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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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트리거. 보더 초기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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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성 주의

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보더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 사이로 보더가 정착할 때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청소년 전투원을 양성한다는 보더의 본질적 한계와 최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경청해야 옳았지만, 네이버를 신처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라던가 네이버로부터 입은 피해를 책임지고 그들의 울분을 해소할 대상으로 보더를 선택한 이들의 분노는 보더로서도 감당하기 퍽 골치 아픈 문젯거리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더에 소속된 많은 전투원은 청소년이었고, 전투원이란 특성상 적극적으로 얼굴을 알리는 홍보부대만큼은 아니어도 시민들 앞에 얼굴과 신상이 알려지기 쉬웠다. 따라서 그들의 굴절된 분노 또는 어긋난 광신으로 피해를 보는 이들 또한 다수가 청소년이었다. 그나마 시간이 흐른 지금은 많이 안정된 편이긴 하나 설립 초기만 하더라도 가능한 한 신상을 감출 것이 권고되는 등 대원들이 입은 피해는 적지 않았다. 폭력 사태로 번진 예도 없지 않았다. 다만 보더 대원이 가해자의 위치에 선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다시 말해 맞대응하여 쌍방 폭행으로 번진 적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고, 이는 다시 그들이 정당한 방위조차 행사하는 것을 주저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었다. 다행히 아직 청소년 대원에게 이 같은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운이 좋기도 했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근처에 있던 성인 대원이 청소년 대원을 보호하여 사건을 무마한 일도 종종 있었다. 실로 당시에는, 성인 대원에게만 내려진 지시이긴 하나 경계 구역뿐 아니라 구역 밖 일반 시가지 또한 순찰의 범위에 포함되어 있었다. 언제 시비에 휘말릴지 모르는 청소년 대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만일을 대비해서 그들 자신 또한 보호할 수 있도록 트리온체로 육체를 전환한 후 순찰에 임하게 되어 있었으나, 많은 일이 그렇듯 순찰 임무 시간 외에 사건 발생을 목격하는 날도 종종 있었고, 그때는 별수 없이 맨몸으로 뛰어들어 소요를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서, 그것도 대낮에 일반인들이 목격하는 가운데 트리온체 전투체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운이 정말 나쁜 날은 그 상태로 폭력 사태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금처럼.

“아즈마 씨!”

카코가 비명처럼 아즈마를 부르며 그에게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건 둘째 치고, 중심을 잃고 넘어진 방향에 바로 앞 가게의 입간판이 놓여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애초에 얻어맞은 걸 둘째로 칠 수 있나? 턱 아래를 가격당한 순간 눈앞이 핑글 돌았으니 그대로 눈앞만 돌았으면 좋았겠지만 헛디딘 발이 미끄러진 것이 문제가 되었다. 쾅 소리와 함께 모서리와 뒤통수가 충돌했다. 까맣게 점멸했다 돌아온 시야는 안개가 낀 것처럼 온통 흐리며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옆에서 카코가 무어라 다급히 말하고 있음은 인지했지만 띄엄띄엄 들리는 단어로 전체 문장을 추측해야만 했다. 지금, 당장, 신고, 구급차, 조금만, 조금만, 아즈마 씨. 아무래도 뇌진탕이 온 것 같았다. 목덜미가 서서히 축축해지는 것을 보자면 날이 선 모서리에 베이거나 찢어진 부분도 있는 듯했다. 녹은 안 슬어 있어야 할 텐데. 그 이상은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어 눈은 감은 채로 의식을 붙잡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카코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는 짐작되었지만 입을 열기엔 조금 많이 힘에 부쳤다. 다행히 이 소란으로 시민들이 웅성거리며 모이기 시작했으니 이 이상 사건이 크게 번질 일은 없을 듯했다.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건 저도 모르게 잃었던 의식을 응급실 침대 위에서 되찾았을 때였다. 앞서, 시비에 휘말린 보더 대원이 상대에 맞대응하여 쌍방 폭행으로 번진 적은 거의 없다고 했었다. 그들이 곧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사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함부로 돌려선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기에 눈동자만을 굴려 제 옆, 보호자 침상이 있을 곳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나란히 기대어 눈을 감고 졸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세 사람이나……. 키 순서대로 앉은 니노미야, 카코, 미와를 훑어보면 니노미야의 교복 셔츠는 구겨진 채 피가 튀어 있었고, 무릎 위에 올려놓은 카코의 손도 상처투성이인 건 마찬가지였으며, 미와는 간신히 꼴이 멀쩡하나 했더니 그 옆에 흙투성이가 된 가방이 처량하게 구겨져 놓여 있었다. 긴 한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잠시 후 응급실 안으로 시노다 본부장이 들어오는 것을 본 뒤에야 한숨을 멈춘 아즈마였다.

“깨어났나?”

“예.”

의사를 부르러 가겠다는 시노다를 간신히 붙잡았다. 앞서 시노다가 아이들을 통해 듣고 정리한 나머지 이야기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카코?’

아즈마가 기절한 후 카코가 상대에게 냅다 주먹을 후려갈기는 모습을 하굣길의 니노미야가 목격했다고 했다. 사색이 되어 일단 그사이를 가로막은 니노미야였지만 카코의 ‘뒤 좀 돌아봐’라는 말에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아즈마를 발견하게 되었고,

‘니노미야 씨? 카코 씨?’

이윽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하고 다가온 하굣길의 미와가 바닥에 쓰러진 상대에게 주먹을 내리꽂는 니노미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아즈마 씨?’

반격을 시도하는 상대의 머리를 가방으로 내리쳤다고 한다. 결국 응급실로는 두 명의 사람이 함께 실려 가게 되었다. 일단 경찰서로 자리를 옮긴 세 사람을 시노다가 데리러 왔고, 이후 함께 응급실로 향한 것이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아즈마는 눈을 감은 채 다만 한 마디를 말했다.

“맙소사.”

“다들 대장 사랑이 각별하더군. 좋겠어, 아즈마 대장.”

마냥 좋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시노다의 눈은 다소 우울해 보였다.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알았을 것이다. 다만, 자네들에겐 어떤 불이익도 없을 거야.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이 못마땅하여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청소년 대원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성인 대원들에게는 가능한 한 충돌을 삼가고 대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던 상부였다. 그러니 그 역시 대원들이 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맞아주며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몰라서도 안 됐다. 반격하려면 얼마든지 반격할 수 있었지만 몇 대 맞아주고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은 아즈마도 마찬가지였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 김에’ 미디어 대책실에선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사건을 키워 여론을 몰아버린다던가. 지금까지 그와 관련된 통화를 마치고 온 그였다. 시노다는 분명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지해야 할 사항을 지적받고 온 것이리라. 아즈마는 미성년자가 아니었다. 자신을 대리할 자를 선정하지 않은 이상 결정은 아즈마만이 내릴 수 있었고, 내려야만 했다.

“자네의 의사를 묻겠다고 하더군.”

그러나 그보다 먼저, 그가 오기도 전부터 같은 생각을 했던 아즈마였기에 의사는 분명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가능하게 해야지. 잠시간 깃들었던 우울을 떨치고 힘주어 대답하는 목소리엔 곧 그렇게 되리란 확신에 가까운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만드리라. 그거면 충분했다. 안 그래도 감당하기 까다로웠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어 다행이었다. 광신과 굴절된 분노, 모두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문제였고 그럼에도 ‘봐줄 수 있는’ 선도 정해져 있었다. 이해와는 별개였다. 아이들이 휘말린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고, 저를 위해 나서준 것이 고맙기는 하나, 그보다 이것으로 이 소요가 종결되리라는 안심이 지극히 현실적인 머리로 사고하는 이에게 조금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용기 있는 결단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이제는 정말 의사를 부르러 가겠다는 그를 말리지 않은 아즈마는 그들의 대화가 얕은 잠의 수면을 건드렸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깨어나려 하는 아이들을 향해 다시 시선을 주었다. 무어라 인사하면 좋을지는 정해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을 뜬 아이를 향해 그는 평소와 같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깨어났니.”

그거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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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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