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6

월드 트리거. Sniper Who?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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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여기 있었으니 떠날 수 없었다. 여전히 여기 있기에. 이제는 영원히 여기에 당신이 있을 것이기에 떠날 수가 없었다. 별수 있겠나. 당신이 여기 있겠다는데. 그게 당신의 뜻이라는데. 당신을 두고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만 혼자 당신을 이곳에 둔 채로 떠나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은 떠나지 못하는데. 당신은 떠날 수가 없는데…….

누나의 장례를 마친 뒤 보더에 입대했다. B급으로 승급은 했지만 마땅한 부대를 찾기는 어려웠다. 게시판에 붙은 모집 공고를 보아도, C급 훈련생일 적부터 드러난 뛰어난 실력에 영입 제의를 받아도, 누군가와 함께할 생각은 들지 않는 탓에 번번이 고사하고 거절했다. 이대로 솔로로 활동하는 방법은 없을지 고심하던 차에 상부에서 제의의 탈을 쓴 명령이 하달되었다. 마음에 둔 다른 부대가 없다면 아즈마 부대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차라리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라 거부하지 않았다. 그에 그날 처음으로 마주한 남자가 제게 악수를 청했다. 당시 어태커 포지션 하나만 운용할 줄 알았던 미와로선 그와 만날 일이 좀체 없었다.

“안녕, 네가 미와구나. 앞으로 잘 부탁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맞잡은 손은 두어 번 흔든 뒤 놓았다. 벌써 4년도 더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왜.”

왜 다 알면서 저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냐. 그런 어리광을 피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왜 그것을 죽이지 않았지? 왜 그것을 가만둔 거야? ‘왜’는 ‘어떻게’로 다시 바뀐다. 어떻게 그것을 가만둔 거야. 어떻게 그것을 가만둘 수 있는 거야. 어떻게 당신이. ‘왜’에서 ‘어떻게’로 변한 그것을 ‘무엇을’로 다시 바꾼 사람은 니노미야였다. 그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눈가를 꾹꾹 주무른 뒤 입을 열었다.

“무엇을 말이지?”

“그야…….”

“슈지. 너는 그게 뭐라고 생각하지.”

니노미야는 미와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툭. 셧다운된 모니터 화면과 같이 이성의 끈이 끊기는 소리가 있다면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싶은 건 나흘 전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와가 곧장 그것을 향해 뛰어들어, 양손을 뻗어, 목을 거머쥐어, 밀쳐 쓰러뜨린 것과 같이 니노미야도 그것이 정말로 네이버였다면 당장에 트리온 탄환을 쏘아 흔적도 없이 부서뜨렸을 것이다. 감히,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으며. 미와 같이.

“말 그대로다.”

네이버였다면. 그랬겠지만 네이버가 아닐지도 모르기에 그럴 수 없었다. 네이버가 아니라면. 네이버가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그것은……. 그런 고민에 잠겨 있을 때 네이버가 아니야, 하고 확언한 이가 있었으니 사흘 전 상부의 지시를 받고 그것을 확인한 카코가 구금실 밖에서 그를 기다리던 니노미야를 보며 풋, 웃었다. 넌 아직도 아즈마 씨를 잘 모르네. 그러는 너는 잘 아느냐고는 말할 수 없었다. 카코는 언제나 니노미야보다 아즈마를 잘 알았으므로.

그럼에도 그것을 ‘아즈마 하루아키’로 불러야 할 이유는 없었다. 미완성된 블랙 트리거라는 설은 여전히 가능성이 높은 설에 불과할 뿐 진상은 여전히 불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믿기를 바라는’ 적의 노림수일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만 니노미야와 카코는 알고 있되 미와에겐 절대 말하지 않을 사실을 더불어 생각하면, 마지막 순간 미끼를 자처한 그의 행보와 어느 시간선에서 그를 똑 떼어놓은 것과 같은 그것이 함께 이해되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미와에겐 말하지 않을 작정을 했기에 미와에게 그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네이버가 아니라 아즈마 하루아키 본인이 남긴 무언가일 가능성이 있다. 그 정도로만 전달해도 충분한 사실이었다. 모든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열하루째 제대로 자지 못한 머리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뭐였지? 기억나지 않는데. 마지막 기억 속 아즈마는 언제나처럼 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 낼 수 있었던 미와였다. 누나도 그랬지. 누나도 그랬다. 누나가 남긴 물건들은 모두 상자에 넣어 정리한 뒤 방 한구석에 두었는데, 그것 중 살아있는 것은 없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누나처럼.

살아있다는 건 뭔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만 기억해 내는 미와다.

그래서 그때와 같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기억해 낸 미와는―.

“뭐야, 미와잖아.”

복도 끝에서부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인영에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스와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조금 전 미와가 구금실을 뒤집어엎어 놓았다는 이야기는 라이조에게서 들었다. 본부 출입을 금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오간 것을 아는 스와는 설령 트리온체가 아닌 본체로 다가오는 미와도 경계해야 함을 알고 있었고, 아까와 달리 그가 경계하고 있는 이상 미와가 그를 제치고 무언가 일을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그러나 미와는 이성을 잃고 그것에 덤벼든 그때와 달리 조용했다. 조금 전 소회의실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던 니노미야를 기억해 낸 스와는 당기는 흡연 욕구를 참아 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들었냐.”

“…….”

보더 전투원 중 가장 마지막에 사망한 전투원. 길었던 전투가 끝나 모두가 안심하던 때 들려온 부고 소식. 발송된 전사 통지서. 당신은 무엇을 남겼나. 당신이 남긴 것은 맞는가. 당신을 남긴 것이 정말 당신인가.

그건 언제까지 당신인가.

이틀째 되는 날에 저를 앞질러 가 앞을 가로막은 미와를 기억하는 스와였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검은 정장을 입고 본부를 나서는 길이었다. 저도 따라가게 해주세요. 어디 가는 줄 알고 따라가겠다고 하는 거냐고 말할 필요까진 없었다.

“안 돼.”

딱 잘라 말하는데 뒤에서 들린 목소리가 있었다. 그때처럼. 부탁드립니다. 이번엔 돌아보지 않을 수도 없어 스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야. 니노미야. 이번에도 말할 필요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리가 없는 그가 미와를 거들자 한숨만 푹 나왔다. 그래, 이번엔 누가 너희 둘을 거들 거냐. 후유시마 씨? 미안하지만 후유시마 씨는 오늘 비번이야. 아뇨. 후유시마 씨는 아닙니다. 그럼?

“…….”

스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심이냐?”

“…….”

젠장, 제기랄, 맙소사. 한참을 입속으로만 짓씹고 되씹은 욕설이 끝나기까지는 2분 정도 걸렸다. 거칠게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어 담뱃갑을 찾아 꺼낸 스와가 남은 개비의 수를 세더니 벽에 기댔던 등을 뗐다. 혀를 차고선, 그들을 등지기 전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이번엔 앞으로 나서지 마라. 절대로.”

“…….”

“대답.”

“예.”

“니노미야. 네가 지켜.”

“알겠습니다.”

중의적인 말에 따라 스와 대신 문 옆에 선 니노미야는 이어 미와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미와는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한 후 문을 열었다.

나흘 전 잔해에서 구조되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된 남자는 열하루 전 사망이 확인되었던 남자였는데, 그는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도 그 자신의 죽음만큼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적에게 발각된 스나이퍼의 말로를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열하루째, 무기한으로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는 자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진입하는 미와의 눈이 마주쳤다. 눈은 언제나 트리온 병사의 두드러지는 특징점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냥 단순한 사실을 언급해도 좋다면, 그는 눈이 좋은 사람이었다. 저격수라면 으레 그렇듯이.

그래서 죽은 당신인 줄은 모르고. 그래서 죽게 된 당신인 줄은 모르고.

그래서 죽게 한 당신인 줄 모르고. 미와가 입을 열었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악의가 북받친 탓에 나오지 못한 소리가 아니었다. 유리창 너머 그것은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트리온체이니 당연히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미와에겐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앞서 벌어진 소동이 있기에 그것은 더 이상 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것에겐 입이 있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바닥과 격하게 부딪친 무릎이라던가 양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아픔이 있었다. 누군가 목을 잡아 뜯듯 붙잡아 조르는 것 같기도 했다. 숨은 부족하지 않으나 고통으로 작아진 목소리가 미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모르겠어.”

다만 고개를 든 그를, 아니, 그것을, 아니 그를, 그것, 그. 아니. 그를.

모든 블랙 트리거는 제작자를 살해한 결과로 만들어진다.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

그때 그는 그렇게 말했더랬다. 그렇게 그를 불렀더랬다. 난 아즈마 하루아키란다. 그렇게 소개하는 그에게 미와 슈지입니다, 하고. 아즈마 씨, 하고 불렀더랬다.

동시에 위선자. 아즈마 씨는 위선자입니다. 그렇게 그를 불렀더랬지. 그 말에 화도 내지 않고 웃던 당신. 그런 당신이었더랬지.

그건 정말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었을까.

그러므로, 그러므로, 막을 수 없는 죽음이었을까. 당신의 죽음은.

“――――――――――.”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참았던 말이 터져 나왔다.

“어째서?”

“왜?”

아, 당신은 역시 위선자다. 아니라면 당신 자신에게 이럴 수는 없다.

내게 이럴 수도 없다.

“아즈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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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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