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죽은 스나이퍼를 위한 파반느 3

월드 트리거. Sniper Who?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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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자신은. 위선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라고, 당신은. 그러다 살해당할 거라고. 그러다 죽을 거라고. 그제야 알게 될 거라고. 그제야 당신은 무엇을 알게 되나? 네이버가 적이라는 것?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구제에 힘써야 한다는 것? 죽은 뒤에야 알게 되나? 죽은 사람이 무얼 알 수 있는데. 무얼 할 수 있는데.

아는 건 산 사람뿐이지. 할 수 있는 건 산 사람밖에 없지.

……그러니까 당신들은 위선자야. 당신들도 실은 알고 있잖아. 점잖은 체하며 빼고 있지만 실은 할 수 있잖아. 누구보다 능히 휘두를 줄 아는 트리거면서. 능히 다룰 수 있는 우리의 무기면서. 점잖은 체, 괜찮은 체, 아무것도 잃지 않은 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는 것도 산 사람뿐. 해명할 수 있는 것도 산 사람밖에.

들어줄 수 없는 건 죽은 사람뿐. 알아주지 못하는 것도 죽은 사람이라…….

근신 처분 기간에는 트리거를 반납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본체인 그는 쉽게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야만 했다. 트리온체로서 본체를 제압할 때 어려운 것은 힘 조절일 뿐이다. 따라서 맨몸으로도 어느 정도 격투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근접전에서 어떤 기술이 어느 정도의 강도로 다뤄져야 하는지 아는 자가 미와의 팔을 뒤로 꺾어 붙잡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다친다. ‘의태’ 또는 무언가일 트리온 병사, 또는 트리거 사용자를 처리하기 위해 소집된 이들에 포함되었던 유바 타쿠마의 말은 엄포가 아닌 사실이었다. 그러나 미와가 그 말을 귀담아들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는 지금 눈만을 위로 올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눈앞의 자를 바라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미와의 서슬에 뒤로 넘어져야 했던 ‘그것’에겐 조금의 타격도 들어가지 않았다. 트리온체였기 때문이었다.

유바가 미와를 제압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몸을 일으키는 그것의 목을 향해 겨눠진 최소 3개의 스콜피온과 호월이 있었다. 카자마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4개. 그러나 일단은 가시적인 3개 중 하나의 호월을 든 자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말은……. 말을 잇지 못한 까닭은 자명하다.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을 해버릴 것 같아서 그렇다. ‘하지 마’라고 말하는 건 너무나 어색하기에 그렇다.

그런데 쓸데없는 말의 기준은 무엇인지. 쓸모는 누가 정하는가? 무엇이 중한지. 쓸모 있는지. 쓸 데가 있는지. 실은 그런 말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호월이 움찔, 흔들리는 가운데 그것이 입을 열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슈지.”

‘슈지.’

오래전 비밀리에 구금되었던 에네도라의 생체 잔해를 아는 미와는 보더 내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구금실에 관해 알고 있는 대원 중 한 명이었다. 열하루째, 무기한 근신은 아니지만 아직 근신 기간이 끝나지 않은 미와가 본부를 돌아다니는 것에 모두가 익숙해졌을 때였다. 교대로 잠시 자리가 비워졌을 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진입하는 미와를 먼저 발견한 ‘눈’이 있었다. 눈은 언제나, 트리온 병사의 두드러지는 특징점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냥 단순한 사실을 언급해도 좋았다. 는 눈이 좋은 사람이었다. 저격수라면 으레 그렇듯이.

이름이 불렸을 때 미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게, 내부에서 외부가 보이는 유리창이던가? 열하루째 제대로 자지 못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든 그는 유리창 너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아니, 그것을, 아니 그를, 그것, 그. 아니. 그.

툭. 셧다운된 모니터 화면과 같이 이성의 끈이 끊기는 소리가 있다면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알 수 없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라이조가 소리쳤다. 이미 폐쇄회로 카메라로 상황을 보고 달려온 직후였다. 미와! 그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 책상에 올려져 있던 서류가 모두 천장으로 떠오르며 흩어졌다. 우당탕, 쿵, 탕탕탕. 온갖 집기가 밀쳐져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고 구금실의 문을 벌컥 연 미와는 곧장 그것을 향해 뛰어들었다. 양손을 뻗었다.

목을 거머쥐었다. 밀쳐 쓰러뜨렸다.

쿵,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간 몸에 머리가 바닥과 부딪쳤으나 아파하는 기색은 없었고 미와 또한 바닥과 격하게 부딪친 무릎의 아픔이라던가 그런 건 하등 느끼지 못했다. 그것 역시 마찬가지라 미와가 그것의 목을 잡아 뜯듯 붙잡아 조르는데도 그것은 아무 고통도 호소하지 않았다. 트리온체이니 당연했으나 미와에겐 당연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부러지라 조르는 틈에, 고통은 없으나 숨이 부족하여 작아진 목소리가 미와의 귀에 다시 한번 닿았다. 슈지.

이름, 그것은 인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의 인정 따위 미와에게 필요 없다.

감히.

감히.

슈지. 괜찮니.

어느 소설의 제목과 반대로 미와에겐 입이 있었으나 비명을 지르지는 못했다.

*

소회의실. 그곳은 미와를 그것과 함께, 또는 그것과 함께는 아닐지라도 그것과 동일한 처우로 대할 수는 없다는 배려 또는 상식하에 미와를 격리한 자그마한 회의실이었다. 긴 테이블과 테이블 양쪽에 놓인 8개의 의자가 전부인 장소에서 미와는 머리를 식히길 요구받았고, 이성을 잃고 그것에게 덤벼든 직후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해진 미와는 그 말에 어떠한 반응도 반항도 하지 않은 채 강제로 앉힌 의자에서 다만 고개를 떨어뜨리고 들지 않았다. 그 순간이 지나자 그 안에 들끓던 모든 것이 소강된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온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이곳에 두고 떠난 자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와를 내려다보며 혀를 찬 그는 문을 닫되 잠그지는 않은 채로 곁을 떠났다. 물론 문밖에서 미와가 나오지 못하도록 지키거나 감시하는 자가 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러나 그러든 말든 미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모든 걸 대신하여 그는 생각하였다.

트리온체가 아닌 탓에 그것에게 유의미한 손상은 입히지 못했다. 트리온체였다면 동등한 힘으로 그것의 목을 졸라 부러뜨릴 수 있었겠으나 지난날 요네야와 갈등을 빚은 탓에 트리거를 압수당해 그럴 수가 없었다. 요네야와 갈등을 빚은 건 앞서 열하루 전에도 이성을 잃었던 저를 만류하는 요네야를 제가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고,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은 눈앞에 그가, 당신이,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당신이 죽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것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죽지 않았더라면 내겐 그것을 죽일 이유가 있었을까?

당연히.

당연히 있다. 네이버는 모두 적이니까. 그 간단한 사실을 잊어버려서. 잊고 말아서.

그래서 죽은 당신이 아닌가. 죽게 된 당신이 아닌가.

죽게 한 당신이 아닌가…….

닫힌 문이 열리고 누군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인기척을 내며 자리에 앉았으니 제게 할 말이 있어 온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탓에 결국 미와가 먼저 고개를 들어 그가 누군지 확인해야만 했다. 아. 그제야 아는 소리를 냈더니 그제야 제 이름을 부르는 그였다. 마치 그것과 같이.

“슈지.”

그러나 니노미야는 슈지에게 괜찮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에 미와는 다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밀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기에 작전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은 당연히 대외비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하달된 명령, 소집이었기에 급하게 자리를 비우는 대장에 의아함을 품은 이들의 동요까지 완전히 수습하길 바라는 건 무리였다. 당장 당사자부터 동요를 숨기기 위해 애를 써야 했으니, 그럼에도 심상치 않은 기색을 풍기며 떠나는 대장을 부대원들은 걱정을 담아 지켜보아야 했고,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그렇게 묻는 이들도 일부는 있었다. 안 돼. 그런 명령이야. 단칼에 쳐냈는데도 이에 불복종하며 뒤쫓은 이들은 다행히도 없었다. 그러나 대침공 이후 금연 결심은 게이트 너머로 갖다 버린 사람처럼 줄담배를 뻑뻑 피운 뒤 흡연실을 떠나는 스와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부대원 외에 한 명쯤은 있을 법했다.

“스와 씨 무슨 일 있으시대요?”

무슨 일이야 모두에게 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다쳤고, 죽었고, 보더에도 예외는 없었다. 일부 대원은 상부에 제대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것은 가족의 의지인 예도 있지만 대원 본인의 의지인 예도 적지 않았는데, 미카도시를 아예 떠나는 이들의 수도 적잖았더랬다. 물론 그에 반해 떠나지 않고 남는 사람의 수도 상당했다. 보더는 떠나더라도, 미카도시까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남는 사람들. 누군가 왜냐고 물었을 때 글쎄, 라고 대답한 이가 있어 그에게서 그의 이유를 들을 수는 있었다.

“여기 있으니까.”

모든 것이 여기 있었다. 그러니 떠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전히 여기 있기에. 이제는 영원히 여기 있을 것이기에.

그러니 별수 있겠나. 당신이 여기 있겠다는데.

그게 당신의 뜻이라는데…….

“왜.”

왜 다 알면서 저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냐. 그런 어리광을 피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미와가 말한 ‘왜’는 다른 ‘왜’였다. 왜 그것을 죽이지 않았지? 왜 그것을 죽이지 않았어. 왜 그것을 가만둔 거야? 그러면 ‘왜’는 ‘어떻게’로 다시 바뀐다. 어떻게 그것을 가만둔 거야. 어떻게 그것을 가만둘 수 있는 거야. 어떻게 당신이……. 그렇지만 미와는 ‘왜’, ‘어떻게’로 변한 그것을 ‘무엇을’로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는데, 정작 니노미야가 그렇게 바꾸며 입을 열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건 그 역시 마찬가지인지 미와 못지않게 피곤해 보이는 그였다. 눈가를 꾹꾹 누른 뒤 나온 말에 미와는,

“그게 무슨.”

“말 그대로다.”

왜 그것을 죽이지 않았어. 어떻게 그것을 가만둘 수 있는 거야.

‘무엇’을 말이지?

“그게 무슨…….”

네이버가 아니라면…….

아니라면, 그은…….

.

사흘 전 잔해에서 구조되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된 남자는 열흘 전 사망이 확인되었던 남자였는데, 그는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도 그 자신의 죽음만큼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아즈마 하루아키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인 게 문제였다. ‘그렇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죽음을 들은 다음. 그다음 그는 쿠가 유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곧은 자세로 앉은 채로, 생전의 그가 지었을 미소를 지으며 그와 같이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다음이 없는 사람처럼.

“‘아즈마 하루아키’를 죽인 것도 나겠지.”

쿠가 유마가 말했다.

“진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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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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