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심문

월드 트리거. 최후변론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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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하라 미라이가 미카도시로 돌아왔다.

자의로 귀환한 것은 아니었다. 네이버후드에서 신병을 구속당한 그는 원정선에 실려 미카도시로 연결되는 게이트를 넘었고, 오늘에 이를 때까지 보더 본부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내디디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미카도시로 돌아왔으나 진정으로 돌아왔다고 보기 어려웠으며, 그러나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라는 말을 그 뒤에 덧붙일 수 있었다. 하토하라 미라이의 기억 봉인 조치는 이튿날 오전에 예정되어 있었다. 보안 조치가 끝나면 보더 쪽 또한 그를 억류할 이유가 사라졌다. 지금까지는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캐내기 위한 심문이 쭉 이어졌다. 그것도 슬슬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 되겠다. 보더는 그간 하토하라 미라이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거진 다 파악했다. 다소 냉담하게 들릴 순 있어도 쓸모가 다한 사람을 보더에 남겨둘 이유는 없었다. 내일이 되면 그는 퇴출당할 것이다. 진정으로, 미카도시로 돌아갈 것이다. 기억 없이. 그리고 그는 그간의 행적을 묻는 주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모르겠어. 기억이 하나도 안 나.’ 그리곤,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겠지. 그리곤, 평범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곤.

그 인생에 보더는 더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조항에, 보더가 준비한 잠시간의 인생 설계에 하토하라의 동의는 없었다. 동의는 없었지만 거부도 없었다. 애초에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신이 무엇에 거부해야 하는지 알 만큼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토하라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미래를 짐작했을지도 몰랐다. 보더가 자신을 이대로 그냥 두진 않으리란 것. 그렇다고 영원히 붙잡는 것 또한 불가하리란 것. 더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리란 것. 보더는 앞으로의 그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그 또한, 보더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하리란 것. 보더는 그를 배제할 것이다. 배제야말로 그들이 하토하라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제재였다. 보더는 과연 그들 조직에서 하토하라‘만을’ 배제하는가? 아니다. 보더의 기억 봉인 조치는 하토하라의 남은 인생에서 지나간 인생을 배제할 것이다. 비록 일부라 할지라도 오롯이 그의 것이어야 할 그의 인생에서 그 자신을 제외할 것이다. 삶이란 살아온 시간의 연속일지니 불연속이란 그 삶이 잠시 그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니 보더와 네이버후드에서의 삶이 사라진다는 말의 의미는 그 시간 속의 하토하라 역시 사라진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에서 삶이 사라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이 사라지면 무엇이 남는가?

죽음이, 죽음만이 남는다.

보더는 하토하라 미라이에게 지나간 시간의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하여 집행일까지 하루만큼의 시간도 남지 않은 시각. 자정에 가까워진 때.

마지막 심문이 시작되었다. 심문관의 이름은 니노미야 마사타카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이 기억이 빈 자리에 대신 놓일 것을 그는 아는가. 모든 빛을 흡수한 뒤 아무것도 반사하지 아니하여 비치는 게 하나도 없을 구멍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것도 두 개나 있었으니. 검은 눈에 박힌 동공이 심문관도 가진 동일한 두 개의 공혈을 응시한다. 별빛 하나 반짝이지 않기에 밤하늘로 비유될 수 없는 어둠만이 서로를 응시하고 끌어안고 하나가 될 수 있다. 오직 어둠만이 그러할 수 있기에 어둠이 아닌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합일이다. 그들 사이에 자리한 기다란 책상은 그들이 설령 접촉을 원할지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한 무리일 수밖에 없도록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금지되었는가? 그래서. 그들은 접촉하길 원하는가? 접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온기? 그게 지금 필요한가?

아니.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에게 처음 주어진 거리만큼 떨어져 앉아 서로를 응시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인데도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냈다. 지금, 오늘,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든, 무슨 대화를 나누든 하토하라 미라이가 이튿날 이 시간까지 이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니노미야 마사타카는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질문만을 골라 그에게 질문할 수도 있었다. 모든 기억은 지워질 것이기에. 아, 물론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기억이다. 아무리 보더라도 하토하라 미라이라는 인간의 모든 인생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지울 수는 없기에, 하토하라 미라이는 미카도시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동생이 사라진 도시이기에. 이 도시에서 동생이 사라졌기에.

“하토하라.”

첫 번째 질문이 결정되었다. 중복된 질문인지도 몰랐다. 아닐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정까지 남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니노미야 마사타카는 어떤 질문이든 하토하라 미라이에게 할 수 있었다. 하토하라 미라이는,

“동생은 찾았나?”

결정된 첫 번째 질문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기대하지 않았던 질문이기 때문이었을까. 예상하지 않았던 질문이기에, 또는 예상대로 들어온 질문이었기에 이 순간이 와서도, 이 순간에 이르러서도. 당신은. 나에게. 뭐 그런 이유로 일그러뜨리고 만 얼굴이었을까. 그런데 니노미야 마사타카는, 그런 인물이었다. 과거에도 그는 하토하라를 원정에 데려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토하라의 이유를 이해했기에, 들어주려 노력했다.

일그러진 얼굴 위로 끝내 미소 비슷한 무언가가 모습을 보이고 만다. 웃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그렇다. 울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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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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