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상냥함에 관해서

월드 트리거. 상냥한 당신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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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의 제식 트리거 중 스나이퍼 트리거는 유탄 방지를 비롯하여 여러 안전 처리가 되어 있어 트리온체가 아닌 맨몸으로 탄환을 맞게 되더라도 기절하는 데 그치도록 되어 있으나, 어디까지나 보더의 제식 트리거의 이야기일 뿐 그렇지 않은 트리거에도 이와 같은 ‘상냥함’을 기대할 순 없었다. 알고는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

제3차 대침공은 미카도시에 제1차 대침공과 비슷한 규모의 피해를 끼친 뒤 종결되었다. 보더 대원을 포함하여 민간인 중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했고, 중상자의 수가 많아 사망자의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미카도시는 보더의 거점이었으므로 제한된 수를 이끌고 원정 온 네이버―침략자들에 비해 유리한 고점을 차지한 채로 전투에 임할 수 있었으나, 침략자들은 정벌에 익숙했고 보더의 전투원 대다수는 ‘전쟁’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들은 ‘미덴’을 제법 잘 분석하여 준비해 온 적이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보더 본부를 기습하여 베일 아웃 시스템을 어그러뜨렸고, 보더 전투원의 피해는 모두 그 탓에 발생했다고 보아도 좋을 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 베일 아웃은 전송 시 개체의 안전을 위하여 송신 측과 수신 측 모두 안정된 상태여야지만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따라서 트리거, 또는 본부 둘 중 한쪽만이라도 망가뜨릴 수 있다면 베일 아웃의 실행을 막을 수 있었다. 또는 그 둘 사이의 통신에 재밍을 거는 방법도 있었다.

베일 아웃이 불가하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았다.

모두가 알았기에 베일 아웃이 불가해지자 B급 전투원 중에서도 하위는 후퇴 명령을 받아 물러서게 되었다(C급은 처음부터 전투에 배치되지 않았다). 정예에 속하는 A급, 그리고 A급 예비역과 다름없는 B급 상위 부대가 전투의 주축이 되었고, 따라서 사상자의 대부분은 그들 중에서 발생했다. 다행히도 4월, 게이트 너머로 남은 네이버가 모두 후퇴하면서 보더는 미카도시 방어전에서 승리했다. 승리라고 해도 좋을까? 제1차 대침공과 비교했을 때 민간인의 피해는 적었지만 대신하여 보더가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미카도시의 대지 위에, 그 위에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남았다. 이윽고 많은 대원이 보더를 그만두었다. 그만큼 많은 지원자가 몰려들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터였다. 남은 이들이 원하는 바도 그리 다르지 않았으니 앞으로 보더가 나아갈 방향은 하나로 고정되었다고 보아도 좋았다. 긴 시간 최초의 의지를 이었던 이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허무하게도.

그리고 아즈마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에게도 주어진 선택이었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하는.

그가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전쟁은 끝나 있었다. 의사는 그의 부상이 한동안 사경을 헤매게 했을 만큼 심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즈마 역시 그럴만하다고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아즈마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오쿠데라와 코아라이는 차마 그에게 매달리지는 못하고 침대에 얼굴을 묻으며 울었으며, 그들 뒤로는 히토미가 문가에 선 채로 눈가에 매달린 눈물방울을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 한동안 그들이 저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늘어놓는 투정을 받아주고 나서야 그가 의식을 잃은 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 보더를 그만두고, ……는…… 계속해서……. 밝지만은 않은, 밝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였다. 오쿠데라였나, 코아라이였나. 아니면 두 사람 다 동시에 입을 떼는 바람에 아, 하고 부딪힌 소리에 놀라 입을 다물고 그 사이 히토미가 입을 열었나. 그들이 모두 돌아간 밤이 되어서는 기억나지 않았으나 그들이 아즈마에게 한 질문은 이 시간이 되어서도 아즈마의 심중에 가볍지 않은 무게로 내려앉아 있었다. ‘아즈마 씨는…… 보더를 그만둘 건가요?’

‘글쎄다.’

저 역시 확답을 주진 아니했다. 아즈마는 제 왼손을 내려다보며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뒤,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둔 트리거를 손에 쥐었다. 오쿠데라와 코아라이가 가져온 그의 트리거였다. 아즈마는 그들이 이것을 가져다준 이유가 단순히 아즈마 자신의 트리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생각하고 만다.

치료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지금 트리온체로 육신을 바꾸는 건 엄금이었다. 트리온체와 교체되어 트리거 안에 보관되는 본래 육신의 상태가 악화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리온체로 변한다면 아즈마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육체의 주도권을 얻게 되리라. 다시.

다시…….

그것은 보더가 부상을 이유로는 대원들을 제대시키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스 부대의 대장 나스 레이가 증명했듯이 트리온체로 전환한 육신은 본래 육신의 상태와 관계없이 보더의 방위 임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아즈마 본인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아마도 그 역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여기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아즈마 하루아키는…….

“…….”

저를 저격한 자의 ‘상냥함’을 떠올린다.

“…….”

그는 사선에 든 적의 숨통을 그 자리에서 바로 끊어낼 수 있었다. 그것이 스나이퍼라는 포지션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이자 이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첫 발로 아즈마의 트리온체를 파괴한 뒤, 두 번째 탄환으로는, 오른팔을 부수는 것으로 공격을 그쳤다. 세 번째 탄환은 날아오지 않았다. 언제든 쏘아 맞힐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일까? 아니……. 아즈마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저격에서, 맞저격한 아즈마가 쏜 탄환은 부러 빗나가도록 쏜 것이 아니었다. 상대 역시 그랬다. 만약 아즈마에게 두 번째 탄환을 쏠 기회가 주어졌다면 아즈마는 망설이지 않고 똑같이 적의 급소를 노려 저격할 것이다.

그것은 ‘그럼에도’ 적이 죽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인가?

“…….”

늘어진 오른쪽 소매에 시선이 닿는다.

“…….”

다시 할 이유가 있을까?

…….

…….

…….

*

퇴원하기 전까지 아즈마를 병문안 온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는 시노다 마사후미가 있어 보더 잔류 또는 제대에 관하여 아즈마의 의견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보더 본부로 돌아갔다. 그에게 아즈마가 무어라 말했냐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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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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