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경계 구역 괴담

월드 트리거. 사실 여부 확인 불가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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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나 생활용품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사람만이 사라진 시가지―경계 구역은 당연하다면 당연할 만큼 괴담의 온상지가 되었는데, 이에 얽힌 괴담은 아무래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범죄의 온상지가 되지 않은 까닭은 사람만 없을 뿐 ‘사람이 아닌 것’을 감시하기 위해 배치된 무수한 폐쇄회로 카메라와 보더 대원의 주기적인 순찰, 그리고 이곳으로 출몰 지역을 한정 지은 네이버의 출몰에 있었다. 때때로 보더는 수사 당국의 협조 요청을 받아 경계 지역에 숨어든 범죄자 및 실종자 수색에 동원되기도 했다. 경계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확실하다면 보더는 그게 누구든 찾아내 경찰 앞에 대령할 수 있었다. 다만, 범죄자와 맞닥뜨렸을 때의 위험은 대체로 트리온체로 육체를 전환한 보더 대원보다 범죄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의 성격상 성인인 대원에게 맡겨졌다. 가까이해서 좋을 건 없었다. 그것도 네이버가 수시로 출몰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계 구역으로 도망칠 정도로 여유를 잃은, 앞뒤 가리지 않는 범죄자라면 더욱 그렇다.

흉악범 A는 경계 구역으로 도망친 범죄자였다.

그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 밝힐 필요는 없다. 다만 그가 저지른 범죄는 중범죄로 분류되었고 그에게는 흉악범 외의 다른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황색 언론이 그러듯이 멋들어진 별명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미카도시 외 다른 도시에서부터 범죄를 저질러 화제가 되었고, 결국엔 신상이 밝혀져 지명수배자가 되었으며,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다 미카도시 경계 구역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 와중에 미카도시에서도 몇 건의 범죄를 저지른 상태였다. 따라서 흉악범 A의 존재는 미카도시 시민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고, 그렇다 보니 목격 신고도 잇따른 탓에 결국엔 경계 구역으로 숨어든 것이었다.

처음 그는 이렇게 넓은 지역에 사람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알 수 없는 오싹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문이 잠겨져 있지 않은 집에서 오래전 이곳에 살았던 이들이 놓고 간 보존식품을 발견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으레 범죄자들이 그러하듯이 경찰들을 깔보며 수사 방향이나 수색 지역이 바뀔 때까지 이곳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생각 중 하나를 떠올렸더랬다. 네이버의 존재를 모르지는 아니했다. 미카도시에서 일어난 네이버의 제1차 대침공은 전국적으로 보도되었으며 이를 해결한 보더란 조직 역시 더불어 이름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맞닥뜨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실감할 수 있는 공포가 있기 마련이었다. 흉악범 A는 경계 구역에 숨어든 지 4시간 만에 처음으로 보더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게이트는 그와 가까운 곳에서 열렸고, 게이트를 통해 나온 네이버―트리온 병사는 흉악범 A의 트리온을 감지했다. 그가 꽤 괜찮은 트리온 양을 가졌다면 네이버후드로의 납치를 시도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흉악범 A의 트리온 양은 변변찮았기에 트리온 병사는 그대로 트리온 기관만 적출해서 네이버로 돌아갈 생각을 한 것 같았다. 트리온 병사가 동그란 눈을 저에게 고정하며 다가오자 A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 라고 목청껏 비명을 지르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경찰과, 경찰이 협조를 요청한 이곳 보더 대원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수감 생활? 까짓거 한 번 더 하고 말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질 않나.

그러나 필사적으로 달리던 남자는 돌연 엎어져 아스팔트를 구르고 말았다. 뭔가가 그의 발을 건 탓이었다. 밧줄 같은 무언가가……. 운 나쁘게도 그대로 발목을 접질린 A는 목청이 터질 기세로 살려달라고 외쳤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왜 보더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거지?

A는 발이 빠르고 잽쌌기 때문에 트리온 병사로부터 제법 먼 거리를 도망칠 수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린 지도 한참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A는 자신이 낸 것을 제외한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트리온 병사가 지척에 섰다. 약간의 지능을 가진 그것은 먼저 A의 기동성을 무력화해야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다는 판단을 세운 듯하였다. 더불어 트리온 기관은 인간의 상체에 존재한다. 하체 정도는.

모른다. 그것이 실제로는 어떤 결정을 내리도록 설계된 병사인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한 비명이 콰직, 하고 아스팔트가 부서지는 소리 뒤로 묻히지도 않고 터져 나왔다. 흉악범 A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기 전에야 그토록 바라던 인기척을 느꼈으나 그것이 진짜인지 제 바람인 건지는 구분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구분하든 말든 상관없었을지도 모르고.

다행히 A는 ―에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긴 했으나 목숨만은 무사히 건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는 즉시 이송되어 수감될 예정이라고도 했다. 흉악범이 체포되자 미카도시 시민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이에 안도하며 걱정을 한시름 덜어냈다. 보더는 네이버를 서둘러 처리하지 못해 부상자가 발생한 건에 대하여 경찰에 유감을 표시했다. 미심쩍긴 하여도 보더에 내려지는, 내릴 수 있는 처벌은 없었다. 보더 내부에서는 당시 파견되었으나 현장에 늦게 도착한 대원들을 문책했지만 시정하겠다는 반성과 시말서 넉 장으로 사건을 그쯤에서 마무리 지었다.

여기까지는 실화다. 괴담은 그 뒤에야 서렸다. 실은 보더가 흉악범 A와 네이버를 방치했다는 이야기. 알고 보니 보더 대원의 가족이 흉악범 A의 피해자였다는 이야기. 그래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조했다는 이야기. 실은 사이렌 따위 울리지 않았고 게이트 따위 열리지 않았으며 네이버 따위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야기.

경계 구역에 얽힌 괴담은 아무래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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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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