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Matthew 22:39

월드 트리거. 팬아트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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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아트입니다.

트리온체는 충격을 받지 않는다. 손상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감도를 0으로 설정하지는 않지만, 무통에 가까울 만큼 고통도 거의 느끼지 않는다. 트리온으로 구성된 신체엔 혈액이 없어 그나마 나은 ‘꼴’을 하기는 하지만, 트리거 사용자 곧 전투원들은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설령 머리가 베어나가도 무던하게 움직이도록 훈련받고 또 그럴 수 있는 자들만 전투 적성을 인정받아 전투원이 된다. 죽지 않잖아. 트리온체가 파괴되어 전투 불능 상태가 된 것일 뿐. 다친 게 아니야. 그러니 ‘괜찮아’. 그것이 보더 전투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였다. 네이버라는 적에 맞서 그들을 정확하게 조준하고 저격하기 위해선 그러한 자세가 필요하고 중요했다. 흔들림 없이. 다만 이것은 과연 올바른 사고에서 도출해 낸 결론인가? 대안은 없었나? 당시엔 당장 붙잡아야 할 손잡이가 필요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립을 감싸 쥐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총구에서부터 뻗어 나온 총알이 대상을, 적을 꿰뚫을 때, 우리는 충분한 반동을 느끼고 있는가? 실은 전부 고스란히 느껴야만 하는 반동을, 충격을, 우리는 제대로 받고 있는가?

“트리온체는 충격을 받지 않지만 정확한 조준을 하려면 총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자세가 중요해. 흔들림 없이…….”

“이렇게요?”

“옳지. 시선을 맞춰서.”

가르치는 자가 할 소리는 아닌가. 그는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나. 진정 가르쳐야 하는 건 빠뜨리지 않고 가르치고 있는가? 실은 이것이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님을 상기하는 진동을. 무기를 쥔 자로서 마땅히 느껴야 할 긴장을. 그 뒤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가져야 할 불안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 무엇도 그를, 그것을 돌이킬 수 없으니 한 발 한 발 확신이 있을 때만 당겨야 한다는 다시, 무게를. 그걸 모두 가르친 뒤에 방아쇠(trigger)를 당기도록 하고 있는가?

“아즈마 씨!”

충격이 부재한 자리를 쾌감이 차지한다. 적대 세력의 존재가 무마해선 안 될 것까지 무마하고 있다. 적성(敵性)으로 선포된 이들에게 번져나갈 증오는 오롯이 증오여야만 하는 것을. 거기에 쾌감이 끼어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아야만 하는 것을.

“적성에 맞나 보네.”

하지만 그게 그걸 가르치는 자가 할 소리인가?

트리온체는 충격을 받지 않는다. 무통에 가까울 만큼 고통도 거의 느끼지 않고, 따라서 심적인 고통도, 가책도 모두 무뎌지고 무던해진다. 트리온으로 구성된 신체엔 혈액이 없다는 이유로, 죽음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간신히 사람 꼴을 하고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너와 이웃은 결국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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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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