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분노의 윤리

월드 트리거. 윤리적 분노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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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 하루아키는 제아무리 분노하여도 홧김에라도 손을 드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려뜨린 손이 주먹을 쥐고 그 주먹에 다시 힘이 들어가더라도 손을 올리는 일만은 결코 없었고, 그러한 까닭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즈마는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자였다. 그는 자신이 분노에 차 벌일 수 있는 행동의 범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넓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보통 사람보다 더 신중해야 했고, 분노의 역치가 높아야 했으며, 선을 넘는 순간 제가 망가뜨리는 것에 그 자신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했다. 따라서 그는 날 것으로 치미는 분노를 조리하고 밀봉하여 냉장고 냉동실 안에 쟁여두는 법에 능숙해지게 되었다. 차갑게 식힌 분노가 냉동실 안에 차곡차곡 쌓여 나갔다.

내면의 냉동실이 크다 하나 냉동 창고만 하지는 아니했기에 보관된 분노는 주기적으로 반출되어 내보내져야만 했다. 취미 생활은 좋은 분출구였다. 그는 더없이 냉정한 머리로 패를 섞고, 패산을 쌓고, 패를 버리고, 패를 주웠으며, 아즈마의 승률이 더 없이 높아지는 때야말로 그의 심기가 매섭도록 날카로운 때라는 것을 그와 자주 패를 섞는 마작조는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언제든 아즈마는 ‘쏘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게 제 손에 들린 총이든 상대방의 손에서 떨어지는 버림패든 명중하는 데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취미 생활만으론 해소할 수 없는 분노도 있는 법이렷다. 내려뜨린 손이 주먹을 쥐고 그 주먹에 다시 힘이 들어가더라도 손을 올리는 일만은 결코 없었던 이에게도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이 실은 지척에 있음을 굳이 다시 한번 되짚는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리하여 아즈마에게도 선을 넘는 날이 오는가, 하면 그래도 오늘이 그날은 아닐 듯하였다.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즈마 씨.

“괜찮아요.”

그러니 오늘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부름으로도 그를 멈추지 못하는 날이 오리라. 아즈마는 분노의 역치가 높은 사람이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되지 못하였기에 그날이 저도 모르는 새에 도둑같이 올 것을 알았다. 그래도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카코. 움직일 수 있겠니.”

“아뇨. 베일 아웃을…….”

손을 내저은 카코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고 싶은 기분이네요.”

그는 다리를 뻗은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허벅지 한중간이 찢어진 청바지는 상처에서 흐른 피로 젖어 검붉게 변색해 있었다. 숨을 고르는 카코에게 다가가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천으로 동여매 지혈한 상처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중요한 혈관은 스치지 않았는지 출혈은 멈췄지만 이미 흘린 피가 상당한 탓에 카코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아즈마는 침묵했다.

장난에도 도가 있었다.

‘이거, 제 트리거가 아니에요.’

트리온체가 박살 나기 전 카코의 마지막 통신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전에 신형 네이버의 꼬리가 그를 직격했고, 카코의 말은 사실이었으므로 그는 베일 아웃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네이버와의 전투 지역에 맨몸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카코 씨!’ 거리가 가장 가까웠던 미와가 급히 그에게 달려가는 사이 빈자리를 채운 건 니노미야였다. 카코가 날아간 방향을 곁눈질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정면을 응시한 니노미야의 아스테로이드가 네이버를 멀리 밀쳐냈고, 아즈마가 아이비스로 쏜 트리온 탄환이 네이버의 눈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갑주가 단단한들 눈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 모양이었다. 폭발음이 굉장했으나 평소와 달리 그걸 신경 쓰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아즈마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비켜선 미와도 카코 못지않게 허옇게 질린 얼굴이었다. 듣기로, 미와는 눈앞에서 네이버에게 살해당한 누나를 곁에서 지켜보았다고 했다. ‘괜찮아, 미와.’ 카코도 이를 신경 써서 웃는 낯을 애써 유지했지만 도통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안색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괜찮다, 슈지.”

“그렇지만.”

“카코는 괜찮을 거란다. 그렇지?”

“당연하죠.”

가장 늦게 도착한 니노미야를 보며 아즈마는 제가 대장으로서 해야 하는 사후 처리를 그가 대신 끝마치고 돌아왔음을 알았다. ‘미안하구나. 내가 해야 했는데.’ ‘아닙니다. 카코는?’ 아즈마 뒤로 카코가 여기라며 손을 흔들었다. 옆에 있는 미와까지 번갈아 보는 그에게 아즈마가 말했다. ‘너와 둘이 부축해야겠다.’ ‘예.’ 미와에겐 먼저 본부로 돌아가 츠키미와 함께 상황을 설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령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할 것이기에.

양옆에서 카코를 부축해 일으키는 동안 아즈마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열이 식었을 뿐 분노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을 그 역시 자각하고 있었다. 질 나쁜 장난이라 해도 도가 넘었다. 이 정도 고의는 악의라고 봐도 무방했다. 카코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에 장난은 변명으로 거론될 수 없었다.

아즈마 하루아키는 제아무리 분노하여도 홧김에라도 손을 드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려뜨린 손이 주먹을 쥐고 그 주먹에 다시 힘이 들어가더라도 손을 올리는 일만은 결코 없었다. 아즈마는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자였다. 그는 자신이 분노에 차 벌일 수 있는 행동의 범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넓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보통 사람보다 더 신중해야 했고, 분노의 역치가 높아야 했지만, 역치를 넘기는 순간 자신이 벌일 일에 관해선 그 자신도 예상할 수 없었다. 선을 넘는 순간 제가 망가뜨리는 것에 그 자신이 포함되어 있을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목구멍 너머로 날 것으로 치미는 분노를 조리하고 밀봉하여 냉장고 냉동실 안에 쟁여둘 때까지 자신이 이 분노를 참아낼 수 있을 것인가?

언제든 ‘쏘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손에 들린 총이든 상대방의 손에서 떨어지는 버림패든 명중하는 데 큰 차이는 없었다. 차이는 없지만…….

섞고 쌓고 버리고 줍는다. 섞고 쌓고 줍고 버린다. 섞고 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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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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