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무기 쏘기

월드 트리거. 산산조각

비자림 by 비
1
0
0

보더에 스나이퍼라는 포지션을 정립한 최초의 스나이퍼 아즈마 하루아키는 최초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외면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최초가 유일이 되지 않도록, 그 다음이 있도록 대원들을 가르쳐 스나이퍼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즈마가 직접 스나이퍼가 되길 희망하는 대원들을 가르쳐 기술을 전수했지만, 보더에 스나이퍼용 제식 트리거가 보급된 후일엔 정식 훈련 체계를 통해 본격적으로 스나이퍼를 양성, 배출할 수 있게 되었다. 아즈마와 관련 없이 독자적으로 연마한 기술을 선보이는 이들의 수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아즈마가 바라던 미래이기도 했다. 그때쯤 아즈마는 이전처럼 대원들을 모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그에게 직접 찾아오는 이들만 따로 봐주는 식으로 소수의 제자를 길러냈는데, 아즈마란 존재가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게 되어도 아즈마의 계보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은 언제고 항상 존재하는 편이었다. 하토하라 미라이는 바로 그때쯤 아즈마를 찾아와 제자로 받아주길 청한 사람이었다. 아즈마는 이를 거절하지 않았고, 계보를 이은 하토하라는 다시 에마 유즈루에게 그가 이은 계보를 잇게 하나 이것은 후일의 이야기다.

한편 하토하라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사람을 쏘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단점을 상쇄할 만한 장점을 만들어내는 것에 주력했다. 무기를 쏘는 것은 그가 기울인 무수한 노력, 그 일환 중 하나였다. 트리온으로 생성된 공격용 트리거는 설령 파괴된다고 하여도 사용자에게 트리온이 남아 있는 한 다시 생성해 낼 수 있기에 하토하라의 공격은 일시적인 무장 해제만을 가져올 뿐이었다. 그러나 적과 대치하는 상황엔 바로 그 찰나가 승패를 갈랐고 하토하라는 찰나를 노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는 곧 무기 쏘기의 달인이 되었다. 철저히 은신 중이었던 아즈마의 라이트닝을 정확히 쏘아 떨어뜨린 날, 무기 쏘기에 한해서는 스승을 뛰어넘는 스나이퍼가 되었고, 아무도 그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런 그가 네이버후드로 밀항을 시도하여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파는 그 혼자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속했던 부대, 한때 아즈마가 대장으로서 이끌었던 니노미야 마사타카가 이끄는 니노미야 부대는 그 연좌로 B급으로 강등되었다. 니노미야 부대는 당시 A급 4위의 부대로, 그 위로는 블랙 트리거에 대응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 부대들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 부대가 정예에서 일반 정규로 강등되었다.

떨어졌다.

일견 냉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감정을 지운 시선으로 사태를 관망한 아즈마는 생각했다. 하토하라는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제 특기를 발휘하고 갔다고. 니노미야 부대는 하토하라가 보더에서 마지막으로 쏘아 떨어뜨리고 간 보더의 무기라고.

어쩌면 그것만 쏘고 간 건 아닐지도 모르지.

자정을 넘긴 오전, 그제야 끝난 감사로 보더 본부에 남아 있던 니노미야는 두 손은 모아 깍지를 낀 채 무릎 사이로 떨어뜨리고 고개는 숙인 채 등받이 없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즈마가 그 앞으로 다가가 멈춰 섰을 때 니노미야는 입을 열어 말했다. 꾀어낸 사람이 있을 겁니다. 혼자서 그 같은 일을 계획하고 결심했을 리가 없습니다. 정이 있기에 니노미야에게 말하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그 말을 들은 아즈마가 삼킨 말은 짧고 단순하고 사실이었다.

글쎄.

트리온으로 생성된 트리거는 파괴되면 부서져 흩어질 뿐 그 자리에 파편이 남진 아니했다. 아즈마는 지금 파편을 바라보며 서 있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