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그런 이야기

월드 트리거. 니노미야 씨. 잠들면 안 돼요. 진실 게임 해요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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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 씨. 잠들면 안 돼요. 진실 게임 해요.

정말 몰랐나요?

베일 아웃 범위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퍼레이터 히야미와의 트리온 통신이 방해받는다고 느낀 순간 예상한 궤도를 꺾어 가며 날아온 트리온 구체는 시야 밖에서부터 니노미야의 트리온체를 꿰뚫어 버렸다. 보더의 제식화 된 탄환과 비교하면 마치 하운드나 바이퍼같은 움직임이었다. 풀 어택 중 사각에서 손쓸 수 없이 날아드는 탄환 또는 근접 공격에 방어하지 못하는 일이 니노미야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도리어 이를 적극적으로 노리는 이가 많은 만큼 랭크전을 통해 충분히 학습하고, 방어하고, 그럼에도 지금처럼 허에 찔려 당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전법을 고수하는 한 예상할 수 있는 패배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변은 그 직후 벌어지는 일에 있었다. 베일 아웃 되어야 본체가, 트리거에 보관되어 있던 육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해방된 것이다. 베일 아웃의 대응책으로 네이버후드가 개발한 기술, 재밍이었다.

미덴에서 베일 아웃의 존재를 확인한 네이버후드는 두 가지 방향으로 대응책을 연구할 수 있었다. 하나는 모방. 이미 트리온을 이용한 물체 전송 기술이 개발되어 있는 만큼 이를 기반으로 기술을 재현하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봉쇄였다. 베일 아웃은 보더가 온 힘을 다해 개발한 최강의 ‘생존기’인 만큼 이를 파훼하기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미덴의 뛰어난 기술 발전 속도야 언제든 놀랍지만 네이버도 이를 보며 놀고 있지만은 않은 까닭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미덴의 전투력을 크게 꺾으며 적어도 저희와 비슷한 조건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개발된 기술의 성과는 이러한 배경에서, 맥락에서, 이 자리에서, 전시에 적절히 전시되었다. 베일 아웃 되어야 할 육체가 그대로 전장에 놓여난 지금. 쇄도하는, 난사되어 오는 트리온 탄환의 연사.

“니노미야 씨!”

그렇지만 니노미야 역시 전장에 아무 백업 없이 놓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니노미야의 좌우 전방에 발동된 원격 쉴드는 날아드는 탄환들을 그에게서 가로막았고, 일부는 그 역할을 완수하고 부서져 내렸다. 그러나 일부 부수고 들어오는 데 성공한 탄환에 몸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위력의 대부분은 쉴드에 의해 경감되었으나 트리온체가 아닌 본체는 트리거로 싸우는 병사들에게 가장 취약한 요소였다. 그리하여 그것을 병사들에게서 ‘도려내는 데’ 성공한 것이 바로 트리온체가 아니었던가. 그것이 무방비하게 노출된 지금. 쉴드에 부딪혀 튀어 오른 트리온 구체가 그대로 반사되어 지형을 부쉈다. 그에 먼지가 일고 울퉁불퉁한 지면을 디딘 발이 중심을 잃고 뒤로 기울어졌다.

끝은 벼랑이었다.

앞서 탄환으로 노린 것은 니노미야뿐만이 아니었고 그 뒤의 발판을 부수는 목적도 그에 포함되어 있었다. 니노미야 씨, 뒤 조심해요! 트리온체가 아니기에 육성으로 외쳐야 하는 경고는 주변의 굉음에 너무나 쉽게 묻혔다. 물론 경고가 제때 닿았다 한들 니노미야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무것도 없었을 만큼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리하여, 추락한다. 떨어지는 육체에 중력에 의한 가속이 붙는다.

머리가 지면에 부딪히는 순간 시야가 검어진다. 끊어진다.

베일 아웃 대신 블랙 아웃으로 육신과 의식이 연결이 끊긴다.

니노미야 씨.

잠시였다. 끊어진 건 순간뿐으로, 니노미야는 뒤통수에서 흐르는 끈적한 액체를 인식하며 눈을 떴다. 아니, 감은 적 없던 눈에서 밝아지는 눈앞을 인식했다. 그러면 그 자리에는, 시야 먼 자리에는, 누군가 익숙한 녹색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었다. 이 이계의 땅에선 저의 부대를 제외하곤 볼 일이 없는 정장 차림을 한, 수트 재킷과 색을 맞춘 듯한 검은 머리카락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단정히 넘길 생각은 하지 않고 저를 보는 그가. 니노미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더 볼 것도 없는 환상이다.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진 탓에 발생한 착란이었다.

그럼에도 그에 입을 열어 대답하는 것은 의식을 유지하기에 대화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니노미야는 그리 생각한다. 그리 생각하기로 한다. 착란이 온 머리로.

“잠들면 안 돼요.”

잠들 생각 없어.

“진실 게임 해요.”

무슨 소리야, 그건 또.

환상은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환상은 생각보다 더 말이 빨랐다. 환상은 생각보다 더.

“정말 몰랐어요?”

비열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환상이었다. 그는 비열하기보다 바보 같은 여자였으므로. 그러했으므로.

무엇을, 이라고 바보같이 되묻는 건 사양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답을 말할 이유도 없어 니노미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환상은 니노미야가 무의식 또는 의식 내에서 줄곧 의식하던 질문을 비열하게 왜곡하여 제시하고 있었다. 비열하게 그의 모습을 덧씌우고 있었다. 비열한 건 그런 짓을 저지르는 자신 외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그의 뇌에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으로 이것이 그의 본심이라거나 몰랐던 내면이라던가 하는 식으로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착란에 빠진 당사자가 이를 자신의 진심으로 믿는 일 따위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바람일 뿐 진실은 끝까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알기도 전에, 부지불식간에 모든 것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직전으로 돌아가면 니노미야의 환상은 위와 같은 질문을 마친 후 그 자리 그대로 니노미야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은 채, 니노미야의 시야 한 가운데를 가리며 서 있었고,

“하,”

탕!

“…….”

털썩.

단 한 번뿐인 총성이 울리매 환상 뒤로, 환상으로 자신을 엄폐하며 다가오고 있던 인간형 네이버가 쓰러졌다.

각도를 봐서는 머리를 맞았다. 헤드 샷이었다.

보더의 제식 트리거 중 스나이퍼 트리거의 탄환은 유탄 방지가 되어 있어 트리온체가 아닌 맨몸의 사람이 맞더라도 충격으로 기절하는 데 그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총상을 입은 부위가 머리라면 다를 터였다. 기절할 정도의 충격과 고통이 머리에 전달된다면 두개골을 흔드는 것으론 그치지 않을 수도 있을 터. 그럼에도 정확히 관자놀이에 헤드 샷을 맞고 쓰러지는 적과 함께 환상도 함께 스러졌다. 마치 탄환이 환상마저 쏘아버린 것처럼, 죽여버린 것처럼.

눈앞에서 쓰러진 인간형 네이버는 트리온체가 아니었다. 팔에선 피를 흘리고 있었고, 조준경으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그를 저격한 저격수는 그가 트리온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쏘았다. 머리를.

타깃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쏠 정도로 강단 있는 스나이퍼는 보더에도 몇 명 없었다. 아니, 이것을 강단이라고만 말해도 좋은 것일까.

각오라고 해야 옳을까.

감수하기로 한 자의 결단이라고 하면 좋을까.

그리하여 결행한 자를 니노미야는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의식을 잃은 건 아니었다. 의식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눈꺼풀 안쪽만을 바라보고 싶기에, 잠시, 아주 잠시간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가늠쇠에서 눈을 뗀 저격수가 몸을 일으킨다.

「…….」

제자에겐 가르치지 못한, 아니, 가르치지 않은 기술. 가르쳐도 배우지 못했을 기술. 무엇을, 이라고 묻는 건 바보 같겠다. 어째서, 라고도 물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런 기술을 가진 자는 이 자리에 한 명뿐이라는 이야기.

스승과 제자와 환상과 비열한과 남자와 사라진 여자가 있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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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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