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사사

월드 트리거. 유바 타쿠마의 선공 호월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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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시마 유카리는 올라운더였기에 그의 트리거 홀더에는 아스테로이드와 하운드뿐만이 아니라 어태커 트리거인 호월과 옵션 트리거 선공이 장비되어 있었다. 본래 보더에서 제작한 제식 트리거는 모두 보더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 회수하는 것이 원칙이나, 보더는 오비시마 유카리가 속했던 부대의 대장 유바 타쿠마의 요청을 받아들여 잠시간 오비시마 유카리의 트리거를 보유, 관리할 자로 그를 지명했다. 사실상 회수를 유예한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보더 내 규율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대원의 사기를 신경 쓰는 것도 그들을 관리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유바 타쿠마는 자신의 요청을 받아들여 준 보더에 감사를 표했고, 보더는 또한 그들을 떠나지 않기로 한 유바 타쿠마에게 경의를 표했다. 유바 타쿠마가 현장 요원을 그만둔 시기는 그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였다. 그는 보더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이윽고 보더에서 C급 훈련생들을 대상으로 건너 포지션을 가르치는 교관이 되었다. 오래전 그의 부대가 B급 정규 부대에 속했을 때만 해도 자율적인 경쟁을 통한 점수 획득제였던 B급 승급 제도는 교관을 통해 정식으로 기술을 수학하고 정기적인 평가, 시험을 통해 승급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 제도로 변경되어 있었다. 유바 타쿠마는 현장 요원일 적 건너 포지션을 계속 유지했으므로 어린 건너들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했지만, 반드시 그의 스타일을 따라야 할 필요나 이유는 없었다. 그보다 먼저 보더의 제의를 받아 교관이 된 스와 코타로만 봐도 유바와 같은 건너 포지션이지만 스타일은 비슷한 듯 달랐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면 되었다. 어느 길이든 강요는 없었다. 포지션을 바꾸는 것도, 보더를 그만두는 것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유바 타쿠마만 봐도 그렇다. 유바 타쿠마의 동기 중 많은 이가 지금은 보더에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그들의 선택으로 그리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유바 타쿠마에겐 선택의 기회가 있었고 그는 그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보더에 남았다. 보더에 잔류했다.

떠나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떠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는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는다면 자신 같은 사람도 한 명 남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더에.

그래서 남았다. 그래서 떠나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유바 타쿠마의 현역 시절 전성기는 두 정의 리볼버를 사용한 속사로, 사정거리 22m 안이라면 중첩 쉴드도 부수는 강력한 위력이 그를 ‘어태커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했으나, 트리온 기관의 성장이 멈추는 20대에 접어들고 교관이 되어 훈련생들 앞에 기술 시범을 보이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유바 타쿠마의 스타일도 변화하게 되었다. 일단은 총 하나부터 제대로 다루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제 막 건너 포지션에 발을 디딘 아이들에게 두 정의 총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교관으로 지내는 햇수가 늘면서 그가 양손에 리볼버를 하나씩 들고 속사로 상대를 해치웠던 시절을 모르는 훈련생의 수도 덩달아 늘기 시작했다. 몇몇 아이들은 로그에 유바 타쿠마의 이름을 검색했다가 과거 기록을 보고 한 번만 그 스타일을 재현해 주면 안 되겠냐고 졸라댔지만, 유바 타쿠마는 그런 간 큰 아이들에게 순순히 져줄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들의 바람은 아쉽게도 바람으로만 그쳤다. 이젠 안 하시는 거예요? 왜요? ‘왜’라는 단어를 처음 배운 아이처럼 졸졸 쫓아다니며 질문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이었지만 유바 타쿠마가 그 질문에 대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신 그를 대신하여 이유를 찾아내는 아이들이 생겼다. ‘건너 트리거는 트리온을 많이 사용하니까, 이제는 하실 수 없는 거겠지.’ 그러니 괜히 졸라서 교관님을 곤란하게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퍼져나갔지만, 과연, 그것이 아이들의 입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인지는 불명으로 감춰져 있다.

시간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흘렀고, 네이버의 침략도 마찬가지였다. 침략 자체야 일상이 된 지 오래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그 규모가 크지는 않는 편이었다. 몇 해 전 대규모 침공이 있었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쭉. 나름대로 균형을 이룬 현 상태를 쭉 유지할 줄 알았지만, 방심한 적은 한 번도 없던 보더에 그 기대를 부응하는 사건이 결국 한 번은 발생하게 되었다. 1차 대침공처럼 주택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거리는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모든 정규, 정예 대원이 소집되었고 전투 교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소, 미래를 예지하는 사이드 이펙트를 가진 진 유이치의 예지가 있었음에도 사건이 발생한 순간에는 서둘러야 했던 탓에, 유바 타쿠마는 훈련생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하는 트리거를 손에 든 채로 현장으로 달려야 했다.

C급 건너 포지션 훈련생 앞에는 거대한 트리온 병사, 라빗이 서 있었다.

남은 거리는 15m 남짓. 오른손으로는 트리온 탄환을 발사하며 뒤에서 몰려오는 도그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견제를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오비시마 유카리의 트리거 홀더에는 아스테로이드와 하운드, 그리고 어태커 트리거인 호월과 호월의 옵션 트리거 선공이 장비되어 있었다.

선공은 유바 타쿠마의 장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유바 타쿠마의 포지션은 어태커가 아닌 건너였다.

그러나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호월과 비슷하게 장검 형태를 한 블랙 트리거 풍인의 적합자였고, 호월을 손에 쥔 건 까마득하게 먼 날에, C급 훈련생이었을 때뿐이고 선공을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는 해도 과거 선공을 사용하는 어태커와는 지긋지긋하게 싸웠던 그였다. 따라서 그만큼 선공을 관찰한 건너는 유바 타쿠마 위로 더는 없다고 보아도 좋았다. 어태커들까지 합세해 줄을 세워도 앞에 섰으면 섰지 뒤로 밀리지는 않을 그이기도 했기에.

“선공.”

그렇다고는 해도, 그 순간 유바 타쿠마가 떠올린 사람은 선공을 장기로 두었던 그의 친구가 아닌 그의 옛 부대원, 오비시마 유카리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흐르며 유바 타쿠마의 전투 스타일 또한 그와 비슷하게 변해갔다. 그 사실을 본인부터 자각하며 휘두른 호월, 입에 올린 시동어였다.

“호월.”

순간, 길게 늘어난 호월의 날이 라빗의 팔을 향해 날아갔다. 장갑이 두껍다고는 하나 선공은 날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더욱 날카로워지는 트리거였고, 설령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고 해도 주의를 끄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을 터였다. 과연 라빗의 팔에 균열이 발생함과 동시에 그의 눈이 유바 타쿠마에게로 돌아갔다. 그래, 여기다. 주의를 끈 보람이 있게도 훈련생은 그사이 풀렸던 다리를 수습한 뒤 반대 방향으로 달음박질쳤다. 이제 이 자리에는 라빗과 유바 타쿠마, 두 사람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과거 B급 상위 부대였던 나스 부대의 어태커 쿠마가이 유코는 호월을 사용하며 변칙적으로 트리온 탄환을 직접 쏘는 방식의 전법을 사용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그의 대장 나스 레이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움직였다고 한다. 유바 타쿠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의 옛 대원 오비시마 유카리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호월의 날이 그의 의지대로 곧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손잡이를 쥔 왼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언제든 사정거리의 유리함을 잊지 않았다. 동시에, 잘 해낸 그의 제자―대원을 두고 겁을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교전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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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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