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5

월드 트리거. Sniper Who?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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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도 끝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에도 끝이 왔다. 노이즈까지 한데 섞인 모든 소리에서 그는 제가 아는 목소리를 구별해낼 수 있었으니 그쯤이야 조금도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진상을 확인하기란 이토록 간단하고 편했다. 어려운 것은 확인이 아닌 진상일지니. 조금도 쉽지 않을 인정일지니. 장치에 저장된 녹음된 음성이 그대로 재생되었다. 녹음 속 목소리가 말했다.

「……명령해 주십시오. 저격수의 사선에 위치해 있습니다.」

“…….”

고작해야 7분이었다. 상황이 전달된 지 기껏해야 7분 만에 일어난 죽음이었으니 그 안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가 당신을 죽게 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지적한 사람은 스와 코타로였다. 오만하게 굴지 마라. 네 탓도 아닌 걸 네 탓으로 돌리며 자학하지 마. 스와의 말은 일견 타당하게 들렸다. 아니, 실로 타당했다. 내가 제때 도착하지 못한 탓에 당신을 구하지 못했다고, 그러니 당신의 죽음은 당신을 구하지 못한 내 책임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은 모두에게 실례였다. 그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제쳐두어라.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허울 아래 곁에 가만히 있던 사람한테까지 총구를 겨누는 짓과 다른 것이 조금도 없으니, 생각을 하고 말을 해. ‘그렇지만’ 같은 말은 집어치워. 너는 우리 전부를 살인자로 만들려는 거냐?

「뒷일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그가 듣지 못했던 이야기는, 알지 못했던 나머지 통신은 그와는 생각이 다른 듯했다. 생각이 다른 듯하지.

「시선을 끌겠습니다. 그동안 미와 부대의…….」

“…….”

낭패 어린 표정을 지은 건 스와도 마찬가지였다. 무전 기록의 전문은 스와도 확인한 적 없었다. 미와는 그저, 그 모든 내용을 들으며 그저.

굴러떨어졌다. 아래로, 아래로.

무전을 끊은 아즈마가 손에 들린 트리거를 내려다본 이유. 적에게 발각된 스나이퍼의 말로를 어렵지 않게 그려내더라도 다를 수 있었던 결말. 이대로 가만히 숨죽여 숨어 있으면 목숨을 건졌을 터나,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 동기. 언제나 한결같이, 정해둔 선 딱 거기까지만 나와 배웅하던 당신은 어째서, 왜 여전하다는 말을 듣는 것까지 포기하고 앞으로 나섰을까. 이해되지 않았던 선택을 이해하게 만드는 그 까닭. 그러니 타임 업을 기다릴 순 없었겠지. 타임 업을 만들어낼 순 있겠다고 생각했겠지. 제 남은 시간을 소진하는 것으로, 자기 앞의 생을 포기하는 것으로.

“아즈마 씨가 죽은 건…….”

나 때문이었어. 그렇게 말하려던 때, 선수를 치는 이가 있었다. 분에 겨운 목소리가 미와를 일갈했다. 윽박질렀다. 아즈마 씨가 죽은 건.

“너 때문이야.”

후일의 일이다.

*

침공은 끝났지만 돌아온 일상은 여전히 평화와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그들의 일상이란 것 자체가 게이트 너머로 넘어오는 트리온 병사를 제거하는 일과의 연속이었으니 전쟁이 남긴 상흔까지 지닌 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 외에 삶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존속되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게 삶이고 시간이니 당연할까. 오늘도 야간 방위 임무를 맡아 경계 구역 외곽의 가정집 지붕에 서서 사위를 확인하던 청년의 눈이 멀리,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건재한 본부를 향했다. 그가 돌아가야 할 곳, 좀 더 구체적으로는 퇴근을 위해 반드시 들려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참 멀리 있었다. 못 갈 거리는 아니었지만 조금 귀찮기는 한 거리 정도는 될 수 있었다.

“베일 아웃으로 돌아가면 안 되겠지.”

그래도 이건 아웃인 소리. 옆 건물 지붕에 올라서 있던 미나미사와가 소리쳤다.

“마리오 선배, 미즈카미 선배가 또 헛소리해요!”

“이게 대장에게 못하는 말이 없네.”

“임시 대장이잖아요. 아얏. 아야얏.”

“요게 요게.”

물론 그들은 모두 트리온 전투체였으므로 꿀밤 한 대에 아플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꿀밤 대신 미나미사와의 양볼을 잡아 찹쌀떡처럼 쭉쭉 늘려대던 그때, 장난은 돌아와서 마저 치든가 하고 얼른 귀환하라고 말하던 호소이가 돌연 목소리를 높여 미즈카미의 손도 덩달아 멈췄다. 마리오쨩? 모두가 고개를 들어 올려 그들이 신뢰하는 오퍼레이터의 다음 말을 기다리던 때였다. 전방을 경계, 주시하던 그들의 귀에 곧이어 호소이의 외침이 트리온 내부 통신을 통해 전달되었다.

「전방에 게이트 반응……! 200m 앞!」

하필 대장인 이코마가 가족 사정으로 휴가를 내고 교토로 내려갔을 때였다. 그럼에도 인원수가 장점 중 하나인 부대답게 대장을 제외하고도 남은 세 명의 부대원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방위 임무를 수행하던 때. 추가적인 게이트 출몰에 모두가 정신을 가다듬고 집중했다.

「150…… 100…… 50……!」

대로변이었기에 시야엔 한참 전에 들어온 대형 트리온 병사였다. 사정거리를 재던 미즈카미가 트리온 입방체를 허공에 띄우며 말했다.

“끝나면 이번엔 진짜로 베일 아웃 해서 돌아갈 거야.”

「그러세요.」

“진짜야. 말리지 마.”

안 말려요. 저도 베일 아웃 해서 돌아갈 거니까요. 쿠쾅, 하고 아이비스가 오키의 대답과 함께 쏘아졌다. 그럼 저도 베일 아웃 해서 돌아갈래요! 전위에 선 미나미사와가 호월을 쥐고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전투가 개시되는 순간이었다.

“뭐냐, 이거.”

끝 또한 평소와 다르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제 앞에 놓인 광경에 이코마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위와 같았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보인 작전실 테이블 위에는 큼지막한 과일 바구니가 여럿 쌓여 있었다. 일부는 손잡이에 리본까지 매어져 있었는데, 그에 적힌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쾌유를 빕니다. 파인애플이나 멜론 등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도 화려한 구성품을 보았을 때 바로 짐작하긴 했지만 으레 병문안 선물로 팔곤 하는 과일 바구니였다. 다만 이것들이 왜 자신의 작전실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까지 없진 않아 다행이었다. 목소리는 안쪽에서 들려왔다. TV와 게임기, 장기판 등 여러 취미 용품이나 장난감들을 모아 놓은 휴게실에서 고개가 쑥 내밀어져 나왔다.

“오셨어요.”

“미즈카미.”

과도로 사과를 깎던 미즈카미가 아는 체를 하면 이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고개를 돌려 대장을 보는 대원들이었다. 다들 그 안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코 씨 다녀오셨어요? 이어 오키가 인사하고, 이코 씨! 기념품 사 오셨어요? 포크로 뽁, 사과를 찔러 제 입으로 가져가던 미나미사와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말엔 바로 고개를 주억거린 이코마였다. 당연하지. 야호! 환호한 미나미사와가 이내 이코 씨도 얼른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미즈카미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다음 사과로 손을 뻗었다. 이코 씨도 드세요. 맛있어요. 그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면 이코마가 올 시간이라 생각했는지 미리 내어놓은 두 개의 포크가 접시 위에 나란히 걸쳐져 있었다. 하나는 사과를 깎느라 먹을 틈이 없는 미즈카미의 포크다. 오키와 호소이는 이미 제 포크를 하나씩 든 채였다. 달다. 그쵸. 사각 소리를 내며 씹히는 사과는 과연 호언장담한 대로 달고 맛있었다. 그래서.

“카이는 왜 깁스를 하고 있는 거야?”

사과가 달고 맛있다 한들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음을 잊진 않았다. 그게 말이죠. 지난밤의 이야기를 꺼내는 미즈카미에 이코마의 입가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대로변이었기에 시야엔 한참 전에 들어온 대형 트리온 병사였다. 이전 같았으면 그 크기에 놀랄 만도 했지만 여러 차례 침공전을 겪어 온 그들에겐 익숙한 크기라 이젠 위압감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방심은 금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미즈카미의 지휘에 따라 트리온 병사의 눈―그리고 급소를 호월로 갈라 파괴한 미나미사와 뒤로 오키의 아이비스가 작렬했다. 덩치가 아쉬우리만큼 금방 무릎을 꿇고 마는 트리온 병사였지만 이들을 이렇게 간단히 제압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좋았다.

「네이버 반응 정지.」

“끝났네요.”

처음과 마찬가지로 지붕에 착지한 미나미사와가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였다. 진짜로 베일 아웃 해서 돌아가실 거예요? 미즈카미에게 그렇게 묻기 위해서였으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진짜’가 전부였다. 아니, ‘진’밖에 되지 못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했다. 그가 막 입을 열었을 때, 그 순간이었다.

퍽, 소리와 함께 날아온 총탄에 가슴이 꿰뚫렸다.

“어?”

한발 늦게 미즈카미가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카이! 오키!”

「찾고 있어요!」

그러나 ‘일어나선 안 되는 이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윽고 쩍,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인 전투체가 파괴되어 폭발음과 연기가 일었지만, 연기 속에서도 분명히 눈에 들어와야 할, 베일 아웃을 상징하는 솟아오르는 빛기둥이 보이지 않았다. 베일 아웃 되지 않아 그대로 트리거 오프 된 본체가 지붕 위에서 비틀거리다 결국 중심을 잃고 떨어지고 말았다. 으아아악! 카이! 즉시 그를 받아내기 위해 달려 나간 미즈카미였지만 두 번째 총탄이 그의 오른 다리를 꿰뚫었고, 균형을 잃고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사이 오키의 외침이 들렸다.

「잡았어요!」

직후 맞저격에 들어간 오키에게선 더는 통신이 없었다. 몇 번의 총성이 서로를 오간 뒤 먼저 후퇴한 건 적의 저격수였다. 그동안 미즈카미는 다리를 움켜쥔 미나미사와를 짊어진 채 호소이의 지시에 따라 사선을 피해 몸을 숨겼고, 지원 명령을 받고 출동한 아라시야마 부대의 엄호를 받으며 무사히 본부로 복귀할 수 있었다. 미나미사와는 즉시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오키는 그 뒤 아라시야마 부대와 함께 본부로 복귀했고, 미즈카미, 호소이와 함께 상부에 전말을 보고했다. 전말, 즉, 적의 존재를.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사과를 또 하나 뽁 집어 든 미나미사와가 조금은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대가 늘어났대요.”

“그래도 그만하면 다행이지.”

“진짜로.”

“이 녀석 보기보다 용가리 통뼈예요.”

추적에는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본부에서 전달받았다. 이와 함께 전달받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었으니, 다시 되더라고요. 베일 아웃. 베일 아웃을 일시적으로 먹통으로 만드는 트랩과 같은 트리거를 소지한 것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 사실은 즉시 모든 B급 대원들에게 공표되어 주의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렇게 된 이야기였다. 사과 하나 더 드세요. 응. 이전처럼 달게만 느껴지지 않은 사과가 입속에서 어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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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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