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카미 군 거짓말도 잘하시네

Alternative Universe

월드 트리거. 미즈이코. <미즈카미 군 거짓말도 잘하시네> 외전

비자림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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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이상 고온이 멈추지 않았다. 7월이나 8월쯤 되어야 할 것 같은 기온의 상승 질주에 때 이르게 옷장 안을 정리하여 여름옷을 채워 넣어야 했다. 올해 얼마 입지 못한 봄가을의 옷은 리빙박스 안에 차곡차곡 개어 넣어 놓고, 여름 난방은 옷걸이에 걸어 손 뻗으면 닿는 옷걸이 봉에 하나하나 걸어놓는다. 옷장 안은 깔끔하니 의외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는 집안으로 어지르며 살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만큼 광내고 닦으며 사는 편은 아니지만,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분리수거는 지정된 날짜에 잊지 않고 내놓으며, 개수대와 하수구는 냄새가 나지 않도록 제때제때 확인만 하여도 깔끔한 집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생활은 타지에 혼자 와 자취를 시작한 수년 전, 그 전부터 몸에 배어 있던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요리를 본격적으로 익힌 것은 자취를 시작하고 친구에게 조언을 받은 이후지만, ‘치우지 않으면 이어나갈 수 없는’ 요리란 취미가 그와 제법 잘 맞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으로 그는 그를 어디까지 아느냐에 따라 의외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복합적으로 ‘의외기는 하지만’ 같은 수식을 부여받을 때도 있었다. 어쨌든 호감을 사면 샀지 비호감을 느낄 구석은 없었다. 다만 이런 모습을 어떻게 남에게 보여주고 어필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긴 하였다. 그걸 어디 가서 보여줘? 일전 요리는 어떻겠냐며 취미를 추천한 친구는 그 말에 다만 웃긴 하였다. 사실 그 웃음이야말로 확고한, 장담과 다름없었기에 언젠가 보여줄 날이 오리란 것을 의심하진 않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익혀서 나쁠 것은 없는 취미이긴 하였다. 기타보다도 더 남들 앞에 선보이는 데 제약이 따르긴 하지만, 익혀두니 쓸 날도 오긴 하였다. 벌써 수년 전의 일로, 그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친구의 선견지명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는 매사에 쉽게 감동하는 편이긴 하나 하나하나엔 다 근거가 있었다. 이유도 없이 감동한 척은 한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그래야만 하는 날이 온 적도 없었다.

정리를 마치고 일어나 허리를 펴면 주말에 해두기로 마음먹은 일 하나가 수월하게 끝나 있었다. 기지개까지 켠 그는 이윽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나가야 할 시간에 거의 다다라 이대로 일어나면 될 성싶었다. 그는 문고리에 걸어놓은 모자를 집어 들어 머리에 눌러쓰고는 현관문 앞에 조금 흐트러지게 벗어둔 운동화에 발을 꿰었다. 앞서 말했듯 그는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 성정으로 깔끔한 집안을 유지하는 것이지 매사에 칼 같은 각도를 바라지는 않는 성격이었다. 그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한참, 아주. 만약 그런다면 주변의 모든 이가 ‘너 누구냐’라고 물어올 정도로. 스물 ―살의 이코마 타츠히토는 그런 청년이었다. 그런 일상에서 살아가는, 살아있는 청년. 과연 그러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그의 생일이었다.

4월 29일. 그도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전 12시가 되자마자 휴대전화엔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가 쏟아져 내린 덕도 있었다. 아침에는 교토에 있는 가족들에게서 연락이 와서 통화를 또 한참 이어나갔다. 깜짝 생일 축하를 받기엔 ‘축하받지 못할 리 없다’, ‘잊었을 리 없다’라는 강력한 상호 신뢰가 함께했기에, 오히려 깜짝 축하를 노리고 평소와 다르게 굴면 수상하다며 대놓고 의심을 살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그가 받은 생일 축하는 어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평범히 즐거웠고, 기뻤고, 감동적이었다. 다 같이 모여 케이크 자르는 시간을 빠뜨릴 순 없었기에(그래야 마땅했기에) 친구들과는 저녁에 모여 식사를 하기로 약속하였다. 점심부터 함께하자는 제의가 없지는 않았으나 아쉽게도 선약이 있어 거절해야만 했다. 그는 지금 그 선약을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선 상태이기도 했다.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커다란 전면 유리창 너머로 미리 들어와 앉아 있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에게도 날이 더웠던 듯 반소매 옷을 입고 눈을 감은 이는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그에 이코마의 발걸음도 조금 빨라졌다. 카페의 문을 밀어 문에 매달아둔 종이 딸랑거리며 손님의 출입을 주인장에게 알렸다. 그럼에도 뜨지 않는 이의 눈을 어떻게 알았냐면 그 역시 눈을 떼지 않았기에 알았다. 잠들었나?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오기 전 들었던 무수히 많은 종소리와 같다고 여겼기에 이번에도 눈을 뜨지 않는 걸 수도 있었다. 아니면…….

“미즈카미.”

이미 알았기에 눈을 뜨지 않는 걸 수도. 성큼성큼 걸어가 곁에 서면 그는 여느 때와 같이 가는 눈을 뜨며 미소를 지었다.

“이코 씨.”

*

아직 4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토록 날이 무더운 이유를 알지 못했다. 기후 이상? 이상 기후? 아무래도 이 별은 외계인의 침략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멸망할 모양이지. 아니, 멸망하는 것은 인간뿐일 것이다. 이 별은 인간과 운명을 함께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세상 무엇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과 운명을 함께하는 건 결국 같은 인간밖에 되지 않을까.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사이 주문한 파르페가 완성되어 왔기에 한입 가득 떠 입 안에 집어넣었다. 학교 근처에 위치한 이 카페는 계절마다 내놓는 한정 메뉴도 있지만, 주인장이 격월에 한 번씩은 꼭 내놓는 새로운 파르페가 인기였다. 오늘은 이 파르페를 먹기 위해 카페에 왔다. 학교가 쉬는 날인데도 굳이 학교 근처까지 나오게 할 정도의 맛이 있었다. 앞으로도 끝없이 번창하여라. 기원까지 드린 뒤 입에 넣은 파르페는 단 걸 싫어하는 사람도 ‘그래도 맛있다’라는 날이 나올 만큼 부드럽게 맛이 좋았다.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토핑을 시도하셨을까. 스푼을 저어 내용물을 살피는데 맞은편에 앉은 이에게 눈길이 닿았다. 그동안 조금도 손대지 않고 남겨두고 있었다던가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맛있네요, 역시.”

“그렇지?”

기다린, 기대한 보람이 있었다. 감동했다, 정말로. 거짓은 조금도 없었다.

미즈카미 사토시는 이코마 타츠히토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일단은.

동향이라고 하기엔 그는 오사카에서 왔지만 여기까지 떨어져 온 시점에선 대충 동향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처음 만났고 고등학교도 이곳에서 졸업했다. 한 살 많은 이코마가 먼저 시립대학에 입학하고 미즈카미가 1년 뒤 따라 입학했는데, 미즈카미는 편차치가 굉장히 큰, 성적이 굉장히 뛰어난 수재였기에 다른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지 않았나, 같은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한 진로니까. 타인이 옆에서 왈가왈부할 수야 없었다. 미즈카미는 현재 학부 연구생으로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었다. 덕분에 수업이 없는 날도 휴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오늘 같은 날 시간을 못 낼 만큼 조여 살지도 않았다. 그랬다간 벌써 도망치고도 남았을 거라고, 미즈카미는 종종 그렇게 말하며 약속 장소에 시간 맞춰 나타나곤 하였다. 본인이 그렇다니 그럴 것이다. 그런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인이 지나치게 캐물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파르페를 다 먹었을 때쯤이었다. 유리잔이 비었을 때쯤, ‘생일 축하해요, 이코 씨.’ 그 빈자리에 미즈카미의 축하가 담겼다. ‘만나자마자 말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어요.’ 과연 날이 너무 덥지 않냐며 불만을 늘어놓느라 끼어들 구석을 찾지 못했어도 무리는 아니었다. 고맙다고 말하려 했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듯 이어지는 말에 아, 까지만 말하고 남은 말을 삼켰다. 이코마는. 그리고 미즈카미는.

“너무 늦게 말해서 미안해요. 더 빨리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코마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즈카미, 12시 딱 되자마자 축하 문자 보내줬잖아? 거기서 얼마나 더 빠르게 말하려고―까지 말했을 때였다. 아니, 생각했을 때였다.

“―번째 생일 축하해요.”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번째 생일도.”

“―번째 생일도 축하해요.” “―번째 생일도.” “―번째 생일도.” ―번째도. 잠깐, 잠깐만. 미즈카미. 그러나 이코마는 도무지 미즈카미를 멈출 수 없었고, 미즈카미는.

“꿈에서밖에 축하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아직은, 직접 가서 축하한다고 말할 만큼 강해지지 못해서.

“…….”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코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미즈카미.”

“네.”

“지금 몇 살이냐?”

미즈카미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웃었다. 하하…… 하하.

“……살이요.”

축하받은 생일의 수만큼 늘어난 숫자가 까마득했다. 4월의 이상 고온이 멈추지 않은 날. 7월과 8월은 되어야 할 것 같은 기온. 실은 거기에 4월이란 메모지를 붙였을 뿐인 ‘4월’이라, 이토록 날이 무더운 이유가 거기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옷을 정리하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와 단순히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였던 것 같지는 아니했다.

그는 이런 꿈을 바랐을까. 이런 세상이면 어떨까 했을까.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꿈에도 슬슬 익숙해진 듯하였다. 미즈카미는.

“…….”

잠시 후 이코마가 말했다.

“그럼 나는 ……살이겠네. 고맙다, 미즈카미. 생일 축하해 줘서.”

밀린 것까지 전부 챙겨 줘서. 그 말에 미즈카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안 그러면 이코 씨 삐질 거잖아요. 그리고……. 4월은 끝나야만 했다. 거짓말같이.

그렇지만…….

“이제 가세요. 저 오늘은 진짜 자야 해요. 아니면 죽는다고요.”

그 말에는 서로가 서로를 보며 하하 웃었다. 이 잠시간에 꾼 찰나의 꿈에서 웃음소리가 청량하게 번진다.

“이제 누가 거짓말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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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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