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8

월드 트리거. Sniper Who?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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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왜냐면 당신은 결국 당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을 테니까. 당신은 당신이 판단한 결정대로 행동하길 망설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바꿀 수 있는 사람에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당신을 구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알아. 비겁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지금도 당신의 ‘스크린’은 바뀌지 않으니까. 당신은 바뀌지 않는 사람이니까. ‘바꾸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러므로.

“미와에게 달렸어.”

그 말에 생전의 그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구제 불능인 건 나란 소리지.”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어,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구슬을 굴려 넘기는 손가락은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었기에.

“그 말은 그 애에게 해주는 게 좋겠는데.”

그러나 너 때문에 죽은 게 아니야. 그 말을 하려면 이미 그가 그 ‘잘못되었을지도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지 않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꼴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죽었다고? 아니. 아니니까 하는 소리지. 하지만 이미 그렇게 말했잖아.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까―아, 이 상상만 해도 우스운 꼴이 다 있단 말이냐.

그러므로 진은 미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멱살을 잡는 미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애는 진에게 가장 잔인한 질문―보지 못했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고, 적을 너무 깊이 쫓지 마. 그 말이 무슨 뜻이었냐고만 다만 물었다. 제때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냐고만 물었고.

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미와의 오해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아, 희라. 실력파 엘리트의 비애여라! 이윽고 진의 멱살을 잡은 미와의 트리온체를 멀리, 벽을 향해 내던져 날려버린 건 타마코마 제1부대의 코나미였다고 한다. 코나미는 결국 같은 기간 근신 처분을 받는다.

*

B급 이상 모든 부대, 지부 소속 부대들도 모두 포함하여 서른여 개의 부대의 대장이 모두 참석하는 대장 회의가 열렸다. 일전의 이코마 부대 피습으로 존재가 드러난 네이버 잔당의 처리 및 베일 아웃 불가 상황에 따른 시프트 변경 등이 주된 의제였고, 각 부대의 대장 한 명씩만 대표로 참석하는 것이 의례나 이코마 부대는 피습 당시 대장인 이코마가 부재했던 점, 부대원 미즈카미가 현장에 임시 대장으로 있었던 점을 고려하여 보다 구체적인 당시 상황 진술을 위해 이코마와 미즈카미 두 사람 모두 회의에 참석했다. 지지부진한 걸 싫어하는 이들 대다수의 성향답게 회의는 거의 정체되는 일 없이 막힘없이 흘러갔고, 전체적인 전술 변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베일 아웃이 불가해지는 순간에 대한 전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일단은 전시와 마찬가지로 대응하도록 한다.’ 슈터, 스나이퍼 등 중•원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한 이들이 주력으로 전투하되 어태커 같은 근거리 공격수는 이들을 엄호하고 보조하는 방식은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전법이나 안전을 위해선 별수 없었다. 모두가 동의하고 숙지하기로 고개를 끄덕이면 안건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정답을 알 수 없기에 정체가 필연적인 구간이 왔다. “왜 바로 저격하지 않았지?” 그때가 기회였을 텐데. 카자마의 말에 아무도 말을 잇지 못할 때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이코마라는 사실에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아도 조금 놀란 기색으로 그를 돌아보았을 때였다. 웃음기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표정은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채로 다만 고글로 가려져 있었다.

“표현을 수정해 주십시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당사자 이코마 부대의 입장에선 그들의 생존을 두고 말이 오가는 상황 자체가 불쾌할 법했다. 옆에 앉은 미즈카미도 어깨를 으쓱할 뿐 제 대장의 발언을 나서서 수정하거나 말리려는 몸짓은 없었다. 발언의 무게를 생각해달라는 요구에 카자마가 동의하며 수긍하자 이코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고, 그 뒤 입을 열 자는 누가 될 것인지 알지 못한 모두가 생각에 잠겼을 때. 손을 들어 발언권을 청한 누군가가 있어 그에게로 기회가 돌아갔다.

“그 네이버 말인데요.”

B급 이상 모든 부대의 대장이 참석하기로 한 대장 회의였지만 불참자가 없지는 않았다. 오래전 있었던 제1차 대침공, 그리고 2차 대침공 때와 마찬가지로 침공 이후 보더에 입대하고 싶다는 입대 희망자의 수 역시 크게 늘었으니 타지역에서도 입대 의사를 밝힌 이들이 있어 스카우트팀의 업무가 과중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스카우트로 인한 출장이 모든 불참자의 사유를 대변하진 못했다. 당연히도 그랬다. 공교롭게도 그는 이코마 옆에 앉아 있었기에 이코마는 그를 작은 목소리로 부를 수 있었다. 코알라.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그리고 코아라이는 계속 말했다. 그 네이버.

“아즈마 씨를 죽인 네이버일까요.”

아즈마 부대는 현재 대장이 부재한 상태이기에 히토미 마코가 임시 대장을 맡고 있었고, 다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투원의 참석이 권장되었기에 오쿠데라 대신 코아라이가 함께 참석한 상태였다. 그들 맞은편에는 미와가 앉아 있었다.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꾹 눌러 참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에게 미와가 입을 열기 전, 조금 더 먼저 입을 연 사람이 있었다. 스나이퍼, 아라후네 부대의 대장 아라후네다. “아니라고 생각해.”

대장을 잃은 오쿠데라와 코아라이, 히토미에겐 유감스러울지 모르나 문제의 네이버가 아즈마를 죽인 네이버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사항에 지나지 않았다. 감정의 문제야 있겠으나 지지부진한 걸 싫어하는 이들 대다수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감정을 끼워 넣거나 그에 가중치를 두는 성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평상시에 감정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그들은 대장으로서, 공적인 업무를 처리함에 사감을 배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는 대로 행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속이야 어떻든. 따라서 스와 부대의 대장으로 회의에 참석한 스와는 코아라이를 보며 얼마 전 그의 입으로 미와에게 했던 말을 다시금 곱씹었는데, 그때 그가 했던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렇다면 어쩌게. 죽이러 갈 테냐? 그러나 코아라이에게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코아라이에게도, 미와에게도, 지금 이 상황에도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즈마를 죽인 네이버라면 죽일 테냐? 그렇지 않으면 자비를 베풀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생사를 가르는 손이,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손이 그들의 손이어선 안 됐다. 그들에게는 그럴 자격도, 권리도 없었다. 저울은 그렇게 간단히 그들의 손에 쥐여선 안 됐다. 동시에, 그렇게 간단히 아즈마의 죽음을 이용해서도 안 됐다. 그들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행위에 고인을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

“…….”

입맛이 썼다. 한참을 입속으로만 짓씹고 되씹은 욕설에 입 안이 온통 텁텁해졌다. 당기는 흡연 욕구를 참아 내며 아라후네의 설명에 집중했다. 그러나 슬그머니, 곁눈으로 미와를 본 바로 무표정한 미와는 스와와는 다른 방향으로 ‘그게 중요한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중요한가? 네이버는 모두 적이다. 죽이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그 간단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받아들이지 않아서, 죽이지 않아서. 죽은 당신이 이미 있는데. 죽게 된 당신이 이렇게 있는데. 죽게 한 당신이.

당신이 죽지 않았더라도 내겐 그자를 죽일 이유가 있다.

그것이 있다 한들 당신의 죽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결론이고, 그가 막을 수 없었던 죽음이다.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관점에 따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의견임을 아라후네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후유시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제 부대원 토마의 의견―아라후네의 의견과 다르지 않은 의견을 보탬으로써 회의장에 들어선 내내 곤두서있던 코아라이의 긴장을 누그러뜨렸고, 거기에 카자마가 결정적 한 방을 날림으로써 자칫 의제에서 멀어질 뻔한 논의를 종결시켰다. 아, 이 자식.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날려버린다니까. ……하지만 이번엔 나쁘지 않았어.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그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게 중요한가?”

너무나 많은 사람이 다쳤고, 죽었고, 보더에도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대침공 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다. 그럼에도 미카도시를 떠나지 않고, 보더를 떠나지 않고 남은 사람들. 그리고 그건 카자마뿐만이 아니었다.

“진. 네 의견은 어떻지.”

카자마의 지목에 쌀과자를 봉지에서 꺼내먹던 진이 꺼냈던 쌀과자를 도로 봉지에…… 넣지는 않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타치카와에게 건네며 말했다.

“안 그래도 말해야 할 게 있어.”

“생각보다 더 단순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아즈마’가 입을 열었다. 한창 회의 중인 회의실의 대화가 들릴 리 없는 구금실에서였다. 오컴의 면도날 또는 단순성의 원리에 의하면 많은 것을 필요 없이 가정할 ‘필요’는 없었다. 더 적은 수의 논리에 따라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옳았다. 왜 적 스나이퍼는 이코마 부대가 트리온 병사를 쓰러뜨린 후에야 미나미사와를 저격하였는가? 전투 중의 그는 저격하기 여간 까다롭기 그지없어서? 그러나 최초에 제기된 가능성에는 모두가, 당사자인 이코마 부대를 포함하여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스호퍼를 사용하는 미나미사와는 움직임이 잽싼 편이지만 사선이 훤하고 저격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 상황에서 스나이퍼가 단 한 순간도 기회를 노리지 못할 정도로 민첩하진 않았다. 거기다 꼭 미나미사와를 노려야 할 이유가 있는가? 적을 무력화하는 데는 지휘관을 노리는 것이 현명하다. 저격수인 오키를 제외하고 어태커인 미나미사와보다 움직임이 적은 슈터 미즈카미를 노리지 않을 이유가 따로이 있는가? 미나미사와보다는 트리온 병사에게서 좀 더 떨어져 있던 그였지만 노려서 의미가 전혀 없을 만큼 멀지는 아니했다. 그러니 최대한 단순하게 상황을 가정하자. 트리온 병사를 쓰러뜨린 후에야 그들을 저격한 이유는 그 전엔 그들을 저격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저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려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는 인내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다 아니라면 단순히,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는 기다릴 수 없어져 지극히 현명하지 못한 판단으로 그들을 저격하고야 말았다. 여기에 숨겨둔 꿍꿍이가 있었다는 식의 생각은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그러니 단순하게 구성한 이야기는 이러하리다. 는 트리온 병사가 적들을 쓰러뜨리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자 뒤늦게나마 그들을 공격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누구에게?

“자네 의견은 알겠다.”

그러나 남자는 도움이 되었다 한들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가 말했다. ‘그래서.’

“누가 자네에게 그 사실을 누설했지?”

“올 거야, 한 번 더.”

하지만 그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미래를 보는 제 사이드 이펙트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는 충격적인 발언으로 그날의 회의를 사실상 끝내버린 진이 소수만이 남은 회의실 안에서 말했다. 그 안에는 미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올 거야.”

“그게 중요할까요. 키도 씨.”

그 말에 ‘아즈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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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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