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暗箭難防

월드 트리거. 아즈마, 최초의 스나이퍼, 대장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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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고 그리하여 감당할 수도 없는 폭력을 마주했을 때, 혹자는 자신에게 책임을 돌려 폭력의 이유를 만들어내고는 했다.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이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낸 건 자신이다. 그러므로 상황을 주도한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다……. 이는 자기방어의 일종으로 이를 통해 혹자는 정말로 ‘이유 하나 없이’ 저질러진 무자비하고 무도한 폭력에서 철저히 상실했던 주도권을 되찾으려 하지만, 오래 두고 볼 사고는 아니었다. 피해자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없다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에 혹자는 어디로든 화살을 돌리다 자신에게도 촉을 겨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그렇다. 정말로 이유도 없이, 어떠한 이유도 없이 이 모든 부당한 처사가 일어났단 사실은 생각보다도 더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다. 그 말이 맞다면 내게는 어떠한 이유도 없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입니까. 나는 이리도 고통받는데, 차라리 내가 그럴 만한 짓을 저질렀기에 받은 천벌이라고 말해주십시오. 아니? 당신에게는 잘못이 없다. 당신은 단 한 번도 상황을 주도한 적이 없다. 당신에게는 상황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 적 없었고 예방할 수 있는 순간도 없었으며 이 모든 것에 당신의 개입은 허락되지 않았고 당신의 의지는 묵살되었다. 당신은 철저히 당하고 짓밟혔다.

원망은 쉽다. 미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미칠 때까지 고통받는 것은 가능하다.

미친 당신에게 마침내 쥐어지는 기다란 총열. 속삭임.

자, 손가락을 방아쇠에 거는 거야. ‘트리거’에 거는 거야.

자.

*

기술부 내부에서 트리거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본디 기술부의 트리거는 보더 밖으로의 반출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 잔업을 하기 위해 규칙을 어기고 자택으로 가져간 엔지니어에 의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전투원에게 지급된 트리거는 특유의 트리온 반응이 시스템 내에 모두 등록되어 있어 언제든 조사, 검출, 판별해 낼 수 있지만, 최종 검수가 완료되지 않은 미완성 트리거는 제작 단계에 따라 등록된 정보가 미비하여 추적이 불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이 사건의 트리거는 추적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그렇지만 불행히, 사고는 이미 발생한 후였다. 그다음날 아침 대로변에서는 인질극이 벌어졌다. 무고한 시민을 인질로 잡은 그는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신자로, 트리거를 유출한 엔지니어의 가족이었다. 그들은 지난 대침공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러니 가족 중 누구는 그 일을 겪고 보더에 입대해 엔지니어가 되었지만, 누구는 네이버가 신의 사도라고 믿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었다는 거지. 때가 다가왔으니 모두 회개하라고 소리치는 가족의 고성에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엔지니어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엔지니어의 가족, 사이비 종교 신자에서 이제 인질범 세 글자로 불리게 된 인질범은 어떻게, 트리거를 작동하는 방법을 알았는지 기다란 장검을 시민의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경찰은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신체 능력이 강화된 트리온체는 일반인의 힘으로 제압이 어렵고 트리거가 아닌 이상 피해를 주지도 못했다. 곧 보더에서 전투원들이 파견되었다. 시선을 끌어 좋을 게 없는 상황에, 삽시간에 모여든 시민의 눈이 몰려 있기에 어태커나 건너, 슈터는 접근이 힘들고, 스나이퍼, 저격수들이 곧 건물 옥상마다 배치되어 인질범을 향해 총구를 기울였다. 범인과 인질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운 탓에 안전을 위하여 무력 제압은 최후의 수단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들의 판단이라기보단 경찰의 요구였다. 스나이퍼 외 다른 전투원은 개입하지 말 것. 그들이 신호할 때까지는 절대로 발포하지 말 것. 가능한 한 급소 외 다른 부분을 노릴 것. 어길 시 모든 책임은 보더가 지게 될 것이다. 관리 소홀의 책임이 있는 보더는 모든 조건을 수락했고, 현장에는 사복으로 트리온체를 변경한 전투원들이 사이사이 숨어들었다. 그들이 발각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러므로 제압은 스나이퍼들에게 맡겨졌다.

대치 상태는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몇 번의 고성이 오간 뒤였다. 인질범이 팔을 움직이는 순간 마침내 신호가 떨어졌다.

위력을 최대한 줄이긴 했으나 트리온체가 파괴되는 순간 시민들 사이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트리온체 간의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다. 실상 처음 보는 이들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았다. 상체의 절반이 파괴당한 트리온체는 트리온 과다 누출로 인해 곧, 쩌적, 하고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파괴되었다. 베일 아웃 기능이 추가되지 않은 트리거였기에 그대로 원래 육신으로 돌아온 인질범이 현장에 남았다. 그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다가오자, 인질범은 품 안에 급히 손을 넣었다. 그리고,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바닥에 쓰러지는 인질범에 시민들은 이전보다 더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경찰은 지금 누가 신호도 없이 발포한 것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으르렁댔으나, 총성을 울린 방향을 바로 찾아낼 수 없었다.

「철수해.」

그 시각 통신을 들은 스나이퍼들은 명령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고, 순식간에 경찰의 시야에 닿는 모든 옥상에서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경찰은 분개했으나 사전에 통지한 대로 보더는 작전에 참여한 스나이퍼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참여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섞여 있다. 인질범도 결국 무사하지 않은가. 저희가 할 일은 다 했다며 선을 그은 보더였지만 트리거 유출과 관련해서 사태를 책임져야 할 책임자들의 신병은 직접 인도하는 것으로 나름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면 경찰도 거기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상부의 방침은 그러하니 현장 책임자들의 불평은 그들에게 닿지 못했다.

두 번째로 발포한 자가 누군지만이라도 알려달라는 마지막 요청을 보더는 거절했다. 그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

「아즈마 씨.」

트리온체라면 능히 저격할 수 있지만, 맨몸의 일반인에게도 망설이지 않고 발포할 수 있는 전투원은 보더에도 많지 않았다.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도 순간적으로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 상황에서 순간의 망설임은 자칫 사건을 대형 사건으로 키울 수도 있었다. 후에, 인질범이 품에서 떨어뜨린 것이 사제 폭탄이란 사실이 내부 조사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시민들 사이의 혼란을 가중할 것이기에 그 사실은 보더에만 공유되었을 뿐 공표되지는 않았다. 이 또한 상부의 지시였기에 왜 이런 사실까지 관리 소홀의 책임이 있는 보더와 공유해야 하냐는 불만이 적지 않았으나 묵살된 것 또한 이전과 같았다.

「아즈마 씨죠. 방금 전.」

인질범은 품에 손을 넣은 순간에 바로 저격당했기에 트리온체의 강화된 시각으로도 사제 폭탄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아즈마 씨가 쏜 거죠. 저 사람.」

찰나의 판단이 많은 이의 목숨을 구했다. 망설이지 않은 결단 덕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머리를.」

그러니 여기서 만족해라. 그것이 보더의 결정, 전언이었다.

우리에게는 ‘이 이상’ 잘못이 없으니.

보더는 주도권을 놓을 생각이 없다. 그것이 그들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새로이 세운 기조였다. ‘트리온체를 파괴해도 저항이 멈추지 않으면 한 번 더 저격하도록.’ 그것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전달된 무선이었다. 실행할 수 있는 자에게만 전달된 지령.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목소리 또한 오직 아즈마에게만 전달되도록 신경 쓴 무전이겠지만, 아즈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스나이퍼에게 무선을 전달했다.

「철수해.」

통신을 들은 스나이퍼들은 명령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항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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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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