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스가 아니야

주스가 아니야?

월드 트리거. 폭력성, 잔인성 주의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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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사람을함부로정죄하는것은옳지아니하나그자는분명한악한이었다.이사실은누구도부정하지못하리라.그것이사실이기때문에.사람이사람을함부로단죄하는것은아니처

 

무수히 많은 기계 눈이 그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단 한 군데도 남겨두지 않으려 할 만큼 사방에 매달려 깜박일지라도 사각은 언제나 존재했다. 어디에든 존재했다. 무릇 범죄란 이를 의도적으로 노린 자에 의해 저질러지곤 하나 그래도 그때는 아니었으리라. 그렇게까지 그자를 악한으로 만들 생각이 아즈마 하루아키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계로 넘어온 최초의 인간형 네이버가 보더 출범 4년 만에야 등장한 쿠가 유마라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망 아닌가?

*

보더에 입대하여 A급 정예 대원의 직위까지 오르고 나면 일반 정규 대원들에게는 대외비로,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으로 지정한 비밀 한두 가지쯤은 알게 되는 전투원이 속속 생겨나고는 했다. 네이버후드에 원정을 떠나는 이도 생기다 보니 그들에게까지 비밀로 둘 수 없는 진실 중 하나로는 인간형 네이버의 존재가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대원은 제대 시 기억 삭제 절차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를 했을 때의 이야기로, 계속해서 보더에 머무르는 한 누적되는 정보량은 점점 늘어나니 수뇌부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현장 요원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순서기도 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슬슬 내부 관계자로 취급되어 권한을 얻는 동시에 침묵을 요구받게 되었다. 비밀리에 이행되길 원하는 임무의 수행자가 되기도 했다. 아즈마 하루아키는 이를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보더에 계속 체류하는 길을 택한 대원 중 한 명이었는데, 무수히 많은 정보를 아는 만큼 보더도 그에게 협조하는 방식으로 두 사람 간 공조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날 아즈마의 발치엔 액정이 부서진 휴대전화가 떨어져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 앞엔 아직 어린, 인근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앞엔 그 끝에 선연한 피가 묻은 긴 꼬챙이 같은 걸 든 자가 아즈마를 보고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아즈마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언어와도 같지 않은 그것은 아마도 네이버후드, 그곳의 나라 중 하나의 언어였으리란 추측을 가능케 했다. 긴 꼬챙이가 일반적인 무기 형태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명 트리거였다.

주머니로 들어간 아즈마의 손이 트리거를 움켜쥐었다. 시동 명령은 무언으로도 충분했다. 눈앞의 네이버는 역시나 트리온체였는지 그제야 아즈마는 그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잘못했어! 용서해 줘! 제복을 입고 있어서 병사인 줄 알았어……. 저, 저 기기로 지원군을 불러 모으려 하기에 막는다는 것이 그만……. 나, 난 진짜 조용히 이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야. 진짜야!」

쌍방이 트리온체면 음성 역시 트리온으로 전환되어 전달되기 때문에 상호 소통에 문제는 사라졌다. 이자의 말은 아즈마에게 무리 없이 전달되었다. 무리 없이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해할 가치가 있는 말이던가?

아즈마의 손에서 검과 검집, 호월이 생성되고 그걸 뽑아 그자의 목을 날려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다소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트리온체가 붕괴하니 연기 속에서 인영을 드러낸 자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공격할 줄은 알지 못했는지, 또는 바라지 않았는지,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그는 다시금 아즈마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외치며, 아즈마가 이해할 수 있는 제스처인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빈 손을 내보이는 행동을 취했다. 앞서 트리온체를 베어낸 호월의 날에는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당연히. 트리온체를 베어냈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아즈마의 시선이 다시 아이의 셔츠 가운데, 흰 셔츠에 동그랗게 번지는 핏자국에 닿았을 때,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거품에 닿았을 때. 눈조차 감지 못해 허공을 맴도는 시선에 닿았을 때. 시선이 시선에 닿았을 때, 얽혔을 때.

아즈마는 다시 한번 호월을 휘둘렀다. 이제는 트리온체가 아닌 본체인 자에게로.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면서.

도마에 올린 채소를 썰 듯 서걱, 같은 소리가 날리는 만무했다.

저지른 직후였다. 아즈마는 자신이 지나치게 일렀음을 깨닫는다.

이곳은 사각이 아니었다. 인간형 네이버가 출몰한 그때 보더의 상황실은 이미 이를 파악하고 조처하고 있었다. 인간형 네이버의 존재가 극비로 부쳐지던 때. 마땅한 다른 대원도 현장에 없고, 또는 민간인이 함께 있는 것을 확인하자 자신의 위치도, 지위도 잊고 그 자신이 몸을 움직여 이 자리에 온 자보다 아즈마는 지나치게 일렀다. 아즈마는 시노다와 눈을 마주쳤다. 경악한 자의 눈을 뒤로 하고 피가 뚝뚝 흘러 떨어지는 호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호월은 단 한 번도 이런 모습을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도.

스나이퍼란 포지션이 이제 막 정립되었을 때였다.

그전에는 스나이퍼란 포지션이 존재하지 않았고, 호월은 가장 기본적인 공격 트리거였으므로 슈터가 아닌 전투원은 모두 어태커로서 호월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즈마에게도 어태커의 소양은 충분했으므로 그 역시 호월을 사용할 줄 알았고, 그러니 단번에 성공해 낸 것이기도 하리라. 무엇을, 이라고 묻는 것은 잔인하다. 굳이 구태여 확인할 필요가 있나, 그것을.

중요한가, 그게 지금.

이 젊은 청년 안팎에서 돌이킬 수 없는 짓이 저질러졌는데.

어떤 선을 넘어가 버리고 말았는데.

앞으로 인생을 극도의 피로 속에 보내게 되리라 예언되는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는데.

……책임은 수뇌부가 질 것이다. 책임지고 CCTV 영상을 모두 삭제하며 오늘 이 일을 목격한 모든 자의 기억을 소거할 것이다. 가능하면 아즈마의 기억도, 삭제하길 원할 것이나 그것만은 그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즈마는 그리 생각했고 또 실제로도 그리되었다.

시노다도 예외는 아니다. 보더 수뇌부는 그들이 무엇을 양성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

추후 불문에 부쳐진 이 일은 경계 구역에서 발생한 미제 살인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또한 보더 본부 내부에는 은밀히 구금 시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은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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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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