아니라 그의 동료를 ‘해한’ 자라는 듯이.

뻗어나가는 검격에는 소리가 없었다.

불필요해진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지금 같이 사고의 아주 작은 틈, 지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되던 소리, 선언 없이 분노를 받아낼 대상으로 ‘선정’한 자를 향해 검격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신체의 일부를 잘라낸다. 찰나의 순간 눈치채고 도약하지 않았더라면 똑같이 잘라낸 것은 목이 되었을 검격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목에는 목. 일찍이 모두가 합의한 규칙에 따른 것이며 모든 부상은 영구하지도 않거니와 고통 또한 스스로 선택한 만큼 외에 느끼지 않는 무통의, 가상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되갚아주는 것이야 말릴 일이 아니라만 어째서 범위를 넘어서 온당치 못하게 느껴지는 분노는 왜일까? 무얼까? 과하지 않나?

그러나 설령 과할지라도.

그런 사람이기에 그 아래 모인 자들이 따르는 이들의 대장이었다. 그는.

그것이 그들의 대장 된 자의 ‘대장 됨’이었다. 그 과함이.

각 부대에는 부대마다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대장들이 존재했으며 그는 그중 그러한 성격을 가진 대장이었다. 분노하는 자. 분노할 줄 아는 자. 되갚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자. 선공을 가한 건 그쪽이 먼저였다, 고 말하는 자. 그러나 그 말에 소리는 없었다. 소리는 불필요했다. 소리가 끼어들 틈 없이 몰아치는 선공. 아니, 신공이다. 강자라는 제목에 부합하는 자의 검이 휘둘러진다. 벽을 베고 집을 갈라 이윽고 그 앞의 그 외의 모든 방해물을 치워낸 그 뒤로. 다시 말해 대상으로. 소리 없이. 소리 따윈 필요 없이. 신공에 다다른 선공이란 이러해야 마땅하다는 듯이. 호를 그리며, 베어져 마땅한 대상을 향해 검이 휘둘러진다. 검을 휘두른다. 호를 그리며.

호號를 드리우며.

이코마 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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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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